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카이로드 문치장 대표님, 29일 따님 결혼식 눈물나도 꾹 참을게요”

고 문치장 대표(오른쪽 두번째) 필자. 2017년 찍은 사진이다. 함께 있는 이들은 2008년 처음 만나 15년째 우정을 나누는 과거 동료들. 

 

[아시아엔=배진건 박사, 이노큐어테라퓨틱 수석부사장] 지난 3일 개천절 아침 9시, 2박3일의 ‘2022 베이직교회 수련회’가 열린 원주 오크밸리에서 방금 귀가해 카톡을 열어보니 이런 문자가 보였다.

“고(故) 문치장님께서 별세하셨기에 아래와 같이 부고를 전해드립니다.”

눈을 의심하며 돋보기를 쓰고 다시 보았다. 그렇게 적힌 것을 확인하였을 뿐이다. 허망하기만 했다. 카톡방은 문치장 대표를 포함한 5명의 카톡방이다. 오는 10월 29일 문치장 대표 딸의 혼사 전에 14일 금요일에 만나기로 정해졌었다. “시간은 저녁 6시로 하고 장소 정한 후 연락드리겠습니다.” 카톡방은 고인의 마지막 메시지로 끝난다.

9월 30일 금요일 아침 오랜 지인한테서 이런 메시지를 받았다.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미라티 암젠 등의 경쟁약물처럼 16~19step 정도 합성이 되니 대학 수준에 많이 했던 9step 내외 합성 대비 생각보다 합성 성공률이 많이 떨어져서요(30% 정도는 이전보다 더 합성 실패가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고문님, 위와 같은 고민이 있다면 어느 분을 찾아뵈면 도움이 될는지요?”

바이오업계의 시조새라기보다 현실적으로 복덕방 노릇을 하는 필자는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주저없이 (주)카이로드(ChiRoad)의 문치장 대표의 전화번호를 드렸다. 프로세스 케미스트리(process chemistry)에 대한 답을 문 대표처럼 시원스럽게 줄 수 있는 다른 사람을 필자가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확인 차 문치장 대표에게 9월 30일 오후 6시17분 전화를 하였다. “네 배진건 박사님, 지금 문 대표님이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시기에 상무인 제가 대신 받습니다.” 나는 이 상황을 눈치 채지 못하였다. 이 상황을 이해하게된 것은 고인이 된 후인 3일 낮 받은 메시지를 통해서였다.

내가 문치장 상무를 처음 만난 것은 2008년 10월말 JW중외 연구총괄 전무로 미국에서 귀국하면서이다. 회사는 필자를 배려하여 팀을 미리 짠 것이다. 시화공단에서 뒷단을 책임지던 문치장 상무를 중앙연구소 소장으로 임명하여 미국생활 33년만에 돌아온 ‘어리버리한’ 나를 돕는 주체가 되도록 배려한 것이다.

문치장 상무 외에도 C&C연구소의 이경준, 바이올로지의 오세웅, 합성의 정경윤, PK의 윤치호 등의 박사들이 문치장 상무와 함께 내 곁에 있었다. 한마디로 신약개발의 대한민국 ‘Dream Team’이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내 곁에 포진하고 있었기에 이런 분들과 같이 대한민국에서 일하면 어느 합성 신약과제인들 못 할까? 지금도 ‘정답’이라 확신한다.

실제로 ‘CWP231’을 미국 FDA에 임상허가 신청을 하는 과정도 이런 전문가들이 옆에 있었기에 가능했다. 문제는 2010년 말이었다. 사전 임상 프로세스를 가야할 CWP231을 대량 합성한 물질에 작은 문제가 생겼다. 거기에 책임을 지고 문치장 상무는 11월말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필자도 12월 말에 고문으로 발령 받았다.

그 이듬해 장차 ‘이사’로 정해진 오세웅 박사도 사표를 던지고 유한으로 옮겼다. 그는 역량을 검증받아 현재 연구소장 전무로 일하고 있다. 문치장 상무는 2012년 ‘카이로드’를 만들어 꼭 필요한 이성체를 국내외에 대량으로 공급하는 회사로 기반을 다졌다.

왜 이성체가 중요한가? 신약개발 약물 중에는 카이랄(chiral) 구조를 갖는 중간체나 물질이 당연히 존재한다. 미국 FDA의 ‘라세믹 스위치 지침’에 의하면 카이랄 구조를 갖는 의약품의 경우 두 가지 경상체(enantiomer)가 혼합된 채로 판매되어서는 안 된다. 오직 약효가 있는 한 가지 경상체만을 함유하도록 순수하게 만들어 판매해야 한다. 그러기에 ‘카이로드’는 신약개발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렇게 뿔뿔이 흩어지며 드림팀이 와해되었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문 상무는 JW중외 연구소를 퇴사한 그 당시 연구소 직원들을 회사 밖에서 친목모임으로 일년에 4번씩 만나 꿈을 나누었다. 젊은 ‘Old OB’들은 아직도 ‘소풍’에서 만나 ‘소풍’을 즐긴다.

문치장 상무 별세 소식이 전해진 10월 3일 ‘JW OB’ 카톡방에 불이 났다. “너무 황당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가 줄을 이었다. 궁금해 하는 이들에게 전하려 이렇게 썼다.

“간단히 정리드리면, 28일 충주에서 라운딩 중 갑자기 머리 통증으로 OO대학병원 응급실에서 CT 찍고 뇌출혈로 알았으나 감당할 의사가 없어서 원주OO대학병원으로 옮겨서 몇차례 수술했으나 어제 뇌사판정 후 가족들과 어제밤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했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것이 세계 최고수준의 대한민국 의료 현실이다. 수도권을 벗어나면 상황을 알아도 응급 대처할 방법을 찾기 힘들다.

“문치장 상무님. 이렇게 뜻밖에 당신을 하늘나라로 먼저 보냅니다. 29일 따님 결혼식에 꼭 가겠습니다. 가서 눈물이 나도 참겠습니다. 당신의 자리를 누가 채울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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