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기다리는 동안 받는 복

“편지를 쓰고는 답장을 수개월 동안 기다릴 줄 알았던 인류의 인내심은 이제는 하루를 채 넘기기 어려워졌습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허비하는 시간, 버리는 시간이 되어버렸습니다.” 사진 오래 된 우체통 <출처 옛생각 갤러리>

*야고보서 3-5장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야고보서 5장 7절)

핸드폰으로 메세지를 보내고 답장이 오기까지 나는 얼마나 기다릴 수 있을까요? 세상이 무지 빨라졌습니다. 286 컴퓨터의 연산속도에 흥분했던 인류가 이제는 양자컴퓨터의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마저도 언젠가는 느려터진 구세대 기술이 되어있겠지요.

인류는 기다리는 시간을 단축하는 일에 필사적입니다. 작은 화면 위에서 손가락 몇 번 움직여 바로바로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점점 더 늘고 있습니다. 과거에 며칠 걸리던 일을 이제는 하루만에 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돼지가 성체가 되기까지는 1년이 넘게 걸리지만, 인간은 성장촉진제를 투여해서 6개월만에 성체를 만들고는 도축합니다. 그런데 가축뿐만 아니라 인간 사회 전체가 성장 촉진제를 맞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지금 당장’이라는 마약을 맞는 중에 점점 기다릴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편지를 쓰고는 답장을 수개월 동안 기다릴 줄 알았던 인류의 인내심은 이제는 하루를 채 넘기기 어려워졌습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허비하는 시간, 버리는 시간이 되어버렸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흘러가더라도 나의 신앙마저 시대의 물살에 떠밀려 내려가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약 5:11)

신앙생활에서 기다리는 시간은 허비하는 시간이 아니라, 무언가를 얻는 시간입니다. 천천히 기다릴 때에만 시야에 들어오는 것이 있습니다. 너무 빨리 사느라, 바쁘게 사느라 보지 못했던 것들입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시간, 기도하고 난 후 응답을 기다리는 시간, 나와 호흡이 맞지 않는 타인을 기다려주는 시간 등 기다림이 길어지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무언가를 보여주십니다. 내가 반드시 봐야 할 것이 있기 때문에 기다림이 길어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기다리는 시간이 없었다면 깨닫지도, 누리지도 못했을 복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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