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의 으뜸 성공 비결 ‘겸손’
겸손이란 무엇일까? 겸손은 고개를 숙이는 게 아니고, 마음을 숙이는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목격하거나 맞닥뜨리는 여러 가지 화(禍)의 근원은 겸양이 없는 탓이다.
화를 자초하는 것은 스스로, 또는 다른 사람에게 겸손하지 못하고, 양보하는 마음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겸손과 양보는 곧 존경과 배려다. 겸손의 사전적 뜻은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가 있음’이다.
그래서 첫째, 자신에게 겸손하고, 둘째, 남에게 겸손하며, 셋째, 세상사에 겸손한 것이다. 이처럼 겸손은 지녀야 할 모든 덕의 으뜸인 원덕(元德)이요, 모든 일을 통하게 하는 형덕(亨德)이며, 모든 것을 이롭게 하는 이덕(利德)이고, 곧고 바른 정덕(貞德)이라고 한다.
수탉 두 마리가 암탉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둘은 한참 싸웠고 마침내 승패가 결정됐다. 싸움에서 진 수탉은 깊은 상처를 입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어둑한 구석으로 숨어 버렸다. 반면 이긴 수탉은 암탉을 차지하게 된 기쁨과 승리에 도취해 높은 담장 위에 올라가 큰소리를 지르며 자랑했다.
“꼬끼오~! 이 세상은 이제 내 것이다.” 그때 그 소리를 듣고 독수리 한 마리가 어디선가 날아와 눈 깜짝할 사이에 담장 위의 수탉을 낚아채 가버렸다. 결국 싸움에서 진 수탉이 슬그머니 암탉을 모두 차지하게 되었다.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조심해야 하고, 또한 겸손해야 한다. 그리고 그때가 가장 위험한 때다. <소학>에 ‘종신양로 불왕백보 종신양반 부실일단’(終身讓路 不枉百步 終身讓畔 不失一段)이라는 글귀가 나온다. “평생 남에게 길을 양보하면서 살아도 그 손해가 백보밖에 안 되고, 평생 밭두둑을 양보한다 해도 한 단보(段步)를 잃지 않을 것이다”라는 뜻이다.
프랑스의 레몽 푸앵카레 대통령이 어느 날 자신의 모교 솔버대학교 재학 시 은사였던 라비스 박사의 교육 5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게 되었다. 많은 축하객이 자리에 앉았고, 라비스 박사는 답사를 위해 단상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갑자기 라비스 박사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객석쪽으로 뛰어가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지난날 자신의 제자였지만, 지금은 프랑스 대통령이 된 제자가 내빈석도 아닌, 학생석의 맨 뒷자리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놀란 라비스 박사가 대통령을 단상으로 모시려 하자 대통령은 사양하면서 말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의 제자입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선생님이십니다. 저는 대통령의 자격으로 이 자리에 참석한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 제자로서 선생님을 축하해 드리려고 온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감히 선생님이 계시는 단상에 오르다니요? 저는 선생님의 영광에 누가 되는 일은 하지 않겠습니다.”
라비스 박사는 할 수 없이 그대로 단상으로 올라가 말했다. “저렇게 훌륭하고 겸손하신 대통령이 나의 제자라니 꿈만 같습니다. 여러분! 우리나라가 저런 대통령을 모셨으니 우리나라는 더욱 부강해질 것입니다.” 순간 자리를 메운 많은 관중은 큰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 후 푸앵카레 대통령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고 한다.
겸손은 고개를 숙이는 게 아니고, 마음을 숙이는 것이라 했다. 그래서 겸손은 상대를 존중하고, 역지사지 마음으로 진솔하게 이해하면서 인정하는 것이다. 높은 자리에 올랐다고 교만하게 거들먹거리면 모든 인연은 끊어지게 마련이다.
어는 단체, 어떤 조직을 막론하고 리더가 결코 잊어서 안 되는 한 단어가 있다면 겸손이다. 노자 <도덕경> 제66장에 ‘기선하지’(其善下之)라는 말이 나온다. “江海所以能爲百谷王者, 以 其善下之 故能爲百谷王”(강과 바다가 온갖 계곡물의 왕이 될 수 있는 까닭은 잘 낮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온갖 계곡물의 왕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