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진실성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신실성입니다”

여호수아 24장

“백성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결단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기를 하지 아니하오리니“(수 24:16)

결코 다른 신들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만 섬기겠다는 말, 거짓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순간만큼만 진심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진실성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신실성입니다. 신실하지 못한 진실함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어느 순간에는 누구나 다 진심일 수 있습니다. 결혼식 혼인서약 시간에 모든 신랑 신부는 진심입니다. 학기 초, 새 가방과 새 문구류를 장만할 때의 포부는 모든 학생이 다 진심입니다.

눈물 콧물 흘리며 회개하고 마음을 다졌던 그 순간, 신앙인들은 모두 진심이었을 것입니다. 청년의 시절 하나님을 향해 뜨겁게 헌신했던 순간들, 거짓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진심들이 지금은 다 어디 갔고, 교회학교와 청년부의 뜨거웠던 청춘들은 어른이 되어 다 어디 가고 없는 걸까요?

우리는 그 순간의 진정성과 눈물을 신앙과 믿음이라고 착각하면 안됩니다. 신앙은 감정의 변화가 아니라 인격의 변화에 관한 것입니다. 인격은 절대 단기간에 빚어지지 않습니다. 물론 어느 순간의 강렬한 현상적 체험이 성품의 변화에 좋은 계기는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유지하느냐입니다. 지속성과 일관성을 갖는다는 것, 늘 한결같은 것, 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발전하는 것보다 첫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렵지 않습니까?

그래서 신앙은 시작점을 재설정하는 작업입니다. 내 진심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이었던 내 결단이 완전히 무너진 직후가 신앙의 진짜 시작점입니다. 내 신념이 산산조각나야 신앙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인간 특유의 변동성이 하나님의 일관성을 만나 발생하는 역동성, 그것이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끝까지 따르겠다던 베드로의 자신감은 십자가 앞에서 폐기되었습니다.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던 베드로가 예수님까지 버리고마는 절망에 이르렀을 때, 그는 진정으로 예수님을 따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제자도의 역설입니다.

하나님의 진심인 십자가에 우리의 진심이 걸려 넘어져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출발하지 않은 모든 것이 십자가에 걸려 넘어져야 합니다. 십자가에 모든 것이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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