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사] 김동훈 기자협회 회장 “올해는 진영논리 벗어나 기자 자존감 회복 원년”
2020년 경자년(庚子年) 새해가 밝았습니다. 아울러 2010년대가 저물고 2020년대의 태양이 떠올랐습니다.
출발, 희망, 도전, 개척이라는 단어가 생각납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국언론과 한국기자들이 처한 현실은 절망적입니다. 유사 이래 지금처럼 언론이 신뢰받지 못하고, 지금처럼 기자가 외면 받았던 적이 또 있었나 싶습니다.
기자는 온 국민의 질타 대상이 됐습니다. 우리는 모두 ‘기레기’가 돼버렸습니다. 기자들은 자괴감에 빠져 있습니다. 좋은 보도에 대한 칭찬과 격려는 인색하고, 맘에 들지 않는 보도를 하면 ‘기레기’라는 댓글이 주렁주렁 달립니다. 비상식적이고 비이성적인 댓글도 많습니다. 이런 현실에 비애를 느끼고 언론계를 떠나 다른 직업을 선택하는 기자들이 이렇게 많았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입니다.
협찬성 기사, 광고성 기사를 써야 하는 참담함도 매우 큽니다. 먹고살아야 하니 자존심도 내팽개치곤 합니다. 과거에는 ‘정치권력’이 힘으로 언론을 지배했다면 지금은 ‘자본권력’이 언론을 좌지우지 합니다.
저는 한국언론이, 한국기자가 가장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제47대 한국기자협회 회장으로 오늘부터 임기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어깨가 무겁습니다. 기자협회장 선거 당시 저의 메인 슬로건이 ‘2020 기자 자존감 회복의 해입니다’였습니다. 우리 기자들 월급 몇 푼 더 받는 것보다 국민의 신뢰와 성원을 받으며 신명나게 일하고 싶어 합니다. 내가 쓴 기사 하나가 우리 사회의 잘못된 관행을 바꾸고 세상을 뒤흔들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야 합니다.
신뢰를 회복하려면 뼈아픈 반성과 성찰이 필요합니다. 과거 우리 언론은 특정 매체에서 특종이나 단독보도를 하면, ‘물’은 먹었지만 그래도 대체로 기사를 받았습니다. 이런 특종이나 단독기사는 여러 매체에 실리면서 더 큰 파급력과 폭발력을 가졌고, 언론의 영향력과 신뢰도 그만큼 높아졌습니다.
그런데 요즘엔 언론 스스로 타매체 보도를 깎아내리기 바쁩니다. ‘진영논리’에 갇혀 서로 폄훼하고 평가절하합니다. 좋은 보도에 대해 우리 스스로 칭찬해 주는 문화가 정착돼야 합니다.
‘게이트 키핑’의 강화도 매우 중요합니다. 건강치 못한 매체, 검증되지 않은 매체일수록 ‘게이트 키핑’이 매우 약합니다. 아예 ‘게이트 키핑’ 절차가 생략된 게 아닌가 의심스러운 매체의 보도도 적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국민들에게 신뢰받는 좋은 품질의 기사를 제공하려면 언론 스스로 검증하고, 검증하고 또 검증해야 합니다.
언론의 공익성과 공공성을 저해하는 포털의 권력화 문제, 신문법과 방송법, 특히 지역신문발전지원특별법 개정 문제, 그리고 언론진흥재단의 과다한 광고 수수료 문제 등은 제47대 한국기자협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또 우리의 권익을 찾고, 복지 혜택을 확대하는 데도 소홀할 수 없습니다.
1964년 8월17일 박정희 정권의 언론 탄압에 맞서 탄생한 한국기자협회는 올해 창립 56주년을 맞게 됩니다. 위기에 처할 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늘 지혜롭게 극복해 왔습니다.
전국 1만여 회원 여러분, 힘내시기 바랍니다. 한국기자협회가 버팀목, 기댈 언덕이 돼 드리겠습니다. 2020년 기자 자존감 회복의 원년으로 만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