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세모녀 사건’과 ‘노인자살율 1위’ 보유국…부끄럽지만 현실 직시해야

2014년 봄 송파세모녀가 숨지기 전 남긴 마지막 글

셰익스피어는 인생 후반전을 전체 인생의 ‘행·불행’을 결정할 수 있는 시기라고 했다. 비록 젊었을 때 어렵고 힘들게 살았거나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어도 노년기의 삶을 잘 마무리하면 인생 전체가 행복한 색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 발달심리학자 에릭슨은 노년기를 ‘자아통합감’으로 살 것인가 ‘좌절감’을 가지고 살 것인가 결정되는 시기라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노인들의 평균적 삶의 모습은 어떠한가? 자아 통합감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가? 삶의 질을 평가하는 대표적인 지표인‘자살률’과‘빈곤율’을 통해 노인들의 삶을 점검해 보고 개인과 국가가 어떤 자세로 무엇을 해야 ‘노후가 행복한 나라’를 만들 수 있을지 생각해 보자.

우리나라 노인자살률과 노인빈곤율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들 중 독보적 1위다. 보건복지부의 ‘2019 자살예방백서’를 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들의 자살율은 10만명 당 자살자 58.6명으로 OECD 회원국 평균 18.8명의 3.1배다. 2위가 38.7명인 슬로베니아인데 그들보다 1.5배나 높다.

그해 노인인구를 기준으로 연간 3900여명이 자살한다. 하루 11명꼴이다. 어렵게 삶을 지탱해가던 노인들이 더 이상 희망이 없을 때 마지막 선택이 자살이다. 자살률이 높다는 것은 그 만큼 절망 속에서 살아가는 노인들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무엇이 노인들을 그렇게 힘들게 하는가? 2018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노인실태조사’에 그 단서가 있다. 그 내용을 보면, 65세 이상 노인의 21.1%가 우울증 증상을 앓고 있다. 6.7%는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한다.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 노인들 중 13.2%는 실제로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고 한다.

자살을 생각해본 노인들 중 27.7%가 생활비 문제를 그 이유로 꼽았다. 자살을 하는 가장 큰 이유가 경제적 어려움이라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본인의 건강 문제가 27.6%이다. 배우자와 자식들과의 갈등에 따른 자살충동은 3위로 18.6%다. 2위인 건강문제도 결국 일자리 상실, 치료비와 간병비 과다발생 등으로 이어져 경제문제를 악화시킨다는 점에서 경제적 요인으로 볼 수 있다.

만성 질환을 앓고 있는 딸을 부양하던 어머니가 일자리를 잃자 이를 비관하여 함께 자살한 송파3모녀 사건을 생각해 보자. 가난한 노인들이 건강마저 잃을 때 가족 전체가 얼마나 절망스러울 지 이해될 것이다. 빈곤은 노인자살의 주된 원인이고 노인들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핵심요인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은 43.4%(2018년 기준)로 OECD국가 평균 14.8%의 3배나 된다. 독보적 노인빈곤율 1위를 10년 이상 기록하고 있다. 경제규모 세계 10위, 국방력 세계 6위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위상에 비추어 볼 때 노후빈곤과 노인자살율 지표는 부끄러운 일이다. 그동안 정권이 보수, 진보를 오가며 여러 번 바뀌었어도 이 문제는 크게 개선되지 않았고 개선의 전망도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우리나라 노인행복지수가 필리핀 같은 개발도상국들보다 낮다. 그 나라 노인들보다 우리나라 노인들이 더 불행을 느끼며 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인빈곤이 노인들만의 책임일까? 자본주의 산업사회에서 노인부양의 책임은 가족에게서 국가로 전환되었다. 우리보다 앞서 산업화를 진행한 모든 선진국들은 잘 설계된 공적부조제도와 다층 공적연금제도를 통해 노인빈곤을 예방하고 적정한 노후소득을 향유하고 있다.

우리는 산업화와 경제성장에만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국민연금 같은 필수 노후소득보장제도 도입을 늦추었다. 또한 재정안정화 개혁을 앞세워 노후소득보장 이슈는 논의의 우선순위에서 계속 밀려왔다. 이제라도 정책방향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제 개인도 국가도 노후준비에 대한 인식을 획기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개인들은 “자녀들이 어떻게든 부양해 주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식에 대한 투자를 자신의 노후에 대한 투자로 전환해야 한다. 자녀 교육과 결혼자금의 과도한 지출은 어리석은 짓이다.

노후소득이 부족한데도 주택을 상속해주려고 주택연금 가입을 꺼려해서는 안 된다. 아울러, 국가는 노후빈곤 해소와 노후소득보장 제도 전반을 과감하게 재구축해야 한다. 노인 전체가 기초연금을 받도록 하고, 공직자와 민간근로자 연금체계를 평등하게 재구축하면서 국가의 재정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세계에서 유일하게 연금 받는 시기를 정년보다 한참 뒤로하여 최대 5년간이나 국민연금을 못 받게 하는 제도적 횡포를 즉시 시정해야 한다. 나아가 소득 절벽에 서 있는 은퇴자에게 근로시보다 더 많은 건강보험료를 부과시키는 불공정한 제도도 문제다.

또한 부동산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인정소득’을 산정하는 것도 은퇴자에게 부담이지만, 재산을 ‘순재산’이 아닌 ‘명목재산’으로 과다하게 평가하여 기초연금이나 기초수급자 선정에서 탈락되게 만드는 것은 불공정하다.

노후소득보장제도를 잘 만들어 행복한 삶을 누리게 하는 것은 비단 노인들만을 위한 조치가 아니다. 젊은이들이 미래 걱정 없이 마음껏 도전하고, 결혼하여 자녀도 낳을 수 있게 하는 역할도 하게 한다. 장수는 비극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소망이고 축복이다.

그런 국가 제도와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도 이제는 서양의 선진 복지국가들처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은퇴를 기다리는 ‘노후가 행복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원하고 뜻과 지혜를 모으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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