[잠깐묵상] 악한 자에게 주어지는 기회
사무엘상 19장
“사울이 라마 나욧으로 가니라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도 임하시니 그가 라마 나욧에 이르기까지 걸어가며 예언을 하였으며”(삼상 19:23)
이겨야 이기는 싸움이 있고, 져야 이기는 싸움이 있습니다. 골리앗과의 싸움은 한쪽이 한쪽을 제압해야 하는 싸움입니다. 그러나 사울과의 싸움은 한쪽이 한쪽을 제압해서는 안되는 싸움입니다. 사울한테 잡혀 죽어도 안되지만, 사울을 죽여도 안되는 어려운 싸움을 다윗은 경험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그것을 잘 알았던 사람입니다.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두 번씩이나 생기지만, 다윗은 사울을 죽이지 않습니다. 도리어 사울에게 기회를 줍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줍니다. 내가 살기 위해 상대를 죽이거나, 너 죽고 나 죽자가 아니라, 다윗은 둘 다 살기 위해 안간 힘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9장에는 다윗을 잡으러 가던 사울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 예언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딘가 부자연스럽고 사건 전개상 어울리지 않는 내용 아닌가요? 다윗을 죽이려는 사울을 하나님이 막으셨는데, 사울의 다리를 부러뜨린다던가 해서 혼줄을 내시는 것이 아니라 사울을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살리는 대신 사울을 죽이신게 아니라 다윗과 사울, 둘 다 살리는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다윗을 쫓는 사울의 추격전이 시작됩니다. 이 추격전을 보고 있으면 과연 하나님은 누구를 보호하려 하시는가? 하는 질문이 듭니다. 다윗도 죽음으로부터 보호하시지만, 사울도 끝까지 살려두십니다. 어떻게 보면 사울도 보호 받고 있습니다. 다윗을 죽이지 못하도록 하나님은 사울을 보호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다윗을 죽인다면 사울이 과연 그 죄값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겠습니까? 물론 사울이 나쁜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나쁜 사울에게도 하나님은 계속해서 기회를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자기의 죄를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아들 요나단을 통해서도 말씀하시고, 하나님의 영으로 감동시키기도 하시고, 죽을 목숨을 다윗을 통해 두 번씩이나 살려주시기도 합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나를 다윗에 대입할 때가 많습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사울로 생각하곤 합니다. 그런데 그건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의 반영일 뿐입니다. 나의 실상이 사울에 훨씬 가까울 때가 더 많지 않나요?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고 살려두시며 기회를 주시는 것은 내가 다윗이라서가 아니라 사울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죄를 내가 알고 스스로 돌이킬 때까지 계속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