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의 지선 전망대 D-48] 윤석열·안철수·이준석이 해야할 또 하나···공직선거법 개정안 처리
지금까지 이런 일은 없었습니다. 6.1 지방선거 후보 등록을 해야 할 시점(5월 12일과 13일)이 채 한달도 남지 않았는데 아직까지 선거구도, 의원 정수도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법정시한인 11월 30일은 말할 것도 없고, 기존의 선거구 획정에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리면서 헌법재판소가 제시한 시한인 2021년 말도 훌쩍 넘겼습니다.
4년 전 제7회 지방선거 때는 후보등록 79일을 앞두고 겨우 선거구를 획정과 의원 정수를 확정했는데 이번에는 더 늦어졌습니다. 핑계는 3.9 대선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선이 아니어도 지방선거는 물론 국회의원 총선도 선거구 확정시한을 지킨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습관적으로 법을 어기는 국회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국회 정개특위가 표류하는 건 ‘기초의원 3인 이상 중대선거구제’ 도입에 여야가 합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국민의힘은 중대선거구제 도입 논의만으로도 법률위반이라며 버티고 있습니다. 박병석 국회의장이 “기초의원 3인 중대선거구제를 일부 지역에 도입해 시범 실시하자”고 중재안을 냈지만 이것도 합의에 실패했습니다.
기초의원 중대선거구제 도입은 대선과정에서 여야가 한 목소리를 냈던 사안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당론으로까지 채택하면서 도입을 약속했습니다. 윤석열 당선인은 “국민의 대표성이 제대로 보장되도록 중대선거구제를 선호해왔다”고 말했습니다. 안철수 인수위원장도 이준석 대표도 “다당제가 소신”이라고 여러 차례 밝혔습니다.
국민의힘이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게 나가고 있는데도 윤석열 당선인도, 안철수 인수위원장도, 이준석 대표도 이 문제에 대해 명확한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대선 때 한 말을 지키지 않아도 지방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아님 속내와 발언이 달랐던 걸까요? 어느 경우에도 정치적 부담은 당선인에게 돌아갈 겁니다.
국민의힘은 중대선거구가 지방선거가 아니라 국회의원 선출방식을 말한 거라는 주장입니다. 설령 그렇더라도 총선 때 적용하고 지방선거에서는 도입하면 안 된다는 뜻은 아닐 겁니다. 중대선거구제는 거대정당 나눠먹기 때문에 힘들었던 소수정당의 기초의회 진출에 도움이 되고, 따라서 기초 단위에서 자치분권의 다양성이 보장될 수 있을 겁니다.
어쨌든 국민의힘의 몽니로 기초의회 중대선거구제 도입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합니다. 국회 정치개혁특위는 중대선거구를 도입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전체회의에 상정했습니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도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공언했습니다. 그러나 곧 집권여당이 될 국민의힘을 제쳐놓고 처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가 의원총회(4월 12일)를 열어 중대선거구제 도입문제에 대한 처리를 위임받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여야 합의 우선’이라는 관행을 지키느냐, 아니면 정치개혁을 위해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느냐 선택이 쉽지 않습니다. 비대위로서는 어떤 선택이든 후유증과 지방선거에 미칠 영향을 따져 볼 수밖에 없을 겁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선에서 졌지만 대선 과정에서 시민에게 약속했고, 또 정치개혁의 시금석이므로 중대선거구제를 반드시 도입하겠다고 강조합니다. 90명이 넘는 의원들이 국회에서 열흘 동안 농성을 했고, 강행처리 요구도 있습니다. 이탄희·장경태 의원은 어제(4.13) 무산의 책임을 지겠다며 정치개혁특위 위원 사임의사를 밝혔습니다.
행정안전부가 다음 주 월요일(4.18)까지 선거구 획정을 끝내달라고 국회에 요구했습니다. 오늘 내일 중으로 국회 정개특위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처리해야 합니다. 기초의회 중대선거구제 전면 도입에 합의가 어렵다면 박병석 국회의장의 중재안을 다시 한 번 진지하게 논의하기 바랍니다. 민의의 전당인 국회가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