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다윗 안에도 사울이 있다
사무엘상 25장
“다윗이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칼을 차라 하니 각기 칼을 차매 다윗도 자기 칼을 차고 사백 명가량은 데리고 올라가고 이백 명은 소유물 곁에 있게 하니라”(삼상 25:13)
다윗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습니다. 자신이 나발에게 베푼 호의가 무시당하자 결국 뚜껑이 열리고 맙니다. 부하 400명에게 칼을 차라고 명령한 것을 보면 그저 혼 좀 내주고 일을 마무리할 생각은 아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누구라도 자신을 가로막는다면 죽이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한 것입니다. 칼을 차고 길을 나서는 다윗의 눈빛은 어땠을까요? 허리춤에 찬 칼날이 무색할 정도로 그의 눈에는 서슬이 시퍼런 살기와 분노가 이글거렸을 것입니다.
이 다윗이 수금을 아름답게 연주하던 다윗이 맞습니까? 요나단과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리던 다윗이 맞나요? 사울을 살려준 것이 불과 얼마 전이었습니다. 사울을 죽이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심지어 사울의 옷자락을 가만히 벤 것 가지고도 마음이 찔렸던 다윗이었습니다.
이 다윗이 그 다윗 맞습니까? 다윗이 아니라 사울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놉 땅의 제사장들을 진멸하라고 명령했던 사울이나 나발을 죽이겠다고 나선 다윗이나 별 반 다를게 없습니다.
다윗 안에도 사울이 있었습니다. 다윗도 몰랐을 것입니다. 나발의 무시와 조롱을 당해보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의 모습이 자기 안에도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을 추격하는 사울에게서는 멀리 도망이라도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기 내면의 사울에게서는 멀리 도망갈 수 없습니다.
아마 다윗에게 광야의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울처럼 변질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고 하셨는데, 다윗의 순수한 열정과 뒤섞인 사울적 면모까지도 알고 계시지 않았을까요?
광야는 하나님의 수술대였습니다. 사울 적출 수술이 광야에서 진행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울이라는 칼을 사용하셔서 사울을 꺼내고 계신 것입니다.
내 안에 사울 같은 존재가 있으니까 내 밖의 사울이 눈에 거슬리는 것입니다. 그가 내리 꽂는 비수를 얼마나 맞아야 내 안의 사울이 죽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