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평화 길찾기③] ‘2018년의 실험’ 그 의의와 평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도보다리 산책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김성민 단장이 6월 29일 한미수교 140년, 한인미주이민 120년을 맞이해 하와이주립대에서 개최된 제23회 세계코리아포럼에서 ‘동아시아의 냉전과 한반도, 평화의 길 찾기’를 주제로 기조연설을 했다. 한반도 통일과 동아시아 평화공동체의 실현을 논의하는 세계코리아포럼은 올해 23회째를 맞았다. 김 단장은 “동서냉전의 축과 동아시아냉전의 축이 다르기 때문에, ‘냉전’과 ‘신냉전’이라는 기표에 매몰된다면 우리는 ‘동서냉전’ 및 그것의 부활로 간주되는 ‘신냉전’(미국-NATO/러시아)과 동아시아에서 진행되었던 ‘신냉전’(미-일/중-북)의 차이를 간과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한국 입장에서는 현재 동북아로 건네지는 냉전의 먹구름을 막기 위해서는 남북관계 개선을 포함하여 다극화하는 외교전략을 수립하고 국제적인 평화연대를 실천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아시아엔>은 김성민 단장의 발제를 4차례 나눠 싣는다. <편집자>

그렇다면 동북아시아에서 냉전을 완전히 해체할 수 있는 길은 아직 해체되지 않는 다른 한 축의 냉전, 즉 ‘조선’과 남방삼각에 속하는 국가들, 북미, 북일 간의 외교 정상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북의 핵 폐기 및 완전한 비핵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이것을 하기 위해서도 북이 요구하는 ‘종전선언’을 포함한 ‘체제보장’이 필요하다. 그것은 북과 남방삼각 간의 냉전이 ‘휴전상태’인 분단체제를 통해서 여전히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2018년 ‘4.27판문점선언’과 ‘9.19평양선언’이 2000년 ‘6.10남북공동선언’이나 2007년 ‘10.4선언’과 다른 역사적인 독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2018년의 실험은 남북 정상이 합의한 내용이 새롭기 때문이 아니다. 합의 내용은 이미 14년 전 있었던 ‘10.4선언’을 기본적인 골간으로 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8년 남북 정상 사이에서 이루어진 합의는 이전의 합의들을 뛰어넘는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째, 그것은 남북관계의 개선이 ‘한반도의 비핵화’와 관련하여 북미관계의 개선이라는 ‘냉전의 해체’와 함께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남북관계의 개선이 ‘평화와 공동번영’이라는 관점에서 개성의 연락사무소 설치, 남북 철도연결 사업 및 GP철거와 DNZ 내의 남북공동유해발굴 등과 같은 휴전선에서의 군사적 대립 관계의 청산 및 해체라는 실질적 조치들의 수행과 함께 ‘남북철도 및 도로 복원’와 같은 경제적 협력이 실천적으로 모색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우리가 현재 목도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이와 같은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는 ‘위대한 실험’은 실패했다. 미국에서의 강경파들이 계속해서 북을 압박하면서 협상 틀이 서로 부딪혔고, 북-미 간의 협상이 결렬되면서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던 남북관계에 대해서조차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남북철도연결도, 종전선언뿐만 아니라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도 허용되지 않았다.

게다가 현재의 바이든 행정부는 국제정치에서 과거 미국의 영광을 되찾고자 하기 때문에 국제적인 냉전을 강화하고 있다. 지금의 국면에서 세계 질서는 미국의 일방적 패권질서, 단극적인 헤게모니가 지속적으로 약화되어 온 과정에서 나타나는 불안정성을 반영하고 있다. 전체를 관리할 수 있는 일극적 힘은 약화된 반면 이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세력균형이든, 힘의 조정이든 안정적인 질서 재편은 아직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 상태에서의 불안정성은 세계 곳곳에서 돌출적으로 튀어 나오는 정치군사적이고 경제적인 위기들과 문화의 충돌 등이 보여주듯이 과거 냉전시대보다 훨씬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과거 헤게모니 질서를 다시 구축해서 현재 상황을 통제하고자 하기 때문에 냉전의 가능성은 언제든지 상존한다. 미국은 동북아에서도 과거 동서냉전체제 하에서 형성된 한미일 삼각동맹을 활용하여 미영 동맹과 비슷한 수준에서 미일 동맹 체제를 구축하고 일본의 재무장화를 대놓고 부추기고 있다. 따라서 2018년 한국에서 진행되었던 ‘위대한 실험’의 실패에서 일차적인 책임은 미국에 있으며 동아시아의 냉전을 불러오는 일차적인 주체 또한 미국이다. 그리고 이것은 다른 한편으로 남북관계가 결코 남북 간의 관계로 환원될 수 없으며 오히려 여기서 보다 일차적인 규정력을 갖고 있는 것은 미국의 대외전략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한반도에서 분단체제는 남북의 적대적 대립의 산물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동북아시아 냉전의 응축물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분단체제의 해체는 동북아시아의 냉전을 해체하는 과정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 ‘6.10’, ‘10.4’로 이어지는 분단체제의 해체가 오히려 그 역으로 전화한 것은 남북관계의 개선이 바로 이와 같은 국제적 냉전의 해체로 이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냉전의 해체 없는 분단체제의 해체는 언제든지 그 역으로 전화하면서 분단의 적대성을 강화하면서 분단을 매개로 한 한반도에서의 냉전을 다시 강화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이번에 진행되는 신냉전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보여주듯이 ‘열전’의 가능성을 포함한다. 따라서 남북관계가 다시 냉전의 구렁텅이로 한없이 떨어지면서 한-미 동맹 강화로만 진행된다면 동북아 전체에서 긴장은 고조될 수밖에 없으며 일본의 군국주의화 또한 강화될 것이 분명하다. 특히, 이런 냉전은 남북의 분단, 휴전선을 통해서 작동한다는 점에서 남과 북에 살고 있는 코리언들에게는 직접적인 생존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국제정치를 좌우하는 힘의 역관계에서 미국의 규정적인 힘을 들어 한국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식으로 체념적 태도를 취한다.

물론 이는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게다가 한반도의 분단이 동북아 냉전을 생산하는 핵심적인 기제였다는 점에서 분단의 적대성을 약화하는 것은 분명 신냉전의 도래를 막는데 일정한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므로 한반도의 분단이 동아시아의 전쟁 고조라는 먹구름을 몰고 오는 재앙이 되지 않고 오히려 그 역의 평화를 생산하는 교두보가 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문재인정부가 스스로를 ‘운전자’로 규정해놓고도 실천하지 못한 ‘민족간 내부거래라는 남북관계의 독특성’을 근거로 발휘하는 ‘재량권’을 극대화해야 한다. 그리고 미-중 간에 어느 한 편이 아니라 중립적인 등거리 외교를 구사해야 한다.

2018년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하지만 이것만으로 부족하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4.27판문점선언과 9.19평양선언의 정신으로 돌아가 그때 합의한 내용을 실천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럴 때에만 한반도의 분단은 재앙이 아니라 오히려 평화의 전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입장에서 현재 동북아에 불어오는 냉전의 어두운 먹구름을 막기 위해서는 남북관계만이 아니라 외교상에서 다극화전략이 필요하다.

과거 한국은 한반도의 분단을 둘러싼 4대 열강(미-일/중-러)에 초점을 맞추어 외교를 구사했다. 또한, 최근 10여년은 미중 패권경쟁이 격화하면서 이를 중심으로 한 외교를 구사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외교전략에서도 오히려 미중의 신냉전의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했다. 따라서 미중 외교 중심 전략에서 벗어나 외교 자체를 아세안이나 유럽 등등으로 다극화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오늘날 냉전 자체가 전세계적인 형태로 복원되고, 냉전의 위험 또한 과거처럼 안정적으로 관리되지 않은, 언제든지 국지전 형태의 열전(hot war)을 불러올 수 있는 냉전이라는 점에서 동북아 신냉전에 갇히지 않는 외교전략이 필요하다. 특히, 이를 위해서는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전략, 그 중에서도 동남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한 아세안과의 외교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남방정책의 복원이 필요하다. 즉, 이전까지 진행되어 온 북방정책과 함께 신남방정책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동아시아의 불안정한 냉전을 관리하는 국제 협력을 구축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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