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10년 전 떠난 김규동 시인이 왜 이다지도 그립고 사무칠까?

김규동 시인이 이동순 시인에게 쓴 육필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영남대 명예교수] 살아계실 때는 무심했는데 이제 세상에 안 계시니 왈칵 그립다. 무릇 모든 일이 그럴 것이다.

풍족할 때는 아쉬움을 전혀 모르다가 없다는 느낌이 드니 더 간절해진다. 시인 김규동 선생이 그렇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크나큰 놀라움이 여럿 있을 터이지만 내 경우 <김규동시전집>의 해설을 저자에게 요청 받은 감동이 그 놀라움 중 하나다.

김규동 시인은 즐기시던 詩刻도 기력이 달려 더 하지 못하고 병상에 누워 늦가을 초목처럼 야위어가셨다. 가뜩이나 깡마른 체구에 노환이 겹쳐 병석에 계셨으니 얼마나 힘드셨을까?

꿈에서라도 가보고 싶었던 고향을 기어이 못 가시고 2011년 가을에 종생하셨다. 떠나신 날이 9월28일인데 이날은 6.25전쟁 중 서울을 수복한 날이기도 하다. 김규동 시인은 그토록 가고 싶었던 고향을 마치 빼앗긴 서울을 되찾듯이 9월28일에 고향을 수복(收復)하신 것이다.

<김규동시전집> 표지. 시인은 이동순 필자에게 해설을 부탁했고, 이동순 시인은 100매를 정성들여 탈고했다.  

선생님이 입원 중이실 때 창비에서 <김규동시전집> 발간을 제의해 왔다. 이를 수락하시고 아들들을 시켜 시집, 노트, 앨범, 스크래북 등을 찾아 일일이 전집에 들어갈 자료를 고르셨다.

출간위원회에서 이를 다시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책 뒤에 들어갈 해설 집필자를 물었을 때 선생께서는 주저 없이 나를 지목하셨다. 세상에는 내로라 하는 비평가가 얼마나 수두룩한가?

그런데 비평계의 말석에도 끼지 못하는 한미한 후배 시인을 지명하셨다니 그 충격과 감동으로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선생님의 모든 시집, 산문집 등을 펼쳐놓고 하나씩 낱낱이 재독 음미해가며 김규동 시문학이 걸어온 길과 실마리를 더듬었다.

평생 상실과 방황의 혼미함 속에서 오로지 시의 위력과 권능으로 이 험난한 분단의 풍파를 견디어 오신 것이다.

대다수의 모더니스트들이 경박한 잔재주와 언어희롱에 빠져들 때 김규동 시인은 모더니즘에다 리얼리즘과 역사주의를 결합시켜 자칫 혼미함으로 빠져들 수 있는 위기를 잘 정돈하고 극복해오신 것이다.

그런 김규동 시인의 생애는 처연하고 장엄했다.

등불을 밝히고 새벽까지 밤 도와가며 쓴 원고를 창비로 보내었는데 선생께서는 그 교정지를 병상에서 두루 보시고 너무 흡족하셨다는 글월을 보내주셨다.

시전집이 발간되고 일곱 달 뒤 선생님께서는 그토록 그리워하시던 두만강 기슭 함북 종성의 고향집 하늘로 떠나셨다.

나는 오늘도 선생님의 전집을 쓰다듬으며 그 시절 추억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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