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의 ‘대청소 리더십’과 음주 절제에 대하여
어느 선배가 태종에 관한 글을 올렸다. 나도 윤석열 대통령에게 그런 ‘대청소 리더십’을 일찌기 주문한 바 있다. “···10명의 신하가 있다고 치자. 그 중의 1명은 틀림없는 충신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 1명은 반역을 꿈꾸는 역적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8명은 누구일까.”
필자는 태종의 다음 말에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그가 클 태(太)자를 쓰는 임금인가에 대한 의문도 풀렸다. “나머지 8명은 내가 강하면 충신이 되고, 내가 약해지면 역적이 된다.”
태종 이방원의 고뇌와 처갓집까지 멸문을 시킨 그 번뇌를 이해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국가를 경영하는 자가 맞이해야 할 슬픔이요, 고독이 아니겠는가. 박근혜의 몰락 속에서 발견한 것은 (역신으로) 돌아선 8명이었다. 그들은 비박과 친박이란 이름으로 당쟁에만 골몰했을 뿐, 주군의 위기엔 무기력한 배신자들이었다.
지금 윤석열 정부에도 1명의 충신과 1명의 역적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8명의 기회주의자가 있으리라. 나는 이배용을 교육위원장에 임명하는 담대함인지 무지막지에는 참으로 기가 막힌다. 그는 직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 자리를 탐하는 노욕으로 찌든 ‘하고재비’ 아닌가. 누가 이배용을 그 자리에 천거했는지 나는 안다. 나라 잘 다스리고 국리민복을 도모할 생각이라면 그런 삿된 인사를 결코 할 리 없다. 절망과 탄식이 터져나올 뿐이다.
지도자가 말 많이 하면 아래는 멀뚱멀뚱 그 입만 쳐다본다. 수다스러운 다변에는 무게도 좀체 실리지 않는다. 잘못된 결정이 나와도 밑에선 직언은커녕 복지부동이다. 입을 꾹 다물고 눈치보다 회의시간이 휙 지나가기만 기다린다.
‘경청’ 삼성 이병철이 후계 이건희에게 말이 아니라 글로 써준 교훈이요 엄명이다. 왜 두 귀에 입은 하나인가?
나라 다스리는 건, 참 힘이 들고 살얼음판을 걷듯이 해야만 겨우 과락을 면한다. 작은 생선을 굽듯, 깨어지기 쉬운 그릇을 씻듯 정신줄을 꼭 붙들고 해나가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소탈했지만 대통령 재임 중 음주를 절제했다. 마음의 벗으로, 검찰총장이던 정상명쯤 되는 사람과만 오붓하게 술잔을 드물게 기울였다. 술을 끊지는 못 하더라도 절주를 해야 한다. 마실 술 다 마시며 하기에는 그 대통령직이 너무도 엄중하다. 비서관, 행정관 80여명을 내쳤다.
그리고 이들에게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 중에는 가족들에게 잘린 사실도 숨긴 채 용산 카페로 출근 시늉을 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비록 3, 4개월이지만 보고 들은 게 많을 거다. 이들이 불만 세력화하니 거야가 선을 댄다. 연일 터져나오는 집권 세력 내 약점 폭로와 불만에 찬 이들의 눈초리가 무관할까?
시한폭탄과 인화성 높은 물질, 지뢰까지 널부러져 있다. 거야는 벌써 각료 해임건의와 탄핵 주장까지 강공으로 간다. 사법리스크에 노출된 이재명 대표 구하기 차원에서 공세는 더 거세질 거다. 그 칼끝은 결국 윤 대통령의 급소를 노리고 있을 거다.
10월 초, 권노갑을 비롯해 김원기 임채정 등 민주당 원로그룹이 광주에서 모였다. 가을 운동이 겉이라면, 속으로는 위기의 거야를 수렁에서 건져낼 방책도 논했을 거다. 국힘에는 그런 걱정을 하는 원로도 없는가?
참으로 거대한 쓰나미가 몰려오는 해변에서 절부지들은 소꿉장난질에 여념이 없다. 어떤 우매한 자는 취해서 곧 무너질 모래성 쌓기에 정신이 팔렸다. 새 시대가 오기도 전에 먹구름이 짙다.
그래서 진정 새 시대가 열릴 지도 모른다. 새 시대의 주역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그러나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누군가 이들을 규합할 지도력을 발휘해야 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