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투사·어린이운동 선구자 소파 방정환의 문학세계

수운회관에 있는 방정환 글씨와 그가 낸 책들

소파 방정환이 남긴 동요는 쓸쓸하고 슬프다. 이원수는 그의 문학을 “슬픔을 같이 보고, 같이 울어주는 문학”(이원수 아동문학 전집 29, 웅진, 170쪽)이라고 했다. 또 소파의 동요를 눈물주의, 감상주의로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원수는 “꿋꿋한 의지와 함께 있는 여린 연민의 정의 소산이요, 그것은 억압당하는 민족의 슬픔과 구박받는 아동들에 대한 동정의 마음에서 우러난 것”(같은 글)이라 했다. 방정환 동요를 읽어보면 이원수의 말에 공감할 수 있다.  

 귀뚜라미 귓드르르 가느단 소리
 달님도 추워서 파랗습니다.     

 울 밑에 과꽃이 네 밤만 자면 눈 오는 겨울이 찾어온다고                                

 귀뚜라미 귓드르르 가느단 소리
 달밤에 오동닢이 떨어집니다.   

 (‘귀뚜라미 소리’, <어린이> 2권10호, 1924.10.) 

늦가을 밤 풍경을 감정을 노출하지 않고 그대로 보여준다. 늦가을 밤, ‘가느단’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고 아이는 쓸쓸한 그 소리에 이끌려 밖으로 나갔을까? 날씨는 추워서 하늘의 달님마저 파랗게 보이는데 울 밑에는 과꽃이 쓰러질 듯 피어있다. 여전히 귀뚜라미 소리는 쓸쓸히 들리고 마당 가 오동나무에서는 몇 개 안 남았던 커다란 잎 하나를 또 떨군다.  

쓸쓸한 늦가을 밤의 모습이 눈앞에 환히 드러난다. 율조도 7.5조를 바꾸어 정형률의 답답함이 덜하고 두번 반복된 의성어 ‘귓드르르’가 우리를 시 속에 끌어 들인다.

시인이 이렇게 쓸쓸한 모습에 눈길을 준 이유는 뭘까? 시리도록 차갑고 눈물나게 쓸쓸한 모습이 식민지의 암울한 모습과 닮아 보여 그랬을까?  

  수수나무 마나님
  좋은 마나님

  오늘 저녁 하루만
  재워주시오

  아니아니 안돼요
  무서워서요

  당신 눈이 무서워
  못 재웁니다.

  잠잘 곳이 없어서
  늙은 잠자리

  바지랑대 갈퀴에
  혼자 앉어서

  추운 바람 슬퍼서
  한숨 쉴 때에

  감나무 마른 잎이
  떨어집니다.

  (‘늙은 잠자리’, <어린이> 2권12호, 1924.12.) 

이 동요도 ‘귀뚜라미 소리’와 마찬가지로 추운 늦가을이 배경이다. 겨울이 오려는 늦가을에 이제는 힘이 다한 늙은 잠자리 한 마리가 수숫대에 앉으려다 못 앉고 바지랑대 갈퀴에 힘없이 앉았다. 가을이 한창일 때 온 하늘을 뒤덮듯 날아다니던 잠자리들은 날씨가 점점 추워지면 어디로 없어지고 한두 마리만 풀숲 사이로 힘없이 날아다닌다. 시인은 쓸쓸하고 불쌍한 늙은 잠자리를 발견하고 눈을 뗄 줄 모른다. 조금은 장난기가 느껴지는 ‘마나님’ ‘당신 눈이 무서워’ 같은 표현이 걸리지만 힘없고 불쌍한 늙은 잠자리에 눈길을 주는 시인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하늘에서 오는 눈은 어머님 편지
그리우든 사정이 한이 없어서
아빠 문안 누나 안부 눈물의 소식
길고 길고 한이 없이 길드랍니다.
겨울밤에 오는 눈은 어머님 소식
혼자 누운 들창이 바삭 바삭
잘 자느냐 잘 크느냐 묻는 소리에
잠 못 자고 내다보면 눈물 납니다.          

(‘눈’, <어린이> 8권7호, 1930.9.)  

소파는 눈을 좋아했다. 눈만 오면 새벽이라도 동무를 찾아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니 눈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동요를 보면 그 눈이 어머님 편지라 했다. 눈이 돌아가신 어머니 편지였으니 슬프면서도 얼마나 반가웠을까? 실제 방정환은 열아홉 되던 1917년에 어머니를 잃었다. 시인의 마음이 그대로 아이의 마음이 돼 눈 오는 밤에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소파는 독립투사요 어린이운동의 선구자였다. 그에 못지 않게 여린 감수성을 지닌 문학청년이었던 것 같다. 일제강점기 하 민족지사들은 독립운동에 열정을 바치고 때로 좌절하기도 하며 간난신고를 견디고 분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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