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주먹에서 글로브까지···파란만장 권투시합 ‘변천사’

권투시합 초기엔 장갑 없이 맨주먹으로 경기를 치렀다. 부상이 잦아지면서 글로브를 착용케 됐다

[아시아엔=김중겸 치안발전포럼 이사장, 경찰청 전 수사국장] 주먹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자 기본 무기다. 고금동서 막론하고 주먹다짐은 생활의 일부였다. 전쟁터에서도 주먹이 흔히 동원됐다.

중국 청나라 말기, 반외세-반기독교 외친 의화단義和團은 서양의 총과 대포에 대항할 무기가 없었다. 그럼, 무엇으로 싸우나?

주먹이다. 그래서 주먹 쓰는 비적을 권비拳匪, 拳民권민 복서Boxers라 불렀다. ‘복서의 반란’the Boxer Rebellion이다.

권투는 그런 맥락 속에서 자연스럽게 탄생했다. 시작은 이긴 자가 상금 가져가는 현상懸賞 권투(prize-fighting)였다.

1660년경에 시작됐다. 1860년 초부터 챔피언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맨주먹bare knuckle 시대였다.

두 시각이 공존했다. 하나는 살상을 동반하는 야만인들의 불법유희로 피가 튀는 피의 경기(bloody sport)였다.

또 하나는 명예관념(名譽觀念)에서였다. Thomas Hughes의 1857년 작 를 보면 “소년이 주먹으로 싸워 결판내는 행위는 자연스럽다”고 했다.

시대의 흐름과 더불어 법률도 변했다. 1819년 명예honor를 주먹, 칼, 폭력으로 얻으려는 시도는 불법이 됐다.

현상 권투의 양상

돈 많고 영향력 있는 상류계급 인사들이 특정선수의 후원자 됐다. 자기 선수를 출전시켜 싸우게 했다. 승패에 거는 도박이 이루어지며 거액 오갔다.

직업 권투선수(pugilist)가 불구자 되고 죽는 광경은 그냥 놔둬서는 안 될 일이었다. 영국에서 치안판사가 개입하기 시작해 중지시키곤 했다.

그 이유는 ① 시합이 가혹하다. ② 내기시합이라 승부조작 이루어진다. 부정이다. ③ 판정을 인정하지 않는 관객이 폭동을 일으킨다. 즉 치안파괴라는 이유에서다.

물론 복싱 자체를 불법으로 판단하지는 않았다. 시합의 내용과 결과를 단속했다. 편법이었다. 처벌도 대부분 벌금형이었다.

최초로 일격 가한 선수, 선수 도와준 second(보조자), 시합 주선하고 파이트 머니 받는 기획자를 폭행죄로 기소했다.

붙잡힌 관객에 대해선 불법집회, 불온집회, 소요죄를 적용했다. common law(보통법) 상 치안파괴에 해당되는 행위로 봤다.

19세기의 시대상황

대부분의 유럽국가에서 청교도주의 다시 발흥하면서 복음주의운동이 일어났다. 도시의 중산층 부르주아 계층에게 침투했다. 이들은 신앙과 근로와 공공질서 중하게 여겼다. 권투는 불법경기(unlawful game)였다.

1824년 설립한 동물학대 방지협회는 1835년 동물학대방지법 제정하는 성과 올렸다. 투견鬪犬과 투계鬪鷄 불법화시켰다.

잔악한 동물경기(animal sport)도 불법으로 단속하고 있다. 그런데 인간의 피의 경기(bloody sport)는 왜 규제하지 않느냐.

선수가 주먹에 맞아서 죽었다면 살인죄냐? 과실치사냐? 폭행이냐? 이건 스포츠가 아니다. 불법으로 해야 한다. 없애야 한다. 저항 거셌다.

권투의 생존방법

1891년 영국 복싱관계자들이 National Sporting Club(NSC) 설립해 전근대성과 야만성으로부터의 탈피 시도했다.

시합명칭을 현상시합 아닌 boxing contest 또는 convention으로 정했다. 규칙도 제정. bare knuckle(맨주먹) 버리고 글로브 착용을 의무화했다. 합법화 기도했다. 세계로 퍼졌다.

10년 쯤 지난 1900년대, fight 아닌, good sport 지위 획득했다. 상해나 사망이 폭행이나 살인 되지 않았다. 정당행위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흑인챔피언이라서 억울하게 감옥도 가고

잭 존슨은 흑인노예의 아들로 1878년 텍사스 주에서 태어났다. 1908년 세계헤비급 챔피언 쟁취했다. 1915년까지 지켰다. 1916년과 1917년에는 38세와 39세 고령자 타이틀도 차지.

백인들 심기가 얼마나 불편했겠는가. 그가 이기자 백인폭도들이 흑인 습격, 20여명이나 죽였다.

1913년 전 백인여자 친구가 객지생활 청산하고 고향으로 간다고 했다. 돈 없다 해서 기차표 사줬다. 공교롭게도 다른 주로 가는 여행이었다.

Mann법은 여성이 주 경계를 넘어가게 도와주면 인신매매로 처벌했다. 존슨이 승승장구하자 이 옛날 선의를 들춰내 Mann법 위반으로 잡아넣었다.

지는 경기 연기하다가

존 설리번은 1882년부터 1892년까지 복싱 세계헤비급 챔피언이었다. 별명은 보스턴의 무쇠주먹.

두 번 KO당했다. ① 첫 번째는 1982년 여성에게! 시범경기를 흥행하며 다녔다. 적당히 맞아준 다음 지원자가 나가떨어지게 하는 코미디다. 돈 벌 일 있어도 돈 나갈 일 없다.

어느 날. 느닷없이 블라우스에 반바지 차림의 여성이 올라왔다. 응원객 아우성! 주인공은 잘 아는 권투도장의 관장부인 해시였다. “아니 이거 웬일이여, 다치면 어쩌려고 그려.” 설리번이 해시 얼굴에 한 방 날렸다. 맞고 나자 부아가 났다. 오른 손으로 설리번 턱 냅다 갈겼다. 벌렁 넘어졌다. 관중들 박장대소. 대인기였다.

그다음부터는 해시가 펀치 휘두르면 설리번이 KO당하는 식으로 각본 바꿨다. 관객은 웃어서 좋고 선수는 돈 들어와서 신났다.

? 얼마 후 타이틀 방어전. 상대는 Gentleman Jim. 시범경기 버릇 들어 설렁설렁하다가 21라운드 KO패. 졌어도 돈은 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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