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영적 세계의 특수 상대성 이론
레위기 10장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레 10:1)
불이라고 다 똑같은 불이 아닙니다. 똑같아 보여도 다른 불이 있습니다.
돈이라고 다 같은 돈이 아닙니다. 과부가 드린 두 렙돈과 부자가 드린 헌금을 하나님은 다른 기준으로 계수하셨습니다.
시간이라고 다 같은 시간이 아닙니다. 라헬을 사랑했던 야곱에게 7년은 7년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후서에 의하면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
누구에게나 다 똑같이 한 개의 목숨이 주어집니다. 그러나 모두가 똑같은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이 땅에서부터 영원을 살기 시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살았으나 죽은 듯이 삽니다.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께 드려서는 안되는 다른 불을 드렸습니다. 아마도 술에 취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와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 그리하여 너희 죽음을 면하라 이는 너희 대대로 지킬 영영한 규례니라”(레 10:8,9)
꼭 술이 아니더라도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건 많습니다. 술은 자고 일어나 해장하면 그만입니다. 알코올은 기껏 몇시간 정도 인간을 사로잡습니다. 그러나 사상과 이념에 취하고, 자기 성취에 취하고, 돈에 취하고, 자기 연민에 취하면 깨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우리는 생각할 때보다 생각당할 때도 많습니다. 내가 자주 보고 자주 듣는 것에 따라 사고의 구조와 프레임이 짜여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프레임에 의해 같은 것을 봐도 다르게 보고, 같은 것을 들어도 다르게 듣게 됩니다. 똑같이 한 개씩 주어진 목숨이지만 다른 인생을 사는 이유입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 8:5,6)
영의 생각을 대체하고자 하는 것들이 즐비하는 이 시대, 나는 무엇에 취하여 살아가는지 질문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