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 코로나 봉쇄···’두겹 마스크’ 쓴 김정일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 바이러스 유행으로 인한 전 세계 사망자가 지난 2년간 약 1500만명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이 수치에는 코로나19에 감염되어 사망한 사람을 위시하여 팬데믹이 초래한 의료·보건 체계 붕괴로 목숨을 잃은 환자 등 간접적 영향까지 포함됐다. 이는 코로나19 누적 사망자 집계치(약 630만명, 2022.5.21. 기준)의 2배가 넘는다.
북한은 국제올림픽위원회 206개 회원국 중 코로나19를 이유로 지난해 일본 도쿄올림픽에 불참한 유일한 나라다. 북한은 코로나19(COVID-19) 발생 이후 2020년 초부터 2년간 엄격한 국경봉쇄 기조를 유지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말 개최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방역을 ‘국가사업 제1순위’로 강조했다.
그러나 이러한 극단적인 조치를 취한 지 2년3개월 만에 결국 코로나19에 뚫렸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북한 전역에 5월 4일 오전을 기해 “절대 집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봉쇄령이 내려졌다고 한다. 북한이 상하이 등 도시 전체를 한 달 넘게 완전 봉쇄하는 중국의 극단적인 방역정책을 모방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은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수해온 중국과도 다르다. 중국은 효과가 의심스럽긴 하지만 자체 개발한 백신을 국민들에게 접종하여 2차 접종까지 마친 비율이 87%다. 북한은 그동안 국제기구 코백스(COVAX)가 주겠다는 백신조차 수용을 거부했다. 전 세계에서 코로나19 백신을 아직 시작하지도 않은 나라는 북한(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인구 2599만명)과 아프리카 에리트레아(Eritrea, 인구 366만명) 두 나라뿐이다.
국가정보원은 5월 19일 비공개로 진행된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여러 정황을 근거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코로나 백신을 맞지 않은 걸로 추정된다”고 보고했다. 정보위 관계자는 “아직 북한에 백신이 들어간 적이 없는 것으로 국정원은 보고 있다”고 했다. 다만 국정원은 “백신 접종도 코로나를 막는 데 효과 있다”는 5월 17일자 <노동신문> 보도를 계기로 북한도 코로나19 백신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보고했다.
북한은 5월 12일 코로나19 발생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14일 노동당 정치국 협의회에서 코로나 전파 상황을 보고받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건국 이래의 대동란(大動亂, 큰 난리)”이라면서도 “얼마든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최단 기간 내에 극복할 수 있다”며 외부 의존보다는 자체 해결 의지를 강조했다.
북한은 코로나 발병을 처음 인정한 5월 12일 유열자(발열자)가 1만8000여명이라고 했는데, 이틀 만에 16배 정도로 늘어날 만큼 폭증세다. 더 심각한 문제는 북한의 의료·방역 수준이다. 북한이 코로나19 ‘확진자’ 대신 ‘유열자’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진단 장비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들은 만성적 식량난으로 면역력까지 약한데 코로나19에 감염되면 치명적일 수 있다.
북한은 의약품 부족으로 주민들에게 민간요법을 권하고 있다. <노동신문>은 “버드나무잎을 더운 물에 우려서 하루에 3번 먹으라” “기침이 나면 꿀을 먹으라” 등을 권하며, “숨차면 창문 열기” “마음을 편히 가지라”고도 했다. 이렇게 4주가 지나도 “피를 토하거나 기절, 출혈 등이 있으면 병원을 찾으라”고 했다. 민간요법으로 버텨보라는 것이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북한 국가비상방역사령부는 18일 오후 6시부터 19일 오후 6시까지 전국적으로 발열자(發熱者)가 26만337명, 사망자는 2명 발생했다고 밝혔다. 지난 4월말부터 5월 19일 18시 현재까지 발생한 전국적인 유열자 총수는 224만 1610여명이며, 그중 148만 6730여명이 완쾌되고, 75만 4810여명이 치료를 받고 있다. 사망자 총수는 65명이다.
전문가들은 북한 내 코로나 의심 환자의 가파른 증가세에 주목하고 있다. 5월 14일 집계된 29만 6180여명은 남북한 인구 차이를 감안하면 국내 하루 최대 확진자 기록인 62만명(3월16일)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이에 사망자 폭증은 시간문제로 전문가들은 본다. 북한의 사망률은 0.005%로 한국(0.13%)보다도 훨씬 낮지만, 이는 코로나 확산 초기의 ‘착시효과’란 지적도 있다.
북한의 코로나19 대응은 △전국 200여 시군(市郡)의 완전 봉쇄 △사업·생산·거주 단위별 격폐 △전 주민 집중 검진 등으로 요약된다. 북한은 “134만 9000여명이 위생 선전, 검병 검진, 치료 사업에 진입했으며 유열자들과 이상 증상이 있는 사람들을 빠짐없이 찾아 철저히 격리시키고 치료·대책하고 있다”고 했다. 즉 2600만 전 주민의 외출을 막은 상태에서 방역 요원들이 가가호호 방문으로 발열자를 색출해 강제 격리하는 방식이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하루빨리 온 나라 가정에 평온과 웃음이 다시 찾아들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마음으로 가정에서 준비한 상비 약품들을 본부당위원회에 바친다”며 수령의 ‘1호 약품’을 내놓았다. 이는 당·정·군 간부들의 의약품 기부를 독려하기 위한 의도로 해석됐다. 김정은 위원장은 평양시내에 코로나 약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라는 특별명령을 내렸다. 중국에도 방역물자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우리 정부는 백신, 치료제, 코로나19 검사 장비 등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전 세계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공포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지만 중국은 예외다. 공포의 성격도 달라져 바이러스뿐 아니라 봉쇄와 격리하는 공포가 더해졌다. 한 달 이상 도시가 봉쇄된 상하이뿐 아니라 베이징도 500동 이상의 건물이 봉쇄돼 주민들의 외출이 금지돼 있다. 베이징은 지난 5월 1일부터 모든 식당의 실내 영업을 금지하고 있으며, 헬스장과 영화관도 운영이 중단됐다. 이런 모든 조치가 시행 하루 전날 발표된다.
