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예수님 제자가 된다는 것···임무·사명 이전에 ‘용납’
*성경본문 누가복음 6-8장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눅 6:12-13)
인사가 만사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정권이 바뀌면 늘 대두되는 이슈가 주요 보직 인사와 관련된 문제입니다. 중요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람 한명 잘못 세우면 겪지 않아도 될 불편과 어려움을 수 많은 사람들이 겪어야 합니다. 대부분의 재난은 인재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반면에 사람 한명 잘 세우면 많은 사람이 행복합니다. 국가든 기업이든 학교든 교회든 마찬가지 아닐까요?
예수님께도 제자들은 중요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3년만 하고 가실 예정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장 3년 뒤, 예수님이 하시던 일을 믿고 맡길 만한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을 제자로 등용하는 것이 좋을까요?
그런데 그 명단을 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하나 같이 모지리들입니다. 더군다나 세리 마태는 로마의 앞잡이였고, 셀롯당 시몬은 극단적 반로마 운동권 출신입니다. 함께 뽑으면 안되는 사람들이죠. 그리고 가장 이해하기 힘든 인사는 가룟 유다입니다. 배신할 놈을 도대체 왜 뽑으셨을까요?
예수님의 부르심은 임무와 사명이기 전에 용납입니다. 제자들은 모두가 자격미달이었습니다. 예수님에 의해 그저 받아들여졌다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선악과를 인간이 먹을 줄 모르고 만드셨을까요? 인간의 행동을 예측하지 못하신 게 아니라, 선악과는 인간의 실수를 애초에 용납하기로 결정하셨다는 표시입니다.
제자답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용납을 나도 용납하는 것입니다. 나 같은 사람도 불러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자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하고 탁월한 일입니다. 예수님께는 애시당초 능력 있는 사람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전능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나라에서는 좋은 태도가 능력보다 더 능력있다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우리에게 자격같은 것은 없었고, 요구하시지도 않으셨습니다.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만드셨듯, 예수님은 자신을 배신할 사람에게도 제자가 될 기회를 주셨습니다. 유다에게는 매일 매일이 기회였습니다. 예수님의 용납을 용납할 기회 말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팔 기회만을 노리다가 예수님이 주신 기회를 다 날리고 말았습니다.
나에게도 두 가지 기회가 다 주어져 있습니다. 어떤 기회를 살릴지 날릴지, 지혜롭게 선택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