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설날 단상①] 소띠해 ‘생구’와 ‘식구’
[아시아엔=박명윤 <아시아엔> ‘보건영양’ 논설위원, 보건학박사,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오늘(2월 12일)은 음력(陰曆) 정월 초하루, 설날이다. ‘설’이란 새해의 첫머리란 뜻이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하여 명절다운 설날을 맞기에는 어렵게 되었다. 코로나 3차유행으로 인한 정부의 방역지침으로 5인 이상 사적 모임을 금지하여 설날에 온 가족이 모이기가 어렵게 되어 이전과는 다른 설명절을 보내게 되었다.
필자도 설날 차례(茶禮)를 모시는 형님댁에 가지 못하고, 세배(歲拜)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설날의 세시풍속(歲時風俗)으로는 차례, 세배, 설빔, 덕담(德談), 복(福)조리 걸기, 윷놀이, 널뛰기, 연(鳶)날리기 등 다양하다. 차례는 설날 아침 일찍 대청마루나 큰방에서 제사를 지내는 풍속으로 조상님 음덕(蔭德)을 기린다. 차례를 마친 뒤 조부모·부모님께 절을 하며,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한다.
설날의 대표 음식인 떡국은 고대의 태양숭배 신앙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가친척과 친지를 만나면 덕담을 나누고, 가족끼리 모여 윷놀이를 한다.
올해는 신축년(辛丑年), 흰색에 해당하는 천간(天干) ‘신(辛)’과 소에 해당하는 지지(地支) ‘축(丑)’이 만났으므로 ‘흰소의 해’다. 소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가축 중 하나이며, 기원전 6천년쯤 서남아시아와 인도에서 인간에 의해 길들여졌다. 우리나라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신라 눌지왕 22년(438년) 백성에게 소로 수레 끄는 법을 가르쳤으며, 지증왕 3년(502년)에는 논밭을 갈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다.
소는 인류의 오래된 동반자로서 우리 조상들은 소를 생구(生口)라고 불렀다. 우리말에 식구(食口)는 가족을 뜻하고, 생구는 한집에 사는 하인을 말한다. 이에 소는 사람에 버금가는 대접을 받았다. 소는 농경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가축이며, 유사시에는 군(軍)에 동원될 만큼 국가적으로도 중요했다.
소는 농사와 풍년을 상징한다. 우리 조상들은 입춘(立春) 전후 흙으로 만든 소 인형인 토우(土牛)나 나무로 만든 목우(木牛)를 세워 한 해 농사의 시작을 알리고 풍년을 기원했다. 정월(正月) 초하루 새벽에 소가 울면 그해는 풍년이라 여겼고, 정월대보름에 찰밥·오곡밥·나물 등을 얹은 키를 소에게 내밀었을 때 소가 밥을 먼저 먹으면 풍년(豊年), 나물을 먼저 먹으면 흉년(凶年)이라 점쳤다.
소는 농경사회에서 논밭을 갈고 등에 무거운 짐을 지고 나르는 ‘일소’였으며, 논밭과 함께 중요한 재산이었다. 이에 “소 팔아 자식 대학을 보냈다”는 말처럼 목돈을 마련하는 역할을 했다. 소는 살아서 온갖 힘든 일을 견디면서 하고, 죽어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사람에서 주었다. 심지어 소의 ‘코뚜레’를 개업이나 이사를 했을 때 출입문에 걸어 가계가 번창하길 기원하는 풍습도 있다. 오죽하면 “소는 하품밖에 버릴 게 없다”고 했다.
서울대학교의 전신(前身) 중 하나인 수원고등농림학교는 1937년 수의축산학과(獸醫畜産學科)를 신설하고 부속 목장을 설치해 소를 사육했다. 중국이나 만주에서 유입되는 각종 가축전염병의 방역과 사육기술 및 질병 치료를 연구하여 전문 인력을 양성했다. 이에 1945년 해방 이후 일본인 학자와 축산기술자들이 떠나면서 발생한 학문적 공백을 메울 수 있었다.
‘생구’라고 불리는 소가 소답게 사는 세상이라야 사람도 사람답게 살 수 있으므로 소도, 사육하는 농가도, 소고기를 먹는 소비자도 모두 행복해야 한다. 행복하고 건강한 소는 풀을 뜯어 먹고 맘껏 뛰놀 수 있어야 한다. 소는 풀(牧草, hay)을 먹어 소화하는데 최적화된 몸인 까닭에 곡물 배합 사료나 볏짚을 먹으면 소화를 잘 하지 못한다.
소가 행복해지는 데 먹는 것 다음으로 중요한 건 충분히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다. 국내에서 사육하는 소들은 도축장(屠畜場)에 갈 때까지 바깥에 나와 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소를 풀어놓는 방목형과 가둬 키우는 계류식의 장점을 살려서 축사 한 칸(가로·세로 8x8m)에 한우 5마리씩 키우고, 넓은 운동장이 있어 소들이 뛰어놀게 해야 ‘동물복지’에 합당하다.
이러한 사육 모델로 소를 사육하면 소가 건강해져 약을 덜 쓰고 수의사를 덜 불러도 되니 금전적으로 이익이 된다. 최근 우리나라 소비자들도 목초만 먹여 생산한 소고기를 찾는 사람들이 차츰 늘고 있다. 이러한 소고기를 먹을 때 ‘고기는 씹는 맛’이란 말이 뭔지 알 듯하다고 한다. 씹을수록 고소한 육즙이 배어나온다.
한우 수컷은 비육우(肥肉牛), 젖소 수컷은 육우(肉牛)라 불린다. 이름 그대로 ‘고깃소’인 까닭에 비육우는 30개월, 육우는 20개월이 지나 성체(成體)가 되면 도축한다. 한편 한우 암컷은 번식용으로, 젖소 암컷은 번식과 착유용으로 쓰이지만, 두어 번 새끼를 낳고 다섯 살이 넘으면 생산성이 떨어져 수컷과 마찬가지로 식용으로 도축되고 있다. 자연 생태에서 소의 평균수명은 20년이다.
소는 본래 초식동물이므로 풀을 뜯어 먹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고기와 우유를 획득하기 위해 사육되는 경제동물(經濟動物)인 까닭에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풀과 농후사료(濃厚飼料)를 함께 먹인다. 농후사료와 풀의 양을 일정 비율 내에서 먹여야 한다. 농후사료의 양이 너무 많아지면 반추위(反芻胃, ruminant stomach)의 기능이 떨어져 여러 가지 질병이 발생한다.
중국에서 소는 고초를 견디는 인고(忍苦)의 상징으로 왕조(王朝)의 전제적 통치하에 말없이 괴로움을 참아내던 많은 중국 농민들 심성에 소를 견주는 경우가 많다. 이에 욕됨을 참으며 제 할일을 끝내는 ‘인욕의 대명사’로 쓰일 때도 있다. 소의 심성으로 큰일을 이룬 중국인들도 적잖다. 예를 들면,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주인공 월나라 구천, 생식기가 잘리는 형벌을 받았음에도 <사기>(史記)를 지은 사마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