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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병장수…100세인의 건강수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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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長壽)는 고대부터 이어져 온 인류의 오랜 숙원이다. 많은 사람이 오래 사는 것을 큰 행운으로 여긴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빠른 속도로 고령사회를 지나 2024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초고령사회(Super-aged Society)는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 이상인 사회를 말한다.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2008년 10.2%, 2013년 12.03%, 2017년 14.02%를 기록한 데 이어 2024년 20%에 도달했다.

‘100세 시대’를 맞아 누구나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바란다. 미국 인구통계국에 따르면 세계의 100세 이상 인구는 이미 약 34만 명에 이르며, 2050년에는 600만 명까지 증가할 전망이다. 대표적인 장수국가인 일본에서는 2050년 100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1%인 62만7000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의 100세 이상 인구도 2020년 5624명에서 2024년 7740명으로 약 37% 증가했다. 이 가운데 남성은 1389명, 여성은 6351명이다. 국내에서 100세 이상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은 전남 고흥군으로 알려져 있다.

100세 이상의 삶을 살아온 백세인(centenarian)의 특성을 규명하기 위한 국제학술대회가 지난 6월 6일부터 12일까지 전북 고창의 웰파크호텔에서 열렸다. 제20차 국제백세인연구단(International Centenarian Consortium) 학술대회에는 11개국의 16개 백세인 연구팀이 참가했다. 2009년 10월 창립된 한국100세인연합회도 이번 학술대회에 함께했다.

세계 장수연구 분야의 축제로 불리는 이번 대회는 각국 백세인의 공통점과 국가별·지역별 차이를 비교하고 분석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여성 장수연구의 권위자인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서유신 석좌교수가 ‘새로운 장수 개념’을 주제로 기조강연을 했다. ICC 한국대표인 박상철 전남대학교 석좌교수는 대회 자문위원장을 맡았다.

전남대학교병원 한국백세인연구단은 지난 25년 동안 진행한 한국 백세인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는 2001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시작돼 2018년 전남대학교 의과대학이 이어받았다. 연구진은 국내 백세인의 유전적 특성과 질병 양상, 생활환경 변화 등을 조사해 방대한 자료를 축적했다.

연구단은 구례·곡성·순창·담양을 잇는 이른바 ‘구곡순담 장수벨트’를 중심으로 한국인 특유의 장수 요인을 연구해 왔다. 그 결과 가족 중심의 가치관과 공동체의 결속력이 스트레스에 대한 회복력을 높이고 장수에 기여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김치와 고추장, 된장, 청국장 등 발효식품의 우수성도 주목받았다. 채소와 나물을 데쳐 먹고, 여러 채소를 쌈으로 섭취하는 식습관도 건강한 장수에 도움을 준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의 전통 식단인 ‘K-푸드’가 장수에 유리할 수 있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확인된 것이다.

백세인 연구의 목적은 단순히 100세까지 산 사람의 생활방식을 따라 하는 데 있지 않다. 신체뿐 아니라 마음과 정신까지 건강하게 유지하며 100세를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데 의미가 있다.

지역과 문화는 달라도 세계의 백세인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된 생활습관이 나타난다. 적절한 열량의 식사, 채소 중심의 식단, 규칙적인 신체 활동, 가족과 공동체의 긴밀한 유대, 만성 염증의 억제 등이 대표적이다. FOXO3를 포함한 여러 유전적 요인도 장수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보스턴 지역에서 1994년 시작된 뉴잉글랜드 백세인 연구는 2500명이 넘는 백세인 연구집단을 구축했다. 이 연구에서 주목할 만한 결과 가운데 하나는 가족력이다. 백세인의 형제자매는 일반인보다 100세 이상 생존할 가능성이 4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장수에 환경과 생활방식뿐 아니라 유전적 요인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다만 특정한 하나의 장수 유전자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유전자 변이와 환경, 생활방식이 복잡하게 상호작용해 장수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이 연구진의 결론이다.

한국 백세인 연구가 국제사회에서 주목받은 이유는 독창적인 연구 방식에 있다. 기존의 백세인 연구가 주로 의학과 유전학, 영양학, 심리학을 중심으로 진행된 데 비해 한국백세인연구단에는 생화학과 유전학, 의학, 영양학, 가족학, 생태학, 경제지리학, 노인복지학, 인류학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학문의 경계를 넘은 초학제 융합연구였다.

