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이민 60년②] 나그네와 주인, 그리고 정체성

시카고 이민 60년, <아시아엔>은 미국 한인사회의 현주소를 몇 차례에 걸쳐 싣는다. 필자인 김정일 해설위원은 20대에 미국으로 이민 가 40년 이상 <미주한국일보>와 <시카고기독교방송>에서 취재와 칼럼 기고, 방송해설 등을 하고 있는 베테랑 언론인이다. 필자는 이번 ‘시카고 신명기’를 통해 미주 이민의 현실을 냉철한 시각으로 분석하며, 대안 모색에 나설 예정이다. <아시아엔>은 시카고 이민 60년과 바이든 정부 출범을 계기로 미주 한인사회의 현주소를 살펴본다. 독자들의 애독과 질정을 바란다. <편집자>
  1. 천사와 악마의 투쟁( Inclusion & Exclusion)

포용성(Inclusion)과 배타성(Exclusion)은 나의 신분을 결정한다. 전자는 소수계인 나를 이 사회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America는 이상(Ideals)으로 연합된 나라라는 개념이고, 후자는 나를 이 사회의 객으로 취급하고, 이질적 요소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이는 “미국의 영혼을 놓고 벌어지는 천사와 악마의 영원한 싸움”(Eternal battle between demons and angels for the soul of the USA)과 같은 것이다. 언론인 댄 래더의 말이다.

세금정책, 소득불균형, 의료정책 등은 나의 가계부와 병원 가는 문제지만, 포용과 배타는 나의 신분의 문제다. 트럼프의 정치집회장 그린빌, 노스캐롤라이나 청중들이 외친 “Send her back”은 단지 소말리아 출신 귀화 시민인 오마 하원의원에게로 보낸 야유뿐이 아니고, 바로 코리아 출신 귀화 시민인 나에게 한 외침이다. 그대는 이 사회에서 객이고, 뜨내기이고, 여기 소속이 아니라는 시비를 거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이와 같은 사악한 군중심리는, 나치의 유태인 학살이나 발칸반도의 인종청소의 동기와 흡사한 것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미국의 Inclusion(포용성), Exclusion (배타성), Bigotry(편협성), Stereotype(고정관념), prejudice(편견) 등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미국에서 마치 외계인처럼 산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편협성은, 비백인은 미국국민이 아니라는 생각이고, 고정관념은 동양계는 모두 챱수이, 세탁소 주인이라는 생각이고, 편견성은 동양계는 모두 영어를 못하고 약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이 뿌리 깊은 주류사회 일부의 사악한 생각들과 갈등 속에 살아가는 것이 당분간은 우리의 운명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전체 미국의 약 절반 정도, 2016년 선거에서 약 6천만명으로 나타났다. 이것이 미국의 민낯이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순식간에 우리가 2등 시민으로 전락할 수 있다.

시카고 대한민국 총영사관이 입주해 있는 NBC타워 입구

4. 나그네와 주인

필자가 방송해온 기독교 방송의 시사해설 프로그램의 표어가 1. 나그네가 아닌 주인으로 살겠다는 결심 2. 2등시민이 아닌 1등시민으로 살겠다는 선언 3. 역사서가 아닌 예언서에 대한 믿음으로 되어있다.

이 프로는 2000년 9월 시작해서 2020년 9월 5000회 기록을 세운다. 그 내용은 미국 주류사회 주요뉴스의 현상과 배경을 설명하면서 이를 소수계 그리고 이민자의 프리즘으로 다시 한번 조명해 보는 것이다. 틈틈이 이 프로는 우리가 살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했다.

이 프로가 장수할 수 있었던 이유는 미국의 여러 복잡한 현황에 대한 지식의 갈증을 채워 줄 수 있었고, 이민자 그룹을 위한 옹호자 역할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수계, 이민자는 법적으로 피보호그룹(Protected class)으로 분류된다. 우리가 바로 이 집단에 소속된다. 이 분류는 이 사회에 내재해 있는 다수와 소수, 백인과 비백인, 기득권자와 신참그룹 사이에 있는 차별과 불평등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법적인 배려다. 미국이 이처럼 자기 성찰과 개혁의 과정을 계속하지만, 피보호그룹 당사자의 자각 없이는 이 갈등이 해소될 수 없다. 이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미국을 잘 안다’는 것이다.

미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현상을 잘 이해하고, 나의 권리와 의무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나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된다는 것이다. 이 전제가 충족되어야 우리가 주인의 자리에 견고하게 선, 1등시민이 되고, 예언서의 믿음에 의지하게 되고, Better life가 시작되는 것이다.

5. 정체성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은 소크라데스의 가르침 때문만이 아니다. 바로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Korean-American’이라는 것은 한국인이라는 문화적 배경(Cultural heritage)을 가진, 미국국민(Nationality)이라는 뜻이다. 내가 한국말을 하고, 한국음식을 선호하고, 한국말 성경책을 읽으면, 나의 DNA는 분명코 한국인이다. 그러나 인간은 생물적 존재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존재다. 나의 권리와 의무가 모두 미국의 체제 아래 있기 때문에 나는 미국인이다. 이 양자는 서로 상충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관계다.

내가 인천공항에서는 외국인의 줄에 서고, 오헤어공항에서는 내국인의 줄에 서는 것이다. 이것을 일부러 나누어 결판을 낼 필요가 없다. “엄마가 더 좋아? 아빠가 더 좋아?”라는 질문은 소아기적인 질문이다.

모국에 대한 사랑과 관심 그리고 미국인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행사하는데 균형 잡힌 태도를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칠 경우, 어리석게 보일 수 있다. 미국에서 우리가 외국인의 이미지를 갖는 것은 분명 피해야 될 사항이다. 주류사회 일부에 아시안에 대한 외국인혐오증(Xenophobia)이 있다. 그리고 대부분 한국인들은 미국시민이 된 동포가 지나치게 한국에 집착하는 것을 유쾌하지 않게 생각하는 성향이 있다는 것을 참고하는 것도 유익할 것이다.

사도 바울의 정체성은 언제 들어도 명료하다. “나는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사도가 된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는 자기 존재에 대한 인식일 뿐 아니라, 그의 신앙의 고백이며, 삶의 방향이며, 위대한 설교의 출발점이다.

필자 김정일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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