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이해균 초대전 ‘산목’, 평창 진부창작스튜디오 2월 1~28일
이해균 작가 초대전 ‘산목(山木)’이 2월 한달간 강원도 평창군 진부문화예술창작스튜디오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평창문화도시재단(이사장 김도영) 주최, 진부문화예술창작스튜디오 주관, 평창군 후원으로 열린다.
이해균 작가는 제주의 팽나무를 비롯해 우리 땅 곳곳의 느티나무, 향나무, 미루나무 등 30여 점을 선보인다.
다음은 이해균 작가의 ‘2월의 산문’이란 제목의 글이다.
‘속수무책’이란 시가 있다.
더 이상 빠져나갈 출구가 없는 꼼짝 못하는 시간이다. 도마 위의 광어를 비유한 조항록 시인의 속수무책이 가장 직유적이고 상황적인 시다.
도마 위에서 안간힘을 쓰는 광어를 어찌할까
이를테면 연민 때문인데 납작 엎드려 살아온 것이
죄는 아니지 않은가
한쪽만 보고 살아 다른 한쪽을 외면한 것이
정말 죄는 아니지 않은가
저 살 속에 저며 있는 바다의 노래에 귀 기울이면
가시들의 일상이 다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마지막 헤엄은 눈물 속을 헤매는 법이고
이제 속속들이 칼날이 닿으면
한 접시의 순결한 고백만 남을 것
모든 속수무책의 생애에 대해
오직 천사 같은 몸부림에 대해
신정도 가고 구정도 가고
이리해도 저리해도 확실히 한 살 더 먹고 만
속수무책의 시간이 지나갔다.
해가 바뀌는 시간에도 쉼표는 없다.
쳇바퀴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게 인생인가보다. 젊은 시절 나는 해가 바뀔 때마다 산행을 하거나 바다로 가서 일출을 보았다. 전국곳곳에 독특한 해맞이 장소가 있었다. 남해일출이나 정동진과 간절곶 일출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맹추위에 귓 불이 얼어붙는 혹한에도 나는 늘 혼자 갔다.
참 세상이 넓지만 각자 살아가는 방법이 달라 함께할 사람을 찾지 못했던 것 같다. 여행, 등산, 라이딩, 수영, 피트니스 등 모든 것을 혼자 시작하고 혼자 실행했다. 가끔 동행할 친구가 생기면 너무나도 기뻤다.
혼자여행은 외롭고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히말라야 고봉이 내려다보이는 라룽라에서 혼자였다는 게 너무 싫었던 기억이 있다. 아무리 아름다운 광경도 그것을 증거할 동행자가 없으면 무슨 기쁨이 있겠는가.
천상의 세계를 본들 벅찬 감격을 나눌 누군가가 없다면 호흡 없는 감동이요 독백 같은 웅변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여행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꼭 거짓말을 하는 것만 같아서다.
격량의 세월이지만 특히 새해 한 달, 즉 1월이 가장 빠른 것 같다. 새해 덕담을 나누다보면 어느덧 한 달이 가고만 것이다.
담배를 끊자.
술을 끊자.
백두대간 종주를 하자.
새해 들어 한 가지 결심을 하는 것도 이젠 포기가 된다. 포기가 되는 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이러다간 인생을 정리할 시간마저도 포기가 되는 게 아닐까 싶다.
100살을 살다보니 65~90세 때 가장 좋았다는 김형석 선생의 말에 희망을 걸다가도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어”라고 쓴 버나드 쇼의 묘비명처럼 속수무책의 시간이 무섭다.
그러나 한 가지 특이한 것은 문화센터에서 미술 강의를 하면서 30·40대 수강생보다 60·70대 수강생이 더 열중하는 걸 본다. 그들은 강의 시간에 배운 것도 모자라 집에서 혼자 그린 그림을 수시로 수강생 단체 밴드에 올리며 스스로 즐긴다.
남은 생에 쫓기기보다 무엇이고 집중하는 오랜 인생 수련이 바탕일 거라고 믿는다. 무엇을 해도 두렵지 않고 어떤 실패도 회복할 시간이 있는 젊은이들과는 다르지만 젊다는 게 안주도, 정주도 되지 못한다는 것을 경험한 현재진행형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곧 봄이 올 것이다. 올봄엔 꽃향기와 연둣빛 신록을 잡아두고 오랫동안 취해보고 싶다. 문득 매화 핀 이월에 쓴 다산 정약용의 시를 떠올려 본다.
지난해 그대가 매화 주인이었기에
금년에 매화피자 그대가 생각나네
약초 속에 머물러 향내를 맡을 만하나
그날 마시던 차는 맛을 잊어버렸네
객지의 세월은 강물처럼 흘러가고
꿈에서 읊는 시구는 정운 구절만 기억 나누나
남은 생애에 비방과 칭찬은 무어 따지랴
발부 이루자마자 백발이 되었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