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중반 대학동기들, 이른 송년회 단상

넘치는 열정과 끝없는 도전의 삶, 80대 중반 무대에 선 패티김. 18일 이른 송년회를 연 60대 중반 동창들도 그같은 삶을 살아내길…


타임머신 타고 과거로의 여행과 친구들 만남은 마냥 즐거워

“빨리 죽어야지, 늙으면…” 3대 거짓말 중 하나다. 처녀가 시집 안 간다는 건 이제 거짓도 아니지만… 불금일 어제(11월 18일), 대학동기 50명쯤이 참석한 이른 송년회(정기총회)에 갔다. 그런 곳에 잘 안 다니는 편인데, 가까운 친구가 차기 동기회장이 돼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했다.

이런 저런, 통과의례적 인삿말에 감사 보고까지 나는 뭔가 집필을 하며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러다 집필이 끝난 시점과 돌아가며 근황을 얘기하고 나름의 소원 수리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뒤쪽에 있다 보니, 길게 5분 이상 하는 장광설들도 꽤 있어 말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내가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라, 내 옆에 있던 몇몇이 그렇게 말해 얼추 계산해보니 그랬다.

나도 관종인지라, 어디 가든 반드시 마이크를 잡아야 하고, 노래까지 한자락 하는 체질이다. 그런데 어제는 굳이 시간 관계상 생략당하면 그냥 넘어가지 했는데…

화제가 노년에 관한 것들이 많아, ‘아 우리도 이제 그리됐지…’ 하는 생각이 퍼뜩 머리를 스쳤다. 늙는다는 걸, 뭐 익는다고 깝치고, 노래에나 그렇지 익긴 뭘 익느냐 이 말이다.

어떤 친구가 스스로 비하하며 “철이 안 들었다”는 둥 하다가 막판에 반전을 했다. 능력이 부족해 100살 때, 그러니까 2050몇년 쯤 동기회장을 하겠단 말로 폭소를 자아냈다.

누구는 동기 곳간에 1억5천만원(?)이 들어있는 걸 언급하며 하나씩 본인상 당하면 분란이… 실제로 분란이 난 학교 동기회가 있다는 얘기도 하니 “참 늙어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기회장이 된 오세헌은 “여기에 오신 분들부터 먼저 나눠줄 것”이라고 농담도 했다. 누구는 70세까지만 일을, 다른 친구는 뭔 소리냐 그 후에도 건강이 뒷받침하면 계속 해야… 그러자 또 다른 친구는 “그런 것은 자신이 결정하는 게 아니다”라며 제법 근엄한 표정이다.

누구는 팩폭이라며 자기 자랑을 상당히 섞어 재미나게 살아왔던 여정을 반추한다. 대학교수인 현 동기 회장(어제까지)의 부인은 초등학교 교사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남편을 약간 얼뜨기 취급하더니, 친구들에게 인정받고 있는 모습을 보니 대견하다고 칭찬한다.

“자기 표현을 잘 하진 못할 걸로 생각했는데, 역시 똑똑한 사람들이 재미있게 얘기도 잘 한다.” 장관 하고, 청와대 수석도 한 동창을 비롯한 좌중을 초딩 대하듯 구수하게 말을 늘어놓는다. 마지막에 “딸이 곧 혼인할 거”라는 공지까지 잊지 않는 걸 보고, (속으로) “졌다”라고 했다.

근자에 본 가장 눈 코 귀 입까지 갖춘 빼어난 스피치였다.

새가 하늘에서 조감을 하듯, 위에서 아래로 내려보면 말이든 처신이든 물 흐르듯 할 수 있다. 단지, 오만방자 방약무도만 피할 수 있다면…    

65세 이상 노인은 815만명으로 전체인구의 15.7%다. 노인 빈곤이나 자살률이 OECD 국가들 중 우리가 단연 수위라는 슬픈 현실에 가슴이 먹먹하다. 나야, 그래도 집 한채도-아내 공이지만- 있고 몇푼 안되는 연금도 나오니 굶어 죽을 일은 없다. 아니 검소하게 살면서 90살까지는 돈과 무관한 일을 하면서 파닥거리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90~100살까지는 하던 일을 절반으로 줄이고, 나머지 절반은 나 스스로를 ‘최도사’ 별호로 자칭하듯 도를 닦고, 신선공부 하면서 100세 이후의 삶에 대비하련다.

