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평화 길찾기①] ‘신냉전?’···엄혹한 현실의 도래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김성민 단장이 6월 29일 한미수교 140년, 한인미주이민 120년을 맞이해 하와이주립대에서 개최된 제23회 세계코리아포럼에서 ‘동아시아의 냉전과 한반도, 평화의 길 찾기’를 주제로 기조연설을 했다. 한반도 통일과 동아시아 평화공동체의 실현을 논의하는 세계코리아포럼은 올해 23회째를 맞았다. 김 단장은 “동서냉전의 축과 동아시아냉전의 축이 다르기 때문에, ‘냉전’과 ‘신냉전’이라는 기표에 매몰된다면 우리는 ‘동서냉전’ 및 그것의 부활로 간주되는 ‘신냉전’(미국-NATO/러시아)과 동아시아에서 진행되었던 ‘신냉전’(미-일/중-북)의 차이를 간과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한국 입장에서는 현재 동북아로 건네지는 냉전의 먹구름을 막기 위해서는 남북관계 개선을 포함하여 다극화하는 외교전략을 수립하고 국제적인 평화연대를 실천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아시아엔>은 김성민 단장의 발제를 4차례 나눠 싣는다. <편집자>

[아시아엔=김성민 건국대 교수, 통일인문학연구단장] 많은 사람이 동서냉전과 동아시아 냉전을 구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서로 다르다. ‘동(소련-러시아)/서(미국-유럽)’ 냉전의 축과 동아시아 냉전의 축(중국/미국-서방)은 다르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냉전’과 ‘신냉전’이라는 기표에 현혹되어 같은 것으로 간주한다면 우리는 ‘동서냉전’과 그것의 부활로 간주되는 ‘신냉전(미국-NATO/러시아)’과 동아시아에서 진행되었던 ‘신냉전(미-일/중-북)’의 차이를 간과하게 될 것이다.

필자 김성민 교수

또한, 그렇게 되면 ‘미-일/중-북’이라는 동아시아의 냉전질서가 한반도의 분단체제를 매개로 하여 이미 10여 년 전부터 진행되었던 미-중 간의 패권경쟁의 실체를 놓치게 될 것이다. 이 글은 이와 같은 냉전의 차이를 밝힘으로써 오늘날 한반도가 동북아에서의 평화를 이룩하는 교두보가 될 수 있는 길을 찾고자 했다. 

동아시아 냉전은 유럽을 중심으로 형성된 동서냉전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1945년 일제 패망과 함께 찾아온 냉전은 동남아시아와 동북아시아 두 곳에서 진행되었다. 동남아시아에서 기획된 냉전의 축은 베트남이었고, 동북아시아의 냉전의 축은 한반도의 38선과 한국전쟁이었다. 미국은 한국전쟁 와중의 1951년 일본과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을 맺었고 북중러 대 한미일이라는 삼각동맹의 대립축이 구축되었다.

