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인권·자유 탄압 독재자는 물러가라!”···주한 이란인 테헤란로 시위
“이란의 자유를 위하여!” “여성, 인권, 자유” “독재자는 물러가라!”
함성은 차분하면서도 힘찼으며, 톤은 그다지 높지 않았으나 쉽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페르시아어, 영어, 한국어 3개 언어로 시위대가 사용한 단어는 10개 남짓, 반복해서 외치는 3개 문장 가운데 8단어 가운데 ‘자유’는 2번 사용됐다.
8일 오후 역삼역 3번 출구에서 강남역 1번 출구까지 1km 거리의 인도에서 열린 주한 이란인 150여명의 시위는 누구한테 불편을 주지도, 누구의 저지나 방해도 받지 않았다. 애초 경찰에 신고한 대로 3시간만에 해산했다.주한 이란인들은 ‘여성 인권 자유’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지난 1일 주한이란대사관 앞 시위에 이어 4번째 ‘반정부·민주화 시위’를 벌였다.
이날 참석자 중에는 한국에 체류 중인 유럽 및 미국 출신들도 눈에 띄었다.
주최측은 전광판과 트럭을 빌려 이란 이외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란정부 반대시위와 이란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영상으로 공유했다. 특히 한국어 자막을 넣어 마침 거리를 지나던 한국인들이 발길을 멈추고 관람하는 모습도 보였다. 여성 참가자들은 이란 경찰당국의 과격 진압 장면 등이 화면에 비치자 울음 섞인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이들은 거리행진에 앞서 가진 집회에서 “(한국정부에 대해) 이란 독재정부의 동결 자금을 이란에 반환하지 말아달라”며 “이란 독재정부와의 경제적, 정치적 관계를 중단해달라”고 호소했다.
이날 주한 이란인들이 시위장소로 택한 테헤란로는 1977년 양국의 경제발전 및 교역 증가를 기념하기 위해 양국 수도에 상대국 수도 이름을 딴 ‘테헤란로’와 ‘서울로’로 명명해 조성됐다. 당시 양국의 정권을 잡고 있던 이란의 팔레비 국왕은 바로 이듬해인 1978년, 박정희 대통령은 이태 뒤인 1979년 각각 망명 또는 암살로 권좌에서 내려와야 했다.
한편 이날 한 참가자는 “이슬람 강경파들이 집권한 지난 40년간 숱한 반대시위가 있었지만 언론들이 침묵하면서 외부사회에 알려질 기회가 없었다”며 “이에 이번 시위 과정에선 대언론 홍보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