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재 김정국의 삼여(三餘)와 사르트르와 두보

사르트르

삼여(三餘)란 세 가지 넉넉한 것이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을 살펴보면, 무엇이 부족해서 힘든 것이 아니라 남과 비교하여 못하다는 고민이 더욱 큰 것 같다.

조선 중기 사재(思齋) 김정국(金正國, 1485~1541) 선생은 비록 남보다 작은 집에 살고, 볼 품 없는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지는 못하였지만, 자신이 늘 넉넉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자신을 남보다 세 가지 넉넉한 것이 있다고 석 삼(三)자에 남을 여(餘)자, ‘삼여’의 즐거움을 얘기했다.

첫째, 와외유여지(臥外有餘地).
‘내 한몸 눕는 것을 제외하면 넉넉한 집이 있다’는 뜻으로 비록 작은 집이지만 내 몸 뉘일 장소를 빼고도 꽤 넓은 공간이 있다는 것이다.

둘째, 신변유여갈(身邊有餘褐).
‘내 몸에 입고 있는 옷 이외에 여벌의 옷이 있다’는 뜻으로 지금 입고 있는 옷 이외에 남는 옷이 있어 행복하다는 것이다.

​셋째, 발저유여식(鉢底有餘食).
‘지금 먹고 있는 밥 이외에 남는 음식이 있다’는 뜻으로 지금 먹는 음식 이외에 먹을 음식이 더 있으니 여유가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참으로 우리는 부자다. 넓은 아파트가 있고, 장롱에 입지 않는 옷이 빼곡히 걸렸으며, 먹을 것이 냉장고에 그득하니 큰 부자 아닌가? 그런데 세상엔 자신이 늘 남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안타깝다.

중국 삼국시대 위(魏)나라에 동우(董遇)라는 학식 깊은 사람이 있었다. 제자들이 글에 대해 물으면, “백번을 읽으면 절로 알게 된다”(讀書百編義自見)고 답했다.

제자들이 그럴 틈이 없다고 투덜대자 동우가 나무랐다. “시간이 없다니 무슨 말이냐. 책을 읽는 데는 삼여(三餘)만 있으면 되지 않느냐. 밤과 겨울, 그리고 비오는 날에만 읽어도 충분하다. 겨울은 한 해의 나머지이고, 밤은 하루의 나머지이며, 비오는 날은 때의 나머지 이니라”라고 했다. 책을 읽자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글과 마주할 수 있다는 뜻이다.

송나라 문인 소식(蘇軾)도 “갠 날에는 밭을 갈고, 비오는 날에는 책을 읽는다”고 했다. 그리고 자투리 시간에 글을 읽는 즐거움을 가리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맛’이라고 했다. 자투리 시간을 잘 활용하는 삶은 게으른 인생의 몇 배를 사는 셈이다. 독서나 배움은 시간보다 마음가짐이 먼저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에 나오는 ‘위편삼절’(韋編三絶)에 보면 책을 대하는 공자의 자세를 알 수 있다. 공자는 말년에 주역(周易)에 심취했는데, 주역을 읽고 또 읽어 ‘책을 엮은 가죽 끈’(韋編)이 세번이나 끊어졌다(三絶)는 고사가 있다.

두보

시성(詩聖) 두보(杜甫)는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한다”고 했다.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내가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었으니 그건 책에 의해서였다”고 했다.

사람이 평생을 살면서 하루는 ‘저녁’이, 일 년은 ‘겨울’, 일생은 ‘노년’이 여유로워야 하는 것이 바로 ‘삼여’일 것이다.

살기 편한 아파트 한 채면 족하지 꼭 강남의 대형아파트에 살아야 행복한 것은 아니다. 필자는 장롱 속 옷들을 대부분 헌옷 수집하는 곳에 보냈다. 그리고 일년 내 입고 있는 동⸳하(冬⸳夏) 한복 한 벌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거의 하루 종일 덕화만발 글쓰기에 몰두하고 있다. 단지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몇년 전 오른 쪽 눈이 안 보여 원불교 입교 후 하루도 안 빼고 읽어 왔던 <원불교 전서>를 303번까지 읽고 더 이상 계속하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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