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시대 까치 그림 ‘사희도'(四喜圖)에서 희망찾기
[아시아엔=심형철 <아시아엔> 편집위원, <지금은 중국을 읽을 시간> 등 저자] 고달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인생의 단계마다 그 목표를 알려주는 그림이 있다. ‘사희도’(四喜圖)다. 그림에는 시대의 가치관과 사람들의 소망, 그리고 삶의 목적이 녹아있다. 그래서 그림은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다. 전통그림은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라 하지 않던가?
그림 속 까치 표정이 참 재미있다. 방역대책을 세우는 것 같기도 하고 수다를 떠는 것 같기도 하다.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이렇게 시작하는 동요를 부르면서 설날에 세뱃돈을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기대에 부풀던 그 때가 생각난다. 그래서 그런지 까치는 우리에게 매우 친근한 새다. “아침에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말이 한 몫 했을 테고, 까치가 견우와 직녀를 만날 수 있게 도와주었다는 옛날 이야기도 한몫 했을 것이다.
‘사희도1’은 네 마리 까치를 그린 그림이다. 그래서 그림의 제목이 ‘사희’(四喜)다. 그림에서는 사(四)를 재미있게 一+三으로 썼다. 까치를 네 마리 그리고 제목을 ‘사희’라고 했으니 사(四, s?)는 까치의 마리수임이 틀림없다. 그리고 기쁠 희(喜)는 까치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까치는 한자로 희작(喜鵲)이라고 한다. 그래서 ‘까치’를 그리고선 ‘기쁨’으로 읽는다.
그림의 제목 ‘사희’는 ‘네 가지 기쁨’을 의미한다. “네 가지 기쁨이 뭘까?”라고 묻는다면 사람마다 자신의 상황에 따라 대답이 다를 수 있겠다. 그러나 중국 송(宋)나라 때 시인 왕수(汪洙)가 쓴, 어마어마하게 긴 ‘신동시’(神童詩)에 네 가지 기쁨이 분명하게 정리되어 있다. 화가가 이 네 가지 기쁨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사희도(四喜圖)1’이다. 중국인들에게 ‘사희’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십중팔구 정확하게 대답한다.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누구나 알고 있는 내용이다.
‘신동시’에서 제시한 인생의 가장 큰 기쁨 네 가지를 구체적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구한봉감우(久旱逢甘雨, 오랜 가뭄 끝에 비가 내릴 때) △타향우고지(他鄕遇故知, 타향에서 친구를 만났을 때) △동방화촉야(洞房花燭夜, 신혼부부가 첫날밤을 맞이할 때) △금방제명시(金榜題名時, 과거시험에 합격했을 때) 등이다.
이 내용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와닿지 않겠지만 1000년 전을 생각해 보자. 당시는 농경사회였으니 비가 굉장히 중요했을 것이고,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친구를 만난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또한 배우자를 맞는 일은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라 했다. 첫날밤이야 언어로 표현하지 않아도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과거시험에 합격하고 관리가 되는 것은 누구에게나 최고의 희망사항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희도1’은 위의 “네 가지 기쁨이 이루어지기 바란다”는 뜻으로 읽는다.
요즘은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라는 말도 있고, 흙수저란 유행어로 서글픈 시대다. 또한 빈부의 양극화는 점점 심해지고 기울어진 운동장이니, 출발선이 다르다느니 하는 말들은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집값은 젊은 세대에게 얼마나 큰 좌절감을 주는가?
네 가지 기쁨을 현대사회에 맞게 생각해보자. 취업, 결혼, 출산, 내집 장만 이렇게 네 가지를 사희(四喜)로 규정하면 어떨까. 누구나 꿈꾸고 노력하면 소망이 이루어지는 세상이 되길 간절히 바라는 건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사희도2’의 까치는 마치 살아 있는 것 같다. 까치의 앞태, 뒤태 모두 생동감이 넘친다. 까치가 앉아 있는 나무는 무슨 나무일까? 답은 버드나무다. 그런데 까치의 크기에 비해 가지가 가늘어서 살짝 불안해 보인다. 까치가 그네를 탈 것만 같다. 튼실한 나무도 많은데 왜 하필 낭창낭창한 버드나무 가지를 택했을까? 이 역시 이유가 있다. 버드나무 류(柳, li?)는 머물 류(留, li?)와 발음이 같다. 그래서 ‘버드나무’를 그리고 나서 “머물다 또는 변하지 않다”라고 읽는다. 그리고 까치는 기쁨이라고 읽으니 ‘사희도2’는 “기쁨이 계속 머물기 바란다”는 뜻이 된다.
사희도(四喜圖)의 주인공이 우리가 흔히 보는 까치인 까닭에 가볍게 여길 수도 있지만, 그림을 읽고 나니 가슴이 답답하고 어깨가 무거워진다. 네 가지 기쁨을 그린 그림을 감상했는데 오히려 네 가지 걱정이 생기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너무 재미있게 읽었어요.
아는만큼 보이고, 아는만큼 들린다는데…오늘 배우지 않았다면 그냥 까치그림이구나 하고 지나쳤을거 같아요. 기쁨을 나타내는 까치처럼 이시대 기쁠일들이 많이 생겨나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