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코스모스를 노래함’ 오규원
거리에서, 술집 뒷골목에서, 그리고 들판에서 가을은 우리를 역사 앞에 세운다.
거리에서 가을은 느닷없이 1906년 2월 1일, 일본이 한국통감부를 설치한 일을 아느냐고 묻는다. 술집 뒷골목에서 조금씩 비틀거리는 내 앞을 가로막고 1960년 4월 25일에 대학 교수단 데모가 있었다고 말한다.
1960년 5월 29일에는 이승만 전대통령이 하와이로 망명하고, 1910년 6월 24일에는 구한국이 일본에 경찰권을 이양, 1885년 10월 8일에는 일본인이 민비를 살해, 1905년 11월 4일에는 민영환이 자살, 1947년 12월 22일에는 김구가 남한 군정 반대 성명을 발표했는데,
다시 보라고 하는구나. 이런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듯한 자질구레하기만 한 우리의 집 뒤와 골목에서, 느닷없이 또는 고통스럽게 죽어가야만 했던 사람들이 걸어간 발자국을 되살려놓고 우리들이 잊을까봐 저기 저렇게 가을이 해마다 보여주는, 죽어가야만 했던 사람들의 찢어진 옷이며 살점이며 피, 핏방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