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세기 최치원, 한국 최초 조기유학생···21세기 ‘태평양의 고래’를 향하여

[아시아엔=이강렬 미래교육연구소 소장] 해외에 공부하러 간 한국인들의 유학 역사를 살펴보니 수, 당 이전의 3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는 대부분 불교의 승려들이 불법을 구하러 떠났고 대부분 나이가 들어서 길을 나섰다. 그렇다면 어린 나이에 공부를 하러 떠난 이는 누구일까? 바로 신라시대 문인인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857~908년) 선생이다. 그가 남긴 많은 문집 가운데 하나인 <계원필경>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신(臣)은 나이 12세에 집을 나와 중국으로 건너갔는데, 배를 타고 떠날 즈음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훈계하기를, “(앞으로) 10년 안에 진사(進士)에 급제하지 못하면 나의 아들이라고 말하지 마라. 나도 아들을 두었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가서 부지런히 공부에 힘을 기울여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12살에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다. 고운 최치원 선생은 신라 말 사람으로 본관은 경주(慶州), 자 고운(孤雲), 해운(海雲), 해부(海夫)이며, 시호는 문창(文昌)이다. 그의 아버지 최견일(崔肩逸)은 똑똑한 아들이 6두품으로 아무리 똑똑해도 17관등 가운데 여섯째 등급밖에 못 올라감을 아쉽게 여겨 당나라로 유학을 보낸다.

신라는 골품제 계급사회라서 성골, 진골이 아니면 출세를 할 수 없었다. 6두품도 일반으로서는 가장 높은 직급이지만 진골, 성골이 차지하는 자리에는 오를 수 없었다.

이런 계층제의 한계를 깨닫고 아들을 신라가 아닌 당나라에서 공부를 시켜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아버지 최견일 공은 12살 아들 치원의 손을 잡고 신라 수도 서라벌(지금의 경주)에서 전라남도 영암까지 약 257km를 걸어가서 아들을 당나라로 가는 상선에 태운다. 당시 신라의 많은 청년들이 국비로 당나라 유학을 떠났다.

이를 견당 유학생, 혹은 도당 유학생이라고 했고, 숙위 학생이라고도 했다. 당시 기록으로 봐 고운 선생은 사비로 간 것으로 추청된다. 이때 신라와 당나라를 오가던 배는 지금처럼 큰 배가 아니라 길이 20여m의 작은 배로 당나라 또는 신라의 사신들도 풍랑을 만나 죽기가 일쑤였다. 유학을 가기 위해 그런 길을 12살의 어린 소년이 떠난 것이다.

고운 선생은 지금 중국 강소성 양주(양저우)로 입국을 하고, 이어 당나라 수도 서안 가서 최고 교육기관인 국자감(國子監)에 입학해 공부했다. 그는 경문왕 14년(874년), 18살의 나이에 중국 당나라 과거 가운데 유학생들끼리 치르는 빈공과에 장원 급제했다.

최치원 초상화

빈공과는 당나라에서 시행한 시험 제도로, 빈공 진사과(賓貢進士科)를 줄인 말이며, 외국 학생을 위한 시험이었다. 중국 과거시험은 정말 어려워 60세에 진사를 해도 대단한 일이라고 했다. 물론 외국인 과거시험은 중국인들끼리의 시험보다는 쉬웠으나 주변의 일본, 오키나와, 발해, 신라, 동남아 국가들 유학생까지 모두 시험을 보니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 학생과 외국 유학생 과거시험을 따로 치른 전통이 오늘까지 이런 전통이 남아 있다. 현재 베이징대학이나 칭화대학 등에서 신입생을 선발할 때 중국 학생과 외국인 학생을 따로 뽑는다. 반면 미국 하버드대학 등은 내외국인 차별을 두지 않고 우수한 순으로 선발한다.

그는 당나라로 떠난 지 6년여만에 당나라 과거에 합격한다. <계원필경>에는 이렇게 써있다.

“신이 엄한 가르침을 가슴에 새겨 감히 망각하지 않고서 겨를 없이 현자(懸刺, 현두자고懸頭刺股의 준말로 졸음을 쫓기 위해 한(漢)나라 손경(孫敬)은 상투를 끈으로 묶어 대들보에 걸고, 전국시대 소진(蘇秦)은 송곳으로 정강이를 찌르면서 노력을 기울여 공부했다는 고사에서 옴)하며 양지(養志, 부모님의 뜻을 받들어 즐겁게 한다)에 걸맞게 되기를 소망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실로 인백기천(人百己千, 남이 백번에 능통하면 나는 천번을 한다)의 노력을 경주한 끝에 중국의 문물을 구경한 지 6년 만에 금방(金榜, 과거에 급제한 사람의 이름을 써서 거리에 붙이는 글)의 끝에 이름을 걸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 세계 중심이 중국에서 미국으로 바뀌었다. 신라시대에는 당나라가 세계의 중심이었으나 이제는 미국이 세계의 중심이 되었다. 우리 한국인들의 교육열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한국의 피 속에는 자녀교육의 유전자가 담겨있다.

신라시대 고운 최치원 선생의 아버지 최견일 공이 12살 먹은 어린 아들을 홀로 당나라로 유학을 보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신라시대 많은 청년들이 중국으로 유학을 떠난 것도 이를 입증한다.

미국은 전세계 유학생들이 가장 많이 공부하는 나라다. 2019년 현재 109만5299명의 외국학생이 공부 중이다. 이 가운데 중국 36만9548명(33.7%) 인도 20만2014명(18.4%), 한국 5만2250명(4.8%), 사우디아라비아 3만7080명(3.4%)다.

중국 인구 13억9300만명, 인도 13억5300만명, 한국 5164만명 등 인구 대비로 볼 때 한국 유학생 비율이 가장 높다.

한국의 아빠들이여! 신라시대 고운 선생의 아버지 최견일 공처럼 자녀들을 교육 선진국에 유학을 보내어 ‘한강의 잉어’가 아닌 ‘태평양의 고래’로 키울 생각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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