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스페인독감 104주년···무엇을 기억하고 무얼 버려야 할까?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스페인 독감으로 군인들이 마스크를 쓰고 이동하고 있다. <출처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

[아시아엔=배진건 퍼스트바이오테라퓨틱스 상임고문] 오늘은 3.1운동 104주년 기념일이다. 3.1운동은 일제의 식민통치에도 커다란 타격을 가했고 독립운동의 이념과 방법을 체계화하는 계기가 된 역사적 사건이다. 필자는 3.1운동을 스페인독감과 연결시켜 생각해 본다.

코로나 이후 많이 줄었지만, 미세먼지 공포가 보통이 아니었다. 미세먼지 주범은 외부적인 것이 많다. 화력발전을 통해 나라 안에서도 발생하지만 중국 대륙에서 미세먼지를 먼저 경험하면 바람과 함께 몰려와 이틀 후에는 같은 현상이 우리나라에서도 발생한다.

겨울의 또 다른 공포인 조류 인플루엔자 AI(avian influenza)도 마찬가지다. 2017년 2월 제64회 과총포럼 ‘조류인플루엔자의 원인과 과학적 해법’에서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AI의 타입을 미리 예측할 수 있다”고 했다. 2015년 중국에서 발생한 고병원성조류인플루엔자(HPAI) 타입이 이미 보고됐기에 이것이 조류 이동과 함께 우리나라 서해안부터 일어난다는 것이다. 미세먼지는 이틀이지만 AI는 2년으로 시간의 갭이 다를 뿐이다.

2009년 10월 24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신종플루의 급속한 확산을 막기 위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적이 있다. 미국 내 신종플루 감염지역이 50개 주 중 46개 주로 늘고 미국 내 사망자가 1000명을 넘어섬에 따라 비상조치를 취한 것이었다. 그해 신종플루의 정식 명칭은 ‘2009 인플루엔자A(H1N1)’이었다.

독감 바이러스 중심에는 유전물질인 RNA가 있고, 외피에는 2종의 당(糖)단백질인 헤마글루티닌(H, Hemaglutinin)과 뉴라미데이즈(N, neuramidase)가 있다. 우리에게 익숙해진 독감치료제 타미플루는 인체의 세포에서 복제를 마친 바이러스가 세포 밖으로 나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뉴라미데이즈 저해제이다.

바이러스는 단백질 형태에 따라 H형(H1~H15 15종)과 N형(N1~N9 9종)으로 구분하지만 매년 표면 단백질의 형태를 바꾸는 변장술의 명수이기에 독감 바이러스를 예방하기가 힘들다. 특히 고(高)병원성인 H5N1형 바이러스는 변이가 매우 빠를 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에게 쉽게 전이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8년 전 세계에서 50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것으로 추정되는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를 과학자들이 2005년 재생하는 데 성공했다. 미국 알래스카에 묻혀 있던 한 여성 스페인 독감 희생자의 폐 조직을 채취한 뒤 여기서 이 바이러스의 8개 유전자 배열을 재구성하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다시 부활한 스페인독감 바이러스의 구조는 전염성이 강한 H5N1으로 확인됐다. 이 결과가 보고되자 필자는 같은 시기의 3.1운동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1918년 봄에 발생한 스페인 독감은 가을로 접어들면서 변종이 생겨 9월 이후 세계에서 사망자가 3000만명 넘게 나왔다. 사망자의 70% 이상이 25~35세의 건장한 젊은이들이었다.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진 스페인 독감이었기에 우리 한반도는 무풍지대였을까. 미국과 유럽처럼 그해 1918년 일제 강점 하에 있던 우리나라도 9월부터 크게 번졌다. ‘악성의 유행병, 몹시 아픈 감기’라는 제목의 <매일신보> 기사는 “9월 23일부터 평북 강계군에 유행성 감기로 300명의 환자가 발생했고 특징은 머리와 밑 관절 등이 몹시 아프다더라”고 했다. 경성(서울)서도 9월에 이미 환자가 나왔고 11월엔 평양 인구 절반이 감기로 고생한다는 기사도 있다. 경성에선 개도 돌림감기로 전염돼 죽으니 조심하라고 했다.

“감기 사망자가 2000명이다. 온 가족이 앓아 누워 죽은 사람을 묻을 사람이 없는 형편이다. 경찰서와 군청에서 감기에 대한 강의를 하려 했으나 사람들이 모두 앓아 들을 사람이 없다. 예산, 홍성서도 지금껏 추수를 못해 품삯이 이원오십전까지 올랐다.”

스페인 독감이 한반도까지 휩쓸던 1918년 12월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충남 서산 한 개 군에만 8만명의 환자’라는 제목으로 실린 기사다. 심지어 백범 김구 선생도 1919년 20일간 스페인 독감으로 고생했다. <백범일지>에는 “병원이란 곳에는 혹을 떼러 제중원에 1개월, 상해에 온 후 서반아 감기로 20일 동안 치료한 것뿐이다”고 기록돼 있다.

한반도에서 스페인 독감으로 몇 명이나 죽었을까. 1918년 조선총독부 통계연감은 총인구 1670만명 중 44%인 742만명의 독감 환자가 발생해 14만명이 죽었고 일본인 역시 15만9916명의 환자가 발생해 1297명이 사망했다고 집계했다. 치사율에서 한국인은 1.88%나 됐다. 일본인은 0.71%였다. 같은 독감이지만 치사율에서 정복자와 피정복자는 차이가 났다.

3.1운동은 한국의 근대의식과 민주주의 발전의 뿌리가 됐다.

하지만 식민지 정부의 통계보다도 더 많은 백성들이 죽었을 것은 분명하다. 1919년 기미년 3.1운동 직전의 상황은 매일신보에 따르면 각급 학교는 일제히 휴교하고 회사는 휴업했다. 농촌에서는 들녘의 익은 벼를 해가 지나도 거두지 못할 정도로 상여 행렬이 끊이질 않아 조선 팔도의 민심이 흉흉했다고 보도했다.

스페인 독감이 한반도를 덮은 직후에 3.1운동이 일어났다. 우연일까. 일제의 모진 수탈과 압박 가운데 전염병까지 창궐하여 젊은이들까지 죽던 상황에서도 백성들은 독립을 외치며 분연히 일어났다. 3.1운동 이후 전국을 휩쓴 시위운동 상황을 보면 △집회회수 1542회 △참가인원 202만 3089명 △사망자 7509명 △부상자 1만5961명 △검거자 5만 2770명이며 화재로 교회 47개소, 학교 2곳, 민가 715채가 소실됐다.(총독부 발표). 이 거족·거국적인 독립운동은 일제의 잔인한 탄압으로 많은 희생자를 낸 채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대내외적으로 우리 민족의 독립정신을 선명히 드러냈고, 그 정신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다.

땅에 사는 인간은 외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내부의 일이 모두 내부에 기인한 것만은 아니다. 104년 전 저 멀리 스페인에서 일어난 AI 독감이 3.1운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올해 3.1운동과 스페인독감이 함께 104주년을 맞았다. 우린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버려야 할 것인가?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