중국 내 코로나 확산세도 심각해졌다. 올 초 오미크론 확산세가 가팔라지자 중국 당국은 3월 초 중국 4대 도시로 꼽히는 광둥(廣東)성 선전(深玔)시가 코로나 확산으로 봉쇄된 것을 시작으로 경제 수도 상하이, 동북의 지린(吉林)성 전체가 봉쇄됐고, 베이징도 일부 지역에 봉쇄령이 내려졌다. 특히 3월 말 북·중 교역의 허브인 단둥마저 코로나19 확산으로 도시 전체가 봉쇄되자 북한 당국은 국경지역에 코로나 비상경계령을 내리며 방역의 고삐를 다시 조이기 시작했다.
중국의 경제 수도로 불리는 인구 2400만명의 상하이는 4월 9일부터 ‘봉쇄’ ‘통제관리’ ‘방범’ 세 단계로 나눠 통제되고 있다. 사실상 도시 전체가 폐쇄된 셈이다. 그중 ‘봉쇄 구역’은 주민들이 집밖으로 나서지 못하도록 하는 초강력 통제가 이뤄지며, 제한적 활동이 가능한 ‘방범구역’에 사는 주민도 외출이 까다롭긴 마찬가지다. 상하이 주민들이 외출하려면 주민위원회의 출입증을 받아야 한다. 현재 상하이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약 1만명이다.
중국의 ‘제로 코로나’(淸零) 정책이 내년까지도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중국에 진출한 외국기업들이 중국 내 투자를 줄이거나 철수까지 고민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외국 기업 및 자본이 상하이와 홍콩을 등지는 상황이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상하이와 홍콩이 외면 받으면서 반사이익을 보는 대표적인 지역은 상하이, 홍콩과 함께 아시아 3대 금융허브로 꼽히는 싱가포르다. 싱가포르관광청에 따르면 지난 3월 홍콩에서 싱가포르로 건너간 사람 수는 12만 1190명으로 작년 3월 대비 4.5배나 급증했다.
중국 내 유럽 기업을 대표하는 주중유럽상공회의소가 5월 초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유럽 기업 370개 중 78%가 “중국의 엄격한 방역 정책이 중국에 대한 투자의 매력을 떨어뜨린다”고 답했다. “중국에 대한 투자를 다른 국가로 돌릴 예정이거나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답한 비율도 23%로 최근 10년간 가장 높았다.
주중미국상공회의소가 5월 9일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 기업 121개 가운데 52%가 “코로나로 인해 중국 투자를 연기하거나 규모를 줄였다”고 답했다. 상공회의소장을 지낸 한 미국 기업인은 미국에서 상하이로 입국 후 43일간의 격리와 봉쇄를 거쳤지만 베이징행이 어려워 결국 미국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기업들은 이 터널의 끝이 어딘지 알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한다.
미국 애플 노트북인 ‘맥북’(MacBook)의 절반 이상을 위탁 생산하는 대만 콴타(Quanta)컴퓨터는 한달 넘게 중국 상하이 공장을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3월 28일 상하이 봉쇄령이 내려져 공장 가동이 전면 중단됐다가 4월 15일부터 부분 가동을 재개했지만, 공장 직원 4만명 가운데 6000여명만 업무에 복귀한 것으로 알려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콴타 생산 중단사태로 애플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고 5월 1일 보도했다.
중국 반도체 인력의 40%인 20만여명이 몰려 있는 상하이에서는 반도체 공장들이 격려금까지 지급하면서 인력을 불러 모으고 있다고 대만 매체들이 보도했다. 대만 TSMC는 상하이 봉쇄령 이후 현지공장 인력 2000명에게 침구를 지급했다고 한다. 3M·바스프·듀폰 같은 기업의 생산시설은 4월 18일 중국 당국이 재가동을 허용했는데도 많은 근로자가 복귀하지 않아 여전히 멈춰서 있다.
상하이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한국 기업들도 피해가 커지고 있다. 농심은 3월28일 봉쇄 이후 4월 중순까지 상하이 공장을 멈춰 세우고 재고 제품을 팔거나 중국 선양공장 생산을 늘려 수요에 대처하고 있다. 중국에서 상하이에만 공장을 운영하는 아모레퍼시픽은 한국에서 생산한 제품을 중국에 보내 판매하고 있다.
또한 중국에서 일할 인재 확보도 비상이다. 입국 후 21일간의 격리, 잦은 봉쇄와 이동 통제 등 강력한 방역 정책 때문에 중국에 오겠다는 직원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중국에 파견 나온 직원들의 사기도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중국에서의 생활이 고달플 뿐만 아니라 성과를 내서 승진하기 어렵겠다고 판단해 중국을 기피하는 풍조가 한국에서 퍼지고 있다.
중국은 도시를 봉쇄하고 감염자를 시설에 격리하지만 올해 1월 이후 현재까지 발생한 코로나 확진자는 11만 6000여명으로 2020년 전체(8만 7000여명)보다 많다. WHO 사무총장 거브러여수스 박사는 “바이러스의 양상을 고려할 때 중국의 제로 코로나가 지속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중국의 방역정책을 공개 비판했다. WHO 전문가들은 현재 유행 중인 오미크론 변이는 추적, 봉쇄가 어렵다고 판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