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 ‘비욘드무용단’ 첫번째 날개짓 ‘의문의려’를 준비하며
부모가 자식 기다리는 마음
[아시아엔=이진규 비욘드무용단 지도강사, 백제예술대 강사] 지난해 10월 21일을 나는 앞으로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지적장애 비욘드무용단의 첫 번째 단독공연이 있던 날이다. 그날 공연을 마치고, 지난 1년 단원들과 함께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먼저 비욘드무용단을 간단히 소개하면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3년 (사)장애인문화예술진흥개발원(이사장 윤덕경 서원대 명예교수)이 특수학급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몸짓표현 교육프로램에 참여했던 지적장애인들로 구성됐다. 그해 용산아트홀 대극장에서 열린 ‘또다른 가족과 함께하는 두번째 이야기’ 출연을 시작으로 매년 꾸준히 활동을 하고 있다. 올해는 용인장애인문화예술경연대회에서 단체상 동상과 개인상 은상을 수상했다. 직업무용수로 활동 중인 단원도 생겨났다.
하지만 비욘드무용단의 이름으로 단독공연을 올리지 못해 늘 아쉬움이 컸다. 이에 최대 목표는 단독공연이었다. 다행히 정부의 커뮤니티 예술활동 지원과 장애예술에 많은 관심을 가져온 성장현 용산구청장 도움으로 용산아트홀 대관을 일찌감치 약속받았다. 비욘드무용단은 첫 번째 단독공연을 올리기 위해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5월 중순부터 연습에 들어가기로 하였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코로나19가 닥쳐온 것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연습실이 폐쇄되고, 외부활동 일체 금지로 5월 중순 시작 예정이던 연습은 계속 연기되기만 했다. 다행히 6월 13일, 첫 연습이 실행됐다. 공연 네달 남짓 앞두고서다. 연습이 너무 늦어지면서 윤덕경 이사장은 코로나19 안전수칙 준수와 연습실 철저방역을 강조하는 한편 만일의 사태에 대비, 비대면 영상공연 시나리오까지 짰다. 지난 얘기지만, 윤 이사장 혜안 덕분에 영상공연을 성공적으로 이뤄낼 수 있었다.
공연 프로그램은 단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몸풀기와 몸만들기(신기본) △쟁강춤 △태평무가 기본이 된 창작무 ‘선인장에 핀 하얀꽃’ △뮤지컬댄스 댄싱퀸 등을 무대에 올리기로 했다. 지금까지 느린 동작의 춤만 춰온 비욘드무용단한테는 빠른 템포와 소품을 이용한 쟁강춤이 걱정이었다. 총예술감독을 맡은 윤덕경 이사장은 단원들의 가능성을 믿고 그들이 소화해낼 수 있도록 기존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춤의 장점들을 살려 안무를 재수정했다.
연습이 시작되자 비욘드무용단 단원들은 오랜만에 하는 연습이라 활기차고 의욕이 넘쳤다. 나는 2019년 장애인문화예술진흥개발원 주최 ‘신나는 예술여행’ 뮤지컬공연을 계기로 비욘드무용단과 인연을 맺었다. 비욘드무용단 단원들은 뮤지컬에도 관심을 가져, 나는 이번 공연에 함께 하기로 하였다. 이렇게 하여 고른 작품이 맘마미아의 ‘댄싱 퀸’이란 넘버가 잘 어울릴 것 같았다.
특히 가사 중에 “신나게 춤쳐봐!”가 맘에 들었다. 나는 ‘비욘드무용단이 맘마미아처럼 정말 신나게 춤추며 맘껏 흥에 겨우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놀랍게도 내 생각대로 됐다. 단원들은 연습 시작을 하면서 춤출 때 신나하고 지칠 줄 몰라 했다. 연습영상을 촬영한 후 연습 뒤에도 촬영영상을 보며 눈으로 연습하기도 하였다. 그런 모습을 보며 이들이 장애를 가지고 있는지 잊을 때도 있었다.