따라서 동서냉전의 해체에도 불구하고 동북아의 냉전은 절반의 해체에 머물렀다. 노태우정부의 북방정책으로 ‘한국’과 기존 북방삼각에 속하는 국가들과의 외교정상화로 ‘평화적 관계’가 수립되었지만 ‘조선’과 남방삼각에 속하는 국가들과의 외교정상화는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8년 남북, 북미 간에 이루어진 일련의 정상회담은 이것을 해체하고자 한 위대한 실험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실패했고, 오늘날 우크라이나 전쟁은 ‘북-중-러’ 대 ‘남-미-일’의 동맹을 강화함으로써 이 대립축을 보다 강력하게 재생산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그러므로 한반도의 분단이 동아시아의 전쟁 고조라는 먹구름을 몰고 오는 재앙이 되지 않고 오히려 그 역의 평화를 생산하는 교두보가 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문재인정부가 스스로를 ‘운전자’로 규정해놓고도 실천하지 못한 ‘민족간 내부거래라는 남북관계의 독특성’을 근거로 발휘하는 ‘재량권’을 극대화해야 한다. 또한, 한국의 입장에서는 현재 동북아에 불어오는 냉전의 어두운 먹구름을 막기 위해서는 남북관계만이 아니라 외교상에서 다극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국제 연대적인 실천이 필요하다. 첫째, 분단-냉전체제에 연관되어 있는 나라들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분단체제와 냉전체제의 해체를 동시 병행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둘째, 일본의 제국주의에 대한 철저한 자기반성에 기초하여 ‘홀로코스트’에 준하는 차원에서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단죄 및 보상-치유에 관한 국제적인 공감과 연대의 틀을 형성하고 국제적인 애도화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셋째,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산물인 현재의 냉전적인 동아시아 국제 질서를 평화와 연대에 기초한 새로운 동아시아의 국제 질서로 바꾸어가는 실천들을 모색함으로써 궁극적인 평화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올해는 2022년으로, 21세기도 벌써 22년이나 지나갔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20세기가 남긴 유산을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20세기는 격동의 세기였다. 20세기 동안 인류는 두 번의 세계대전을 치렀고 사회주의혁명과 민족해방투쟁을 거쳐 형성된 ‘냉전(cold war)’을 겪었다. 특히 20세기의 전반기가 ‘전쟁’의 시기였다면 하반기는 ‘냉전’의 시대였다. ‘냉전’은 화기를 사용하지 않을 뿐이지, ‘전쟁’이다. 따라서 20세기 하반기 냉전시대는 체제와 이데올로기뿐 아니라 정치-군사적인 대결로 얼룩져 있었다.

하지만 20세기의 마지막 10년 동안, 현실사회주의권이 해체되면서 이와 같은 냉전은 해체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냉전이 끝난 버린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엄밀하게 보자면 20세기 하반기를 규정했던 냉전은 아직도 끝난 것이 아니다. 세계사적 차원에서 냉전을 응축하고 있었던 두 개의 축 중 하나만 무너졌기 때문이다.

분단된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럽의 냉전은 현실사회주의권의 몰락 및 독일의 통일과 함께 해체되었다. 하지만 다른 하나의 축인 한반도의 분단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에서의 냉전은 분단 현실이 보여주듯이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미 무너진 것처럼 보였던 유럽의 동서 냉전조차 오늘날 다시 부활한 것처럼 보인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벨라루스와 함께 우크라이나의 북부와 동부 지역으로 군대를 보냄으로써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시작함으로써 유럽과 러시아 간의 냉전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사람들도 다시 ‘신냉전’이라는 용어를 즐겨 쓰고 있다.

하지만 이때의 ‘신냉전’은 우리가 이미 2010년대부터 썼던 ‘신냉전’과는 완전히 다르다. 많은 사람이 동서냉전과 동아시아 냉전을 구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서로 다르다. ‘동(소련-러시아)/서(미국-유럽)’ 냉전의 축과 동아시아 냉전의 축(중국/미국-서방)은 다르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냉전’과 ‘신냉전’이라는 기표에 현혹되어 같은 것으로 간주한다면 우리는 ‘동서냉전’과 그것의 부활로 간주되는 ‘신냉전(미국-NATO/러시아)’과 동아시아에서 진행되었던 ‘신냉전(미-일/중-북)’의 차이를 간과하게 될 것이다.

또한, 그렇게 되면 ‘미-일/중-북’이라는 동아시아의 냉전질서가 한반도의 분단체제를 매개로 하여 이미 10여년 전부터 진행되었던 미-중 간의 패권경쟁의 실체를 놓치게 될 것이며 오늘날 한반도에 드리운 엄청난 재앙의 먹구름과 엄혹한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사실, 동아시아 냉전은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부터 더욱 격렬한 형태로 전개되고 있었다.