연구조사는 현장 방문을 원칙으로 했다. 연구진은 백세인의 건강상태뿐 아니라 주거환경과 가족관계, 지역의 생태환경과 문화, 행정기관의 복지지원 상황까지 직접 조사했다. 이를 통해 다른 나라의 연구에서는 충분히 살피기 어려웠던 생활환경과 지역사회의 영향을 생생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산악지역과 평야·해안지역이라는 생태환경의 차이가 백세인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도 비교했다. 산악지역 백세인은 곡물과 채소 중심의 식사를 하고 활동량이 많아 체중과 혈중 지질 수치가 낮은 편이었다. 평야와 해안지역 백세인은 어류와 해조류를 통해 오메가3 지방산과 무기질을 풍부하게 섭취했지만 나트륨 섭취량은 상대적으로 높은 경향을 보였다.

여성 백세인은 남성보다 오래 살지만 만성퇴행성질환의 부담은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장수는 성별과 생활환경, 개인이 살아온 생애사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인다.

한국 백세인의 가장 독특한 특성은 역사적 경험이다. 이들은 일제강점기(1910~1945)와 6·25전쟁(1950~1953), 극심한 빈곤과 급격한 산업화를 연속적으로 겪었다. 비교적 안정적인 사회환경에서 살아온 서구의 백세인이나 일본 오키나와의 장수인과는 질적으로 다른 집단이다.

고난의 시대를 견디며 형성된 강인함과 가족 중심의 가치관, 공동체의 결속력이 스트레스에 대한 회복력을 높이고 장수에 기여했을 가능성이 크다. 삶의 역경을 견뎌낸 경험 자체가 한국 백세인만의 중요한 장수 자산이 된 셈이다.

세계의 장수 연구가 궁극적으로 향하는 질문은 ‘얼마나 오래 사는가’가 아니라 ‘어떤 상태로 오래 사는가’이다. 단순한 수명 연장보다 일상생활을 스스로 영위할 수 있는 기능적 독립성과 삶의 질이 더 중요한 지표가 돼야 한다.

한국 백세인이 보여준 회복력과 산악·평야·해안지역이 공존하는 다양한 생태환경은 세계의 다른 장수지역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특징이다. 이를 토대로 한국형 건강 장수 모델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초고령사회의 정책 목표도 평균수명의 단순한 연장이 아니라 건강수명과 기능적 독립성을 유지하는 데 둬야 한다. 얼마나 오래 사느냐보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서울시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노화·고령사회연구소에 의뢰해 발간한 ‘서울 100세인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장수인 10명 가운데 7~8명은 사교적이며 감정 표현도 활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울증 의심 증세를 보인 사람은 전체의 4.6%에 불과했다. 또한 10명 가운데 7~8명은 매일 규칙적으로 식사했으며 식사량도 일정했다.

미국 조지아대학교 심리학과의 레너드 푼 교수는 20년 넘게 세계 각국의 백세인 수천 명을 연구했다. 푼 교수는 세계 장수 연구자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장수 요인으로 유전, 성별, 사회적 관계, 인지능력, 영양상태 등 다섯 가지를 꼽았다.

유전이 장수에 미치는 영향은 약 25%이며, 나머지는 생활환경과 습관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적 조건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먹고 얼마나 움직이며 어떤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지도 장수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사람에게는 평생의 경험에서 얻은 지혜가 있다. 나이 듦의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는 젊은 시절과는 다른 폭넓은 시선으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삶을 윤택하게 가꾸는 일도 중요하지만, 시민으로서 사회에 참여하고 공동체에 기여하는 역할도 중요하다.

젊은 시절에는 자아정체성을 확립하고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일이 중요하다. 그러나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들면 자신의 시간과 지식, 경험과 에너지를 다음 세대를 위해 나누는 삶도 생각해야 한다.

장수의 가치는 오래 사는 데만 있지 않다. 살아 있는 날까지 스스로 삶을 선택하고, 가족과 공동체, 다음 세대를 위해 자신의 경험과 지혜를 나누는 데 있다. 백세인의 삶은 우리에게 오래 사는 법을 넘어 어떻게 나이 들어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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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윤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서울대 보건학박사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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