100~150살까지는, 더 살지도 모르지만, 지리산 청학동 같은 곳에 움막 짓고 신선공부할 테다. 내 선조가 최치원 선생에 최제우 최시형 동학의 창시자들이다. 그렇게 호언장담 하며 찧고 까부니까 좌중에서 다들 웃는다.

그래서 나는 흰소리는 그만 두고 노래나 한 자락 하겠다고 했다. 아카펠로로 할 줄 아는 게 10여곡은 된다. 애창하는 안다성의 ‘사랑이 메아리칠 때’를 감정 잡으며 불렀다.

눈을 감진 않았다. 맞은 편에 한번씩 통기타 치며 노래하고 시를 외는 친구의 얼굴이 보였던 것 같다. 이 친구는 부잣집에서 컸는지, 피아노 있는 술집에 가면 연주도 하는데 폼이 났다. 교외에 집을 짓고, 지금도 주말에는 교외의 셋집에서 전원생활을 준비 중이다. 한 친구는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곤 계속 서서 여기저기 다니며 카메라를 찍는다. 우리 동기회 아카이브로 자칭타칭으로 봉사하는, 본인이 즐기기도 하지만, 좋은 친구다.

누군가 “몇십 년 뒤 다 죽었는데, 우리 사진이 가상공간에서 살아 숨쉬고 돌아다니면…” 한다.

“디지털 좀비들인데, 끔찍하다”라고 한마디 하니, “아바타가 그런 거”라고 누가 거든다. 바로 옆 변호사 친구는 600~700평을 근교에 장만해 각종 유실수를 심고 먹거리도 기른다.

제법 아마츄어치고는 이골이 난 듯이 농삿일을 말하는데, 실전 경험이 제법이다. 나도 청계산 자락에 텃밭(5평)을 받아 상추니 뭐니 기르다 김장철에 배추 무를 심었다. 엊그제 아내와 가서 배추 10여 포기, 무 10여 개를 캐와 어제 김장을 아내가 했다. “다시는 하지 않겠다”는 말을 거듭 할 정도로 배추 씻고 절이는 일이 여간하지 않다.

나야 소 닭 보듯 멀뚱멀뚱거렸을 뿐인데, “허리가 끊어질 것 같다”는 데 일말의 가책이… 바통을 주고 받은 회장들과 몇몇은 부인을 대동했다. 김장을 안했더라면 나도 그러려 했지만 안왔을 거다. 체포하러 아내가 오지 않아 오랜만에 2차까지 갔다. 맥주를 마시며 네명이 얘기를 하는데 또 늙음에 대한 얘기가 이어진다. 동기들이 만 64, 63세가 대종을 이루고 6~7세 많은 사람들도 어제 왔다.

영주에서 주유소를 하고, 나무도 심는 6세 많은 형, 선배는 아니고, 동기도 어제 장광설이었다. 겁나게 올라왔다가 한 5분 얘기 하고, 밥을 허겁지겁 먹고 다시 차 시간 때문에 내려갔다. 그래도 고향의 삶이 물질적으로도 여유롭고, 다른 활동도 나이를 잊고 적극적인 듯하다. 사무엘 울만의 얘기를 빌지 않더라도 젊음이나 청춘은 물리적 연령이 아니라 마음가짐이다. 물리적으로 몸은 늙어가고 있지만, 영성으로 맘은 더 젊어가는 사람도 있다.

나도 그런 사람 중에 한명이고 싶다. 앞으로 어디든 매이지 않을 거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잘난 척은 줄이고 겸손하게 살 테다. 지성이면 감천이듯 겸손해야 감천하는 법이다. 못 나갈 때는 당당하게 어깨 힘 주고, 혹시 잘나간다 싶으면 고개 숙이고 살 거다. 잘 그러지 못하지만, 받은 건 바위에 새기고 베푼 건 물에 적으면서 살 수 없을까?

친구들과 만나는 건,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가는 일이니 늘 유쾌한 일이다. 돈도 그리 많이 들지 않는다. 집을 나서면 갈 때가 점점 줄어드는 것에 관해서 맥주를 마시면서 얘기를 했다.

동기쉼터 같은 걸 마련하고 커피도 타 마시고, 바둑 두는 사람은 그렇게, 당구 치러 몰려가는 사람은 그렇게… 동기회에 열성적인 싱글 친구의 수다를 들으며 맥주잔을 기울였다. 술집 마담에게 패티김의 ‘초우’와 ‘9월의 노래’를 틀어달라 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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