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힝야 학살’ 아웅산 수치의 ‘굴욕’···노벨평화상 받은 날 ICJ 법정에

12월 10일 로힝야족에 대한 미얀마 정부의 대량학살 혐의로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출석한 아웅산 수치(왼쪽) 미얀마 국가자문 겸 외무장관 <사진 AFP 연합뉴스>

[아시아엔=편집국] 미얀마 민주주의와 인권 상징이던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 겸 외무장관이 12월 10, 11일 로힝야족 대량학살 혐의를 받는 미얀마 정부를 변호하기 위해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ICJ) 법정에 출석했다. 15년 동안 가택연금을 당하면서도 군부에 맞서 민주주의 투쟁을 벌여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그가 사실상 대량학살의 피고로 전락한 셈이다. 12월 10일은 28년 전 오슬로에서 수치의 장남이 노벨평화상을 대리 수상한 날이다.

미얀마 군경은 2017년 자국 내 무슬림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을 수천명 살해했으며, 70만명 이상의 로힝야족이 방글라데시로 피난 가는 난민사태를 야기했다. ‘로힝야사태’는 미얀마 군부가 강경 대처한 데 따른 결과지만, 수치 역시 로힝야족 문제에서 다수 국민의 정서에 동조하는데다, 군부와의 협조적인 관계를 의식해 미얀마 정부 조치를 지지해왔다.

법정 출석 첫날인 10일, 수치는 “옹호의 여지가 없는 학살을 방어할 것이냐”는 기자들의 물음에 일체 대답하지 않았다. 수치는 심리 과정 내내 책상 위에 손을 얹은 채 무표정하게 앉아 있었다.

수치는 심리 이틀째인 11일엔 “‘학살’이 극단주의 세력들의 위협을 막기 위한 정당한 조처였다”는 미얀마 정부의 주장을 변호했다. 그는 “일부 사례에선 미얀마군이 국제인도주의법을 무시한 채 부적절한 힘을 사용하고, 전투요원과 민간인도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이는 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이뤄진 결단”이라고 주장했다. 수치는 “미얀마는 내부의 갈등에 대처하고 있다”며 로힝야족 탄압을 ‘내부 문제’로 돌렸다. 그는 특히 “이를 집단학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번 재판은 이슬람협력기구(OIC) 57개 회원국의 지지를 받아 서부 아프리카의 감비아가 제소하면서 성사됐다. 감비아는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미얀마 군부가 2017년 8월까지 로힝야족에 대한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인종) 청소작전’을 시행했다”고 고발했다.

감비아의 아부바카르 탐바두 법무장관은 법정에서 “감비아가 요구하는 것은 이런 몰상식한 살해, 집단양심에 지속적으로 충격을 주는 야만적 행위, 그리고 자국 주민에 대한 대량학살 등을 멈추라고 미얀마에 명령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사법재판소 재판은 개인이 아니라 국가를 상대로 진행된다. 따라서 이번 재판의 피고는 수치가 아니라 미얀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미얀마의 지도자인 수치가 로힝야 사태를 막기 위해 그의 권력과 도덕적 권위를 사용하지 않은 것에 대한 비난이 거세다. 그는 일부 사실로 확인된 미얀마군의 ‘인종청소’ 보도와 주장을 가짜뉴스라고 깎아내리기도 했다. 이에 국제앰네스티를 비롯해 여러 국가 및 단체가 인권 관련 수상이나 명예시민증 수여 등을 취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제사법재판소가 미얀마를 유죄로 판결해도 강제할 방법은 없다. 수치나 미얀마 군부인사들을 체포하거나 재판에 세울 수도 없다. 그렇지만 유죄판결은 미얀마에 대한 제재로 이어질 수 있다. 또 국제사법재판소와 별도로 국제형사재판소(ICC)는 로힝야사태에 책임 있는 개인들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이어서 수치한테도 번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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