쟁강춤을 시작할 즈음 날씨는 나날이 더워지고 빠른 동작들 때문에 지쳐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안무를 바꿔야 하나 걱정도 하였다. 빠르고 잦은 걸음을 힘들어하고 동작들을 하며 손목에 단 방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적도 많았다. 윤덕경 이사장은 단원들 가능성을 믿고 힘껏 응원해 주었다. 연습은 8월이 되면서 안정감을 찾고, 걱정했던 쟁강춤도 어느 정도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8월말 코로나가 점점 심각해지며 연습실은 다시 폐쇄되었다. 공연은 두 달도 남지 않았는데 아직 몸풀기, 몸만들기와 태평무는 시작도 못하고 있었다. 선생님들은 영상을 찍어서 안무를 단원들에게 보내주고, 단원들은 각자 집에서 개인연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들과 단원들은 3주가 넘는 시간 동안 만날 수 없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공연은 물거품이 될까 걱정이 태산 같았다.
‘천우신조’라 할까, 9월 중순이 되어 연습실에서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못한 것을 보충하려고 연습시간을 이전보다 대폭 늘렸다. 단원들도 장시간 연습에도 힘들어하는 모습 없이 잘 따라해줬다. 서로 몸을 부추겨 주는가 하면 눈짓으로 단원들끼리 응원을 주고받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3단계에서 2단계로 하향조정되긴 했지만 극장측은 관객 대면공연이 힘들다고 연락해 왔다. 우리는 비대면 영상공연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비욘드무용단 첫번째 공연을 많은 분들과 함께하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단원들은 용기를 잃지 않고 연습에 매진하였다. 오히려 영상을 통해 더 많은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에게 공연을 보여줄 수 있다고 역으로 생각하니 맘이 훨씬 편하고 부담도 덜했다.
소품과 의상이 완성되자, 의상을 차려입고 무대에 섰다. 연습은 훨씬 활기를 더했다. 역시 한국무용은 아름다운 한복이 한몫 하는 것 같다. 단원들은 파스텔톤의 ‘선인장에 핀 하얀꽃’의 우아한 의상을 특히 좋아했다.
공연 일을 열흘 남짓 앞두고 장애인문화예술진흥개발원 주최 청소년몸짓여행 캠프에서 쟁강춤을 먼저 선보일 기회가 있었다. 오랜 만에 하는 공연이라 다소 떨리는 마음이긴 했지만 무대에 오른 단원들은 여간 빛 나고 멋져 보이는 게 아니었다. 캠프 초청공연으로 자신감이 오르면서 마지막 남은 2주간 단원들은 하나가 되어 서로를 모니터하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갔다. 지루하고 반복되는 연습에 체력이 소진되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단원도 생겼다. 또 손가락 부상으로 인대가 늘어나 부채를 잡는데 문제가 생기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들 입에서 “힘들어요, 못 하겠어요”라는 말은 전혀 들을 수 없었다. 오히려 ‘한번만 더하자, 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보여줬다. 나는 ‘전문 무용수로 나가도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드디어 공연 D-1일, 리허설을 위해 극장에 모였다. 무대 셋업으로 리허설 시간이 많이 주어지지 않았다. 낯선 극장에서 리허설이라 어색하기도 하고 정신없이 의상을 갈아입어야 하는지라 실수가 연발했다. ‘내일 공연 때는 잘 할 수 있겠지, 제발~!’ 걱정을 하면서 리허설을 마쳤다. 드디어 공연 날 단원들은 오전 9시 모여 분장을 시작했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는데 2, 3명씩 분장실 빈 공간을 찾아 연습을 하는 것이었다. 잠시 후 마지막 리허설을 시작하였다. 전날의 정신없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바로 이들이 비욘드무용단이었다! 그들이 그렇게 빛나 보일 수가 없었다.
너무 대견하다. 그리고 멋있다!
드디어 녹화가 시작되고, 차분히 공연이 시작되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약속대로 의상을 체인지하고, 대기하며 실수없이 공연이 진행되었다. 기초체력이 부족하던 무용수들이었기에 공연 때까지 견딜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너무나도 잘 견뎌줬다. 기초체력도 늘어서 단단한 무용수로 변한 것이다. 바로 이들이, 아니 우리가 비욘드무용단이었다! 그렇게 빛나고 아름다운 우리의 비욘드무용단, 너무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