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아시아·2.1·설날] 미얀마 군부쿠데타(2021)·강감찬 귀주대첩 승리(1019)

1019년, 꼭 1003년 전 오늘은 강감찬 장군이 거란의 침입을 막아낸 날이다. 사진은 낙성대공원에 있는 강감찬 동상. 작년 오늘은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 최고사령관이 쿠데타를 일으켜 민주주의를 압살시킨 날이기도 하다. 장군이라고 하여 같은 장군이 아님을 역사는 잘 보여주고 있다. 

“매양 추위 속에/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새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오늘 아침/따뜻한 한 잔 술과/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좀 더 착하고 슬기로운 것을 생각하라//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한 해가 가고/또 올지라도//어린 것들 잇몸에 돋아나는/고운 이를 보듯/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김종길 ‘설날 아침에’

2월 1일 오늘은 설날-설날의 세시풍속 △설빔=빈부귀천 남녀노소 없이 새 옷 마련 △신수점=한 해의 신수와 재수 미리 알기 위해 치는 점 토정비결이 대표적임 △윷점=개인의 신수와 재수, 그 해에 비가 얼마나 와서 농사에 좋을지 점침 △안택=집에 탈이 없도록 지내는 고사. 무당이 맡아 집전하며 터주 조상 조왕 동신을 제사하고 차린 음식 골고루 나눠 먹음 △메구=재수 있으라고 농악대가 집집이 찾아다니며 풍물 치고 지신 밟음 △복조리=설날 아침 새 복조리를 벽에 걸어놓으면 조리가 쌀알처럼 만복을 일구어주고 조릿대 틈으로 삿된 것을 흘려보낸다는 믿음이 담겨있음.

2월 1일 오늘은 첫닭날(상유일, 음력 1월 들어 처음 오는 닭날) 부녀자의 길쌈이나 바느질을 금하는데 하루 푹 쉬라는 의도

음력 1월의 다른 이름은 세수(歲首 ; 봄의 출발이고 한 해의 시작이라는 뜻)
2월 February는 라틴어로 ‘정결한 달’이라는 뜻

561(신라 진흥왕22) 경남 창녕에 척경비 세움

1019(고려 현종10) 강감찬 귀주대첩 승리
-소배압이 이끄는 거란의 3차 침입에서 10만 거란군 중 수천 명만 살아남음, 거란 성종은 소배압에게 “네가 너무 적지에 깊이 들어가 이 지경이 되었다. 무슨 얼굴로 나를 만나려는가. 너의 낯가죽을 벗겨죽이고 싶다”고 책망
-강감찬은 키 작고 곰보였는데, 원래는 아주 잘생겼지만 너무 잘 생기면 큰일을 못한다 하여 스스로 마마신을 불러 곰보가 되었다는 이야기 전해옴

1906(대한제국 광무10) 일제 통감부 설치

1919 무오독립선언, 조소앙 신채호 등 만주 러시아 지역 독립운동가 39명 중국 지린성에서 처음으로 독립선언

1919 김동인 주요한 등 도쿄에서 최초의 문예동인지 「창조」 창간

1935 우리나라 처음 종두(1879년) 실시한 지석영 세상 떠남, 국문연구소 위원으로 국어보급 힘씀

1951 유엔 한국전쟁에 끼어든 중국을 침략자로 규정하는 비난결의안 채택

1959 한글학회 소사전 원고 완성

1962 동전투입식 공중전화기 처음 설치

1962 울릉도 폭설 287.9㎝

1968 경부고속도로 건설 시작

1970 TBC FM 처음으로 스테레오방송 실시

1982 손재식 통일원장관 인천-진남포항 상호개방·서울-평양도로개통 등 20개 시범사업 제의

1983 손재식 통일원장관 남북한 당국 및 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 제의

1987 한방의료보험 온 나라 확대 실시

1989 한국-헝가리 수교

1989 북한산 무연탄 2만톤 인천항으로 직수입

1992 행정기관과 정부투자기관의 업무용 및 자가용 차량 10부제 운행 실시

2007 서예가 여초 김응현 세상 떠남

2010 다수의 멸종위기종 조류 및 전 세계 물떼새 개체수의 1% 이상이 서식하는 고창·부안갯벌 람사르습지 등록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군 총사령관 <사진=AP/연합뉴스>. 2021년 오늘 쿠데타 일으킴.

1598 이탈리아에서 최초의 오페라 ‘다프네’(작곡 자코포 페리) 공연

1774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집필 시작

1881 파나마 운하(총길이 64km) 기공

1893 발명왕 에디슨 세계 첫 영화스튜디오 완성

1902 청나라 만주족과 한족의 결혼금지 해제

1944 네덜란드 화가 피트 몬드리안 세상 떠남(77세) “23년간을 파리에서 보내면서도 그는 이렇다 할 개인전 한번 열지 않았다. 그는 다른 것을 통해 자신을 드러냈고, 그 상대가 몇 명만 있어도 만족했다.”-미셀 쇠포르(가까운 친구·시인·화가)
-생계를 위해 평생 도자기에 꽃을 그리는 일을 해서인지 자연을 몹시 싫어했다고 함. 1938년 나치의 폭격 피해 런던에서 뉴욕으로 간 그는 저녁이면 록펠러 부근을 산책했는데, 그곳의 불 밝혀진 기하학적 형태의 창문들이 자신의 작품과 비슷했기 때문이었다고 함

1946 유엔총회 세계 공용어(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중국어) 정함

1952 일본 경찰예비대 중심으로 자위대 창설

1979 이란 혁명지도자 호메이니 망명 15년 만에 귀국

2012 이집트 항구도시 포트사이드의 축구경기장에 인파 몰려 사망 74명 부상 1천여명

2015 이슬람국가(IS) 일본 언론인 고토 겐지 참수영상 공개

2021 미얀마 군부쿠데타,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 권력장악, 1년간 비상사태 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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