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명신고 설립 ‘어른 김장하’를 닮아간다면…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로 소개된 김장하(79) 전 남성문화재단 이사장은 가방끈이 짧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한약방 머슴 살이를 했다. 해방 후 처음 실행한 ‘한약사국가자격시험’에 통과해 19세에 남성당한약방을 차린다.
약값은 낮은데 좋은 재료를 써, 효험 좋았던 터라 전국에서 손님이 몰린다. 그는 20년간 모은 돈으로 1983년 경남 진주에 명신고등학교를 세우고, 잘 키운 뒤 1991년 국가에 헌납한다. 100억원이 넘는 자산이었다.
1990년 창간한 옛 <진주신문>에는 월 1000만원에 달하는 적자를 10년간 보전해줬다. 토호세력이 겁 없이 설치지 않도록 언론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믿음에 서다. 그는 지난해 60년 간 운영해온 한약방 문을 닫았다.
남성문화재단의 남은 자산 34억원도 국립 경상대에 기증했다. 그러나 자신을 내세우는 인터뷰는 일절 거절했다. 김주완 전 경남도민일보 기자도 1991년 인터뷰에 실패했다. 그는 2021년 은퇴 후 경남MBC 김현지 PD와 함께 30년 전 실패한 작업에 다시 도전한다.
주변 인물 100명을 인터뷰하면서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간 것이다. 최근 화제가 된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가 탄생한 배경이다. 김장하 선생은 명신고 재학생 외에도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의 등록금과 생활비를 대학 때까지 말 없이 지원했다. 수많은 ‘김장하 키즈’를 길러냈으나 “나는 사회에 있는 걸 준 것이니 갚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사회에 갚으라”고 했다. 대학 가서 공부 안 하고 데모를 해 죄송하다는 이에겐 “그 역시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일”이라며 격려했다.
장학금을 받고도 특별한 인물이 못 돼 죄송하다는 이에겐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한다”고 말한다. 진주는 ‘저울처럼 평등하다’는 뜻의 형평운동이 시작된 곳이다. 1923년 백정 신분제 철폐를 필두로 모든 인간의 사회적 평등을 주창했다.
선생은 ‘형평운동기념사업회’ 초대 이사장을 지냈다. 호주제 폐지에 앞장서고 가정폭력피해자쉼터 건립을 후원하는 등 형평운동의 정신을 이어왔다. 남들에겐 언제든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자신은 단 벌 신사에 뚜벅이로 평생을 살았다.
선생은 “돈은 똥과 같아 쌓아두면 악취가 진동하지만, 흩뿌리면 거름이 된다”고 말한다. 진주의 ‘아낌없이 주는 큰 바위 얼굴’이 연초부터 주는 울림이 크다.
독자와 시청자들은 사회 여러 분야에 김장하 씨앗이 심겨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고, 그들이 증언하는 김장하에 또 한번 감탄했다. 증언의 조각들이 모여 재구성된 선생 삶은 그 자체로 묵직한 울림을 선사했다.
1984년 개교한 진주 명신고등학교는 선생이 전 재산을 바쳐 설립한 학교다. 그는 명신고가 신흥명문으로 자리를 잡자 학교를 국가에 헌납했다. 당시 가치로만 따져도 100억원이 훌쩍 넘는 학교를 사회에 환원한 셈이다.
학교 재단이사장 퇴임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부인 최송두 여사가 “놔버리니까 섭섭하제?”라고 물으니 선생은 “섭섭할 것 하나도 없다. 우리 둘이 만날 때 빈손으로 만났잖아. 지금 이거 내버려도 우리 먹고살 만큼 남아 있고, 빚진 게 하나도 없는데 뭘 서운할 게 있나.” 당시 48세던 김장하의 솔직한 심정과 평소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책을 쓴 김주완 작가는 “지원하되 일절 간섭하지 않는다는 김장하 선생의 일관된 태도에 많은 이들이 감동한 것 같다”며, “알량하게 돈 몇 푼 지원해주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 몇몇 어른과 대비되면서 더 큰 반향을 불러오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김현지 PD도 “다들 닮고 싶은 어른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 것 같다.” “꼰대가 될까 봐 두려운 세대나, 어떤 어른이 돼야 할지 고민인 이들에게는 책과 다큐멘터리가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선생 삶이 뒤늦게 조명 받으며 여전히 어른다운 어른을 갈망하는 이들이 적지 않음이 드러났다. ‘꼰대’라는 표현이 세대를 갈라치는 동안에도 한쪽에서는 닮고 싶은 어른이 등장하기만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방연주 대중 문화평론가는 “김장하 선생을 기록한 책과 다큐멘터리가 인기를 끄는 것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모든 것을 증명한 사람이 주는 울림 때문”이라며 “무조건 영웅화하지 않고 기자라는 제삼자가 선생의 삶을 객관적으로 전달하면서 시청자와 독자들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무주상보시(無住相報施)라는 말은 집착 없이 베푸는 보시를 의미한다. 우리 사회에 놀라운 참어른 김장하 선생 같은 무주상보시의 주인공이 많으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