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킬링필드 주범 ‘누온 체아’ 사망···인구 1/4 ‘대학살’ 진상규명 ‘역사속으로’

캄보디아 역대 수상들. 킬링 필드 주역인 체아(둘째줄 왼쪽 세번째)는 크메르 루주 시절 총리를 지냈다. 사진은 ‘캄보디아 역대 총리 35인'(소팔 차이 저)의 표지.  <사진 소팔 차이 아시아엔 기자>

[아시아엔=연합뉴스, 사진/소팔 차이 <아시아엔> 기자 ] 1970년대 캄보디아에서 양민 약 200만명이 학살된 ‘킬링필드’를 일으킨 폴 포트 정권의 2인자 누온 체아 전 공산당 부서기장이 4일(현지시간) 저녁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의 병원에서 사망했다고 교도통신이 이날 유족을 인용해 보도했다. 향년 93세.

킬링필드 사건의 핵심 전범인 체아는 유엔과 캄보디아가 함께 설립한 크메르 루주 전범재판소에 인륜에 반하는 죄, 대량학살 죄 등으로 기소돼 2014년 8월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며 2016년 11월 같은 형이 확정됐다.

2008년 3월 20일 크메르 루주 전범재판소에 출석한 누온 체아 [AP=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는 이와는 별도로 작년 11월에 대량학살 죄를 심리하는 재판에서 종신형을 또 선고받았으며 이 판결에 불복해 항소심이 진행 중이었다.

체아는 폴 포트 정권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으며 급진 좌익 무장단체 크메르 루주의 최고 권력자였던 폴 포트에 이은 2인자 지위를 누렸다.

포트는 1998년 사망해 법정에서 단죄할 기회가 없었다. 체아가 사망함에 따라 포트 정권 고위층 가운데 생존자는 키우 삼판(88) 전 국가 주석뿐이며 이로 인해 대학살의 진상을 규명하는 것이 한층 어려워졌다고 교도는 전했다.

누온 체와 인터뷰 당시 소팔 차이 기자. 1999년

체아는 1926년 캄보디아 서부 바탐방주에서 태어났으며 2차 대전 중에 태국에서 교육을 받았고 태국 공산당에 입당했다. 그는 이후 캄보디아로 돌아와 프랑스의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독립운동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체아는 캄보디아 공산당 창설에 참여했으며 1975∼1979년 포트 정권 시대에 지식인 학살이나 도시 주민을 농촌으로 강제 이주시키는 작업에도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권력에서 밀려난 후에는 전범 재판에 따라 체포되기 전까지 캄보디아 북서부 파일린에 거주했으며 “조국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며 포트 정권의 정책을 옹호했다.