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현상 극심 ‘87체제’ 혁파 ‘27체제’로···계묘년을 ‘정치개혁 원년’으로

1987년 6월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가 관철됐다. 그후 36년 극심한 분열현상은 87체제의 극복을 요구하고 있다. 


국회의장·국무총리·대학총장 지낸 원로 30여명 성명

쇠 달았을 때 개혁해 망국적 분열, 치유와 통합으로

87년 민주화 이후 8번째 대통령이 등장했다. 그동안 선출된 7명의 대통령 중 3명은 영어의 몸이 돼 수감생활을 했다. 그 중 1명은 퇴임 후 비리혐의 수사를 받던 중 추락사한 비운을 겪었다.

민주화 주역 김영삼 김대중 역시 임기 말 가족 비리로 곤혹을 겪고 국정까지 흔들렸다. 또다른 1명은 헌정사상 첫 국회 탄핵 결의 후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쫓겨났다. 일제 식민지에서 벗어나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한 위대한 대한민국이다. 경제 10위 대국이요 K-팝 영화 드라마로 지구촌 문화예술을 이끌고 있다.

그런 대한민국에서 정치만 ‘개판 5분 전’이다. 독재체제를 청산하고 미래 한국을 이끌어줄 견인차로 기대했지만 우리 정치는 점점 더 분열과 퇴행의 나락으로, 아니 수렁 속으로 빠져든다.

87체제로 36년 전 힘들게 발을 뗀 민주화 대가는 참으로 녹록치 않았다. 경제외형은 성장했지만 행복지수는 떨어지고 양극화 자살률은 높아졌다. 정치민주화로 시민 목소리는 커졌지만 갈등은 증폭되고 소통은 사라졌다. 국가나 사회 공동체보다 개인이나 집단 이익을 우선하는 데 거리낌 없다. 자유를 남용해, 주먹을 남의 얼굴 앞에서 멈추지 않고 마구 휘두른다. 그렇게 존중해야 할 타인의 명예나 가치를 마구 짓밟는 망동을 저지른다. 맹목의 깃발을 치켜든 팬덤 정치는 공존이나 통합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법과 원칙, 가치 판단의 일관성이 무너진 정치권에선 내로남불의 일상화다. 상식과 합리는 무시되고, 가짜뉴스와 날 선 선전과 선동만 판을 친다.

이런 도착과 병리 현상을 치유하긴커녕 늘 앞장서는 게 정치권이다. 주요 대선 후보의 비호감도가 60%를 넘나든 걸 목격하지 않았는가?

제1야당 대표가 검찰로 불려가 조사받는데, 국회의원 40여 명을 동원했다. 비리혐의로 조사받으면서 민주화에 앞장 선 김대중인 양, 그를 소환한 건 파렴치와 다름없다.

정치지도자들이 나라의 미래는 보지 않고 눈앞의 승리에만 골몰하고 있다. 그러니 세대, 젠더, 계층, 지역갈등을 증폭시키고 그저 표만 계산한다. 지도자 자격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지도자然 하는 거다.

40년 세월, 8명의 대통령까지 6.10항쟁이 낳은 87체제는 극도로 피로하다. 더는 존속할 기력도 명분도 이유도 없는 낡은 체제는 분열만 조장한다.

드디어 때가 왔다. 정치개혁을 할 물실호기가 왔다는 말이다. 쇠가 달았을 때 개혁을 이뤄내지 못하면 나라는 망국으로 치닫고 말거다. 윤석열 대통령이 새해 벽두 ‘중대선거구제’를 언급, 정치권 화두로 올렸다.

“소선거구제는 전부 아니면 전무로 가다 보니 선거가 너무 치열해지고 진영이 양극화되고 갈등이 깊어졌다. 중대선거구제를 검토하자.”
그는 “지역에 따라 2, 3, 4명을 선출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다”고도 했다.

김진표 국회의장도 각 정당에 선거법 개정안을 내달라고 맞장구를 쳤다. 소선거구제보다 중대선거구제로 개혁이 필요하다는 게 정치권 대세다.

물밑에서 전직 국회의장 국무총리와 주요 대학 총장을 지낸 원로들까지 30여명을 모아 중대선거구제 도입 등 정치개혁을 촉구하는 움직임이 있다. 퇴임 후 정치권과 선을 긋고 지내던 김부겸 전 총리가 모임의 주요 역할을 맡게 된다고 한다.

원로들이 의견을 모아 정치개혁 성명을 내면, 이를 계기로 전국의 정치학자나 교수협의회 등에서도 지지하는 성명 릴레이가 펼쳐질 전망이다. 마침 정치권에서도 여야 할 것 없이 중대선거구제 도입에 긍정적이다. 직선제와 소선거구제로 상징되는 87년 체제는 종언을 고해야 한다.

그 첫번째 시도가 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꾸는 것이다. 87체제의 핵심인 승자 독식(Winner takes all)의 대통령 직선제를 손보기 위한 헌법개정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갑론을박, 백가쟁명일 거다. 그러니 정치권 대다수가 동의하는 방향의 중대선거구제부터 도입하자.

그것을 시발로 검은토끼해가 정치를 개혁하는 원년이 되길 바란다. 윤석열의 대통령 당선은 87체제, 정치시스템의 한계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현직 검찰총장이 사임한 후 정치에 입문, 6개월 만에 야당 후보에 이어 당선까지 한 건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30년 군사독재도 긴 세월이지만  87체제도 벌써 36년 세월이 흘렀다. 나라가 또 한번 도약하려면 새 시대정신으로 정치를 바꿀 필요가 있다.

윤 대통령 정부 임기말, 87체제를 청산하고 ’27체제’로 나아갈 준비를 하자. 정치가 이대로 대한민국의 우환 덩어리로 나라를 망치게 해서는 안된다. 정치인 야합을 막도록 학계뿐 아니라 MZ세대와 양심적 시민사회까지 나서자. 의원 등 선출직 평가시스템도 정비하고 미래의 정치인을 키우는 충원시스템도 만들자.

아집과 독선, 막말과 비방, 거짓뉴스와 선동, 무능한 예능형 정치인들도 퇴출시키자.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정치인이라면 장기 과제로 무소불위의 대통령 직선제와 양당정치 폐해를 극복하는 정치개혁에 앞장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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