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한숟가락의 밥’ 김종제 “한밤의 열대야에 식욕을 잃고“

열대야 무더위, 무서워

지난 여름 한밤의 열대야에
식욕을 잃고 며칠 째 굶어
허기진 걸 어떻게 알고
누가 여기 가을산에
한 상 가득 차려놓았구나
붉은 배추 김치와 푸른 오이 소박이
그리고 바다에서 건져올려
소금으로 염장 지른
노릿노릿한 간 고등어까지
음, 나는 그저
한 숟가락의 밥만 있으면 되겠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솥에서
따뜻한 밥을
도시락에 퍼 담아 가지고
얼른 가을 산으로 뛰어 가서
한 입 가득 넣고 씹어 먹으면
저 맛깔스런 반찬들
단풍나무들 가을 들꽃들 계곡의 바위들
우루루 내게 몰려와
젓가락으로
먼저 집어달라고 아우성이로구나
논에서 밭에서 물에서 길러낸
씨앗 같은 것들 열매 같은 것들
사랑 듬뿍 담긴 마음 같은 것들
나는 그저 배고픈 눈으로
한 숟가락의 밥만 들고 앉아서
행복 가득한 상차림을
바라보고 있으면 배가 부르겠네
며칠 굶어도 될만큼 속이 든든하겠네
한 숟가락의 밥만 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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