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남북정상회담 수행 육군 소장의 ‘평양 방문기’

2000년 6월 13일 평양 순안공항으로 김대중 대통령을 영접 나온 김정일 위원장.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수행원으로 평양공항에 내렸다. 국방부에서 혼자였다. 공항은 썰렁했다. 개혁 개방 전 베이징, 모스크바와 같았다.

냉면으로 유명한 옥류관을 가보았다. 수행원 기사들이 모처럼 주어진 기회를 즐겼다. 을밀대를 보니 조선의 시인이 을밀대에 올라 시를 잇지 못했다는 구절이 생각났다. 처가가 평양에서 왔으니 감회가 남달랐다. 그분들은 금강산 관광을 가지 않았다. 평양에서 1947년 월남한지라 공산당을 철저히 경험했기 때문이다.

고구려 장수왕이 수도를 집안集安에서 평양으로 옮겼다. 대륙에서는 연燕, 북위北魏 등과 패권을 다투다가 이후로는 백제, 신라와 겨루게 되었다.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평양은 풍요했다.

동명성왕 주몽의 무덤이라고 주장하는 능이 있다. 억지가 지나쳤지만 북한이 고구려를 잇고 있다는 생각으로 보였다. 반면 대한민국은 삼한과 통일신라를 잇고 있다고 여기는 것 같다. 통일은 결국 서독이 동독을 흡수하는 방식이 될 수밖에 없겠지만, 통일된다 하더라도 고구려의 기상과 신라 문화의 결합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필자 김국헌 육군 소장이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수행원으로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과 조성태 당시 국방부 장관(오른쪽)이 보인다. 

 

평양은 잘 계획된 도시였다. 김일성은 전후 복구를 무無로부터 출발했다. 모든 것이 있어야 할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평양 지하철은 모스크바 지하철을 본떠 만들어서 화려했다. 방공호로 사용할 수 있다고도 했다.

김일성이 누워있는 금수산궁전은 잘 꾸며졌다. 김정일이 최은희, 신상옥을 납치한 것이 영화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이고자 한 것이었다고 한다. 악곡을 직접 지휘했다고 하는데 감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예술의 핵심은 균형과 조화 아닌가? 히틀러가 젊은 시절 미술학도였다는 것이 생각났다.

철도는 전기로 움직였는데 일제시대 만든 그대로라 선로가 빈약했다. 앞으로 북한을 지원한다면 아예 전기 고속철도로 새로 놓자. 서울에서 평양-함흥에서 청진을 거쳐 러시아로, 평양에서 신의주를 거쳐 중국으로 나아가자. 그리하여 유럽과 연결하자.

북한에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저 하염없이 걷고 있었다. 북한을 돕는다고 하면 자전거부터 보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북지원은 인민에 직접 도움을 주는 것부터 챙겨야 할 것이다.

미국은 지금 핵문제 때문에 대북지원을 철저히 막고 있다. 우리도 북핵문제 때문에 같은 입장이지만, 의료품 등 인도적 지원도 현금으로 주는 것은 안 된다. 김정은 일가의 용돈이 되기 때문이다. 대북 지원은 김대중, 노무현 시대와 같이 뭉텅 달러를 쥐어주는 것은 절대로 안 된다.

대북정책의 강령은 ‘화해와 불가침, 교류 협력에 관한 남북기본합의서’에 나온 대로 하면 된다. 이것을 계속 발전시켜야 한다. 내년 새 정부는 이를 확실히 하는 것부터 해야 한다. 그동안 비싼 수업료 냈다. 그러나 되풀이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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