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 성악가 보첼리의 “딱 한 시간만 울자”

보첼리 <연합뉴스>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어느 누군들 인생에 고난이 없었고, 울고 싶은 때가 어찌 없겠는가? 세계적인 성악가 테너 앙드레 보첼리의 인간승리 고백을 본다.

제 이름은 안드레 보첼리(Andrea Bocelli)입니다. 저는 1958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났지요. 부모님은 포도와 올리브 농사를 지으셨지만, 음악에 관심이 많으셨어요. 저는 여섯 살부터 피아노 레슨을 받고 플루트와 색소폰도 배웠습니다. 전 노래 부르기를 가장 좋아했습니다.

축구도 아주 좋아했습니다. 열두 살 때 일이예요.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가, 그만 공에 눈을 강하게 맞고 말았습니다. 좀 아프고 말 줄 알았는데, 며칠 뒤 눈이 완전히 안보이게 되고 만 것입니다. 가족들과 친구들 모두 슬퍼했어요. 그때 전 어렸지만…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딱 한 시간만 울자.’ 그리고 이 어두운 세계에 빨리 적응하자!

부모님은 “눈이 보이지 않으니, 힘을 길러야 한다. 법학도가 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전 열심히 공부해서 피사대학에 진학해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어요. 변호사로 일하게 됐을 때 부모님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기뻐해주셨습니다.

모두들 저를 가리켜 ‘인간승리’라며 추켜 세워주더군요. 하지만 전 즐겁지 만은 않았습니다. 제 마음 깊은 곳에서 정말 하고 싶었던 게 있었거든요. 바로 성악이었습니다. 제가 다시 음악을 하겠다고 하자, 모두 저를 만류했습니다.

시각장애인으로 대중음악가라면 모를까, 클래식 음악을, 그것도 오페라를 한다는 건 불가능할 거라고 말이지요. 그러나 전 제 꿈을 이루기 위해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정통 성악 수업을 받았고 전설의 테너라 불리던 프랑코 코렐리 선생에게 음악지도를 받았습니다.

물론 클래식 음악가에게 있어 악보를 볼 수 없다는 것 그게 치명적인 결점이었지만, 악보를 머릿속에 모두 집어넣으려 애썼습니다. 얼마 뒤 제 평생 꿈이었던 오페라 무대에 서는 기회도 얻게 됐습니다. 오페라 ‘라보엠’이었어요.

어떤 비평가들은 오페라가 무슨 장난인 줄 아냐며 저를 비롯한 , 무대를 준비한 모든 스탭들까지 싸잡아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습니다. 몇 번째 계단에서 어느 방향으로, 다시 몇 걸음을 더 걸어야 하는지, 언제 여자주인공을 쳐다보고 언제 손을 내밀어야 할지 철저히 기억해서 움직였습니다.

공연이 끝나자 관객들은 기립박수를 쳤습니다. 제 바람대로 저는 시각장애를 가진 성악가가 아닌 라보엠의 주인공 로돌포로 공연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를 비난하던 비평가들도 “완벽한 공연이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제가 시력을 잃었을 때, 두려움과 절망의 눈물을 흘리는데 필요한 시간은 꼭 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는 데는 일주일이면 충분했지요. 자기 연민에 빠지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더 힘듭니다. 슬픔을 빨리 극복할수록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이는 힘이 강해진다는 것, 우리 모두 잊지 마셨으면 좋겠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의지의 소유자다. 나도 ‘딱 한 시간만’ 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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