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무환···’안전·안보 불감증 시대’ 인류 최고의 투자전략
튀르키예-시리아 지진 ‘재난불감증’에 참사 ‘가중’
튀르키예-시리아 지진 사망자 수가 5만명에 달하고 있다. 사망자 수가 10만명을 넘을 수 있다는 참혹한 추산이 빗나가길 바랄 뿐이다. 난민 인원이 250만명이라고 하니 살아남은 자도 걱정이다. 튀르키예에서 주거지 내진보강을 위해 거둔 지진세를 일반 정부예산으로 전용했다는 기사를 읽으니 안타까움이 더 했다. 한편 이번 지진에도 사망자가 1명도 발생하지 않은 터키 남부의 에르진이라는 도시가 있다. 사상자는커녕 단 한 채의 건물도 무너지지 않았다고 한다. 에르진에서는 불법 건축은 절대 용납하지 않으며, 건물의 높이를 6층까지만 제한하고, 원칙과 규정에 따라 건물을 짓는다고 한다.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연재해 대비’ 무시할 수 없는 한반도 안전 변수
작년 여름 수도권을 중심으로 중부지방에 내린 집중호우가 큰 피해를 남겼다. 건물이 밀집하고 도로가 포장된 서울 강남에 인명과 재산 피해가 집중되었다. 2011년 계획하였던 ‘대심도 빗물저류배수시설’ 사업의 취소가 상당히 아쉬운 이유다. 막대한 예산과 환경단체의 반대가 부담이었다고 한다. 이 사업은 시간당 100mm의 집중호우에 대비하기 위한 도시 수해 안전망으로 최초 7개 지역에 20km의 대심도 배수터널을 구축하는 사업이었다.
한편, 최초 계획된 7개소 가운데 신월동 한 곳은 정상적으로 사업이 추진되었으며, 이 덕에 강남 일대의 물난리와 달리 목동 일대는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자연재해 예방을 위한 사업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라는 인식이 확산되었으며, 늦게나마 사업이 중단된 6개소에 대해서도 사업을 재개한다니 다행이다.
자연재해 외에도 사회재난에 대한 예방도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최근 우크라아니-러시아 전쟁에서 이미 양국의 군인 전사자 수가 5만명을 향해 가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경우 경제 인프라 피해액이 1천83억달러(약 142조원), 파괴되거나 손상된 주거용 건물 약 13만개 동에 달한다고 한다. 난민 수가 집계시점에 따라 다르지만 600만~800만명 이상이다. 세기적 자연재해인 튀르키예-시리아 지진의 피해를 능가하는 규모이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남다른 이유는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 역시 지구상에서 안보적 위협이 가장 큰 지역 가운데 하나이기 떄문이다.
우리나라는 반만년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학자마다 의견이 다소 상이하지만, 한반도에는 대재앙이라 불릴 수 있는 지진이 9차례 있었다고 한다. 한편 노략질 수준 등은 제외하고 역사에 기록될 만한 전쟁이 90차례 있었다고 한다. 수치상으로는 지진보다 전쟁의 위협이 10배나 크다. 우리나라는 지진의 위험이 커서가 아니라 지진으로부터 안전할 수 없기에 사회 인프라, 건축물 등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내진보강을 하고 있다. 한편 지진 대비 전쟁의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는 우리나라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 인프라, 건축물의 현주소는 어떤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안보불감증’ 시대의 ‘십만양병설’은 민방위 대피시설 완비로…
율곡 이이는 병조판서가 되면서 ‘십만양병설’을 주장하였다. 이에 서애 류승룔은 막대한 비용부담을 이유로 십만양병설을 반대한다. 십만양병설 주장의 목적과 진위 여부를 떠나서 이후에 닥쳐진 왜란과 호란을 생각하면 율곡 이이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운 바가 크다. 서애 류승룡이 훗날 낙향하여 <징비록>을 편찬한들 이미 국토와 백성은 유린된 뒤였다.
서애 류승룡은 불세출의 영웅 이순신을 발굴하고, 이후 왕으로 하여금 특진을 시켜 전라좌수사에 보직토록한 공신이다.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의 활약에서 그를 알아본 류승룡의 혜안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전쟁에서 이기는 것과 백성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은 같으면서도 다른 차원이기에 아쉬운 바가 크다. 우리나라는 3축 체계에 의한 북한의 핵 도발에 대응하고자 한다. 압도적 군사력으로 전쟁이 일어나면 반드시 승리를 이룰 것이다. 하지만, 전쟁에서 승리하더라도 국민의 재산과 생명에는 피해가 불가피하다. 전쟁이 일어난 뒤 불세출의 영웅 이순신 장군의 활약을 기대하는 것보다 십만양병설과 같이 적의 전쟁의지를 사전에 무력화시키는 대책이 우리에게 더 실효적인 이유이다.
지난 2월 8일 윤석렬 대통령이 주재한 중앙통합방위회의에서 유사시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할 수 있는 민방위 대피시설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서라도 그 중요성이 인식된 것은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자연재해와 마찬가지로 전쟁과 같은 사회재해에 대해서도 우리는 철저한 대비를 해야한다. 핀란드, 스웨덴, 싱가폴, 이스라엘 등이 ‘창’ 정책 외에도 ‘방패’ 정책을 소홀히 하지 않는 이유다. 그러할진대, 오늘날 우리나라의 민방위 대피시설은 위협의 변화에 따른 적절한 대응이 턱없이 부족하여 방호시설이기보다는 집단무덤이 될 소지가 크다.
<손자병법> ‘모정’편의 첫 구절에 “전쟁에서 가장 이상적인 승리는 부전이승, 즉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라고 했다. 십만양병을 보유하고 있었다면, 한반도를 넘보는 자들은 감히 조선을 공격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완벽한 민방위 대피시설을 보유하고 있다면, 북한은 핵과 미사일 도발을 고려하더라도 그 피해가 미미하여 감행 자체를 주저할 것이다. 안보적 재난에 따른 피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예산 또한 비용이 아니고 투자인 이유이다.
국토와 백성이 유린된 뒤의 <징비록>이 당시 조선에 무슨 의미가 있었겠는가? 우리가 반만년 역사에서 이토록 잘 살고 강했던 적이 있었던가? 조선의 200년 평화에 ‘십만양병설’이 설득력이 부족했던 ‘안보불감증’의 아픈 역사를 반면교사 삼아야 할 것이다. 외양간이 허술하면 소는 반드시 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