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의 대선 길목 D-17] 후보 단일화와 ‘개와 늑대의 시간’
선거운동을 중단했던 안철수 후보가 다시 선거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안 후보가 움직이자 이번 대선의 최대 변수로 꼽히는 후보 단일화 여부가 다시 관심사로 떠올랐습니다. 안 후보와 가까운 김한길 위원장이 물밑 접촉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들이 있을 뿐 양당은 아직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양당의 기본 입장은 ‘아무것도 정해진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대선 후보 등록 첫날 안철수 후보가 “100%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를 제안했고, 국민의힘에서 ‘역선택’을 이유로 부정적 입장을 밝힌 뒤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선거운동을 재개하면서 안 후보는 ‘완주 의지’를 다시 한 번 강조했습니다.
단일화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28일에 투표용지가 인쇄된 이후의 단일화는 효과가 약화될 겁니다. 선거 벽보 위에는 ‘사퇴’ 표시를 할 수 있지만, 투표용지가 인쇄된 뒤에는 사표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극적인 ‘막판 단일화’가 시민의 관심을 더 끌 수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러나 2017년 제19대 대선 때처럼 안철수 후보가 중도 사퇴를 하는 방식으로 단일화가 이뤄지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옵니다. 당시 문재인 후보 측과의 단일화 협상이 계속 난항을 하자 안 후보가 후보 등록 전날 전격 사퇴했습니다. 이번에도 같은 방식의 단일화를 예상하는 근거는 안 후보가 TV·라디오 방송 연설을 신청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34회, 국민의힘은 22회를 신청했습니다. 안철수 후보는 제19대 대선에서는 공직선거법이 허용하는 최대치인 44회였습니다. 국민의당은 선거 전략의 중심이 뉴미디어이기 때문에 방송 연설을 신청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연설신청을 하지 않은 게 ‘단일화 시그널’이라는 겁니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TV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이 드라마의 주연은 영화 ‘왕의 남자’에서 “여자보다 더 여자다운” 광대 공길 역으로 ‘예쁜 남자 신드롬’을 만들어낸 이준기씨였습니다. 여자보다 더 예쁘다는 이준기씨가 거친 역할을 맡아 더 관심을 끌었습니다. 개와 늑대의 시간은 빛과 어둠이 서로 바뀌는 시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어둑어둑한 어둠 속 저 멀리 희끗희끗하게 실루엣이 보입니다. 저 실루엣의 실체가 내가 기르던 개인 것처럼 보이지만 나를 해칠 무서운 늑대일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개와 늑대를 구별하기가 힘든 시각을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 부릅니다. 개인지 늑대인지 구별이 힘들 정도라면 친숙한 개가 늑대처럼 섬뜩하게 무섭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겁니다.
단일화 시계가 가리키고 있는 시각은 개와 늑대의 시간입니다. 시민들이 단일화를 집을 잘 지켜줄 개로 인식할지 자신을 해칠지도 모를 늑대로 인식할지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여론조사는 윤석열-안철수 단일화가 이뤄지면 누가 단일후보가 되어도 이재명 후보에게 여유 있게 이긴다고 나오지만, 실제 투표 결과도 그럴 거라고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선거공학적 관점이나 단일화를 추진하는 쪽에서 보면 후보단일화는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단일화가 시민의 입장에서도 반드시 ‘좋은’ 것이라고 하지는 못합니다. 정권심판 민심에 기대어 집권하는 ‘소극적 정치’에서 추진되는 까닭입니다.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시민의 요구에 맞추어 정치를 끌어가는 ‘능동적 정치’라야 합니다.
개와 늑대의 시간은 하루에 두 번 찾아옵니다. ‘이른 새벽’과 ‘늦은 오후’입니다. 단일화의 시간은 빛나는 해가 찬란하게 떠오를 새벽일까요, 어두움이 내려와 차기 이후를 기다려야 할 오후일까요. 무엇을 위한 단일화인지 누구에게 좋은 단일화인지, 단일화의 결과가 역사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인가에 따라 새벽이 될 수도, 오후가 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