미국은 한-미-일 동맹을 강화하고자 한국을 압박했으며 일본을 포함한 군사정보 공유 체제 구축 및 한국에 사드 배치와 더불어 거의 1년 내내 이루어지는 한미군사훈련에 항공모함을 보내는 등 사실상 분단체제를 이용해 중국에 대한 정치 군사적 압박을 키워왔다. 심지어 미국은 한반도에 미사일을 배치하고자 해서 러시아와 중국의 반발을 불러오기도 했다. 북의 침략을 맞고자 한다면 왜 굳이 항공모함이 필요하며 사드(THAAD)가 필요하겠는가? 그러므로 동아시아 냉전은 지금 유럽에서 벌어지는 신냉전의 구축 이전부터 ‘분단’이라는 매개고리를 통해서 작동해왔다.

그렇다면 지금 유럽에서 형성되는 신냉전은 동아시아 냉전에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그것은 유럽동서냉전체제의 구축이 동아시아에서의 과거 북방삼각(북-중-러)과 남방삼각(한-미-일)의 대립을 다시 불러올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은 소련 해체 당시 고르바초프와 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유럽에서 동유럽 국가로 나토(NATO)를 지속적으로 확장했고, 급기야 러시아의 앞마당인 우크라이나까지 손을 뻗쳤다.

마찬가지로, 미국은 지속적으로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미일 동맹의 강화뿐만 아니라 호주와 인도를 포함하여 쿼드(QUAD)를 구축하고 한국과 일본의 과거 청산 문제를 압박하면서 한미일 삼각동맹을 강화할 것을 종용했다. 게다가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말미암아 미국-서방에 맞선 러시아와 중국의 동맹이 강화될 것이며 북방삼각 또한 휴전선을 경계로 하여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만일 한국이 쿼드에 들어가거나 한미일 동맹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나아간다면 중국과 러시아는 한국과 적대적 관계로 들어갈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이야말로 재앙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왜냐 하면 한국이 그나마 중국-러시아와 외교관계를 맺음으로써 해체해 온 냉전이 다시 북방삼각 대 남방삼각이라는 대립축을 통해서 이전보다 더 강력한 형태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먼저 냉전을 미국-유럽 일방의 관점에 따르는 ‘서구중심적 관점’에 충실한 나머지, 동아시아에서의 냉전이 가진 독특성을 간과하거나 분단을 남북 두 국가의 문제로 환원하는 협소한 ‘민족주의적 관점’을 벗어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유럽에서의 냉전이 소비에트연방 및 동유럽사회주의권의 성립에 대응한 것이라면 동아시아에서의 냉전은 중국-베트남 축으로 이에 대응하는 전선을 구축하는 방식으로 작동해왔다.

따라서 지금의 문제를 풀어가려면 동아시아에서의 작동하고 있는 냉전의 독특성에 기초하여 작동하고 있는 분단-냉전의 중첩적 메커니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 두 가지의 결합은 ‘서구중심적 보편성’ 대 ‘민족적 특수성’이라는 양자의 편향 속에서 재생산되는 경향이 있다. ‘탈분단 평화’와 ‘반미 자주 통일’은 양대 편향을 대표한다. 따라서 양자의 편향을 넘어서는 관점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첫째, 지난 시기에 이루어진 동북아에서의 냉전 해체가 평화가 아니라 신냉전으로 재생산되는 이유가 절반의 해체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을 제시하고, 둘째, 이런 동아시아에서의 냉전체제가 가진 독특성 때문에 2018년 두 번의 남북정상회담에서 이루어진 ‘위대한 실험’이 가진 역사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제시하고, 이와 더불어 셋째, 한반도가 동아시아에서의 평화를 이룩하는 교두보 또는 교량이 되기 위해서 이와 같은 분단-냉전 해체가 제국주의 역사 그 자체를 극복하는 국제적 연대에 기초한 실천이어야 한다는 점을 제시한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