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죽음이 내게 부활과 생명이 되었다”
[아시아엔=김서권 예수사랑교회 담임목사] 기독교는 ‘죽어야 사는’ 비밀이 있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듯이(요한복음 12장 24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나에게는 부활과 생명이 되었습니다.(요한복음 11장 25절)
사탄은 딱 하나, 창세기 3장 15절의 메시아, 마태복음 16장 16절, 그리스도만 모르게 장난을 칩니다.
청컨대 내 힘으로 살아보려고 몸부림치지 마십시오. 성경대로 오셔서,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부활하신 예수님이 창세기 3장 15절, 메시아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고백하십시다.
문제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반석이 되고 음부의 권세가 나를 해치지 못하며 천국 열쇠로 모든 문제를 뚫어버리는 힘이 옵니다. 의심치 말고 청종하십시다.(고린도전서 15장 3절, 마태복음 16장 16절)
그리스도 안에 있는 권세를 모르고 신앙생활을 하면 불신자보다도 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입니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거짓말도 하고, 남을 미워하기도 하지만, 교회는 율법으로 죄책감을 주고 공포감을 조성하여 하나님께 매달려 헌신 봉사하게 강요하여 오히려 삶은 쪼그라들게 만듭니다. 어느 것이 더 잘못 됐다고 계량할 수 있겠습니까? 똑 같을 뿐입니다.
세상의 책들이 “절망은 없다”고 말하지만, 사실 희망이 없는 것이지요. 예측 불허의 상황에서 언제 불화살을 맞을지 모르는 이 연약한 존재에게 시간이 갈수록 낙심할 일만 찾아오는데도 야망을 가지라고 억지로 길들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단 사이비들은 ‘잘 될 거야, 잘 될 거야,’ 귀만 즐겁게 하는 기복신앙, 이기적 욕망을 부추기는 사탄의 미끼를 던져 미신사상, 불건전 신비주의로 돈을 갈취하여 바벨탑을 쌓고 맙니다.
그렇다 보니 윤리 도덕 수준이 세상 기준에 오히려 못 미치고 영혼은 답답하고, 어둠과 공허와 혼돈이 그들을 덮어버립니다.
그게 바로 기독교가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는 게 아닌지요?
가짜들은 절대로 ‘죽어야 사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자랑할 것은 단언컨대 날마다 죽노라’ 고백하습니다.(고린도전서 15장 31절)
날마다 나를 쳐서 복종시키는 것은 남에게 복음을 전파한 후 나는 떨어짐을 당할까 두려워서입니다.(고린도전서 9장 27절)
나는 죽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주인으로 사시는 것(갈라디아서 2장 20절) 이것이 거대한 로마를 굴복시킨 초대교회와 사도바울의 힘입니다.
나는 원래 두려워하고, 의심하고, 믿지 않는 존재입니다. 이 원죄적 마귀 체질을 창세기 3장 15절의 주인공,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깨뜨립시다.
자아를 부정하는 영적싸움에서 승리하면 다윗처럼 노래할 수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눈을 떠 기도하고, 하나님과 연합하며 낮에는 여호와 하나님,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쉴 만한 물가와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고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며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신다. 밤에는 나의 전능자, 그리스도께서 나를 감찰하셨으나 내게서 흠을 찾지 못하셨도다”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시편 5편 3절, 시편 23편 1~5절, 17편 3절)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라고 시편 19편은 1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자연도 내 삶 속에 하나님의 계시를 주십니다. 다윗이 받은 응답이 나의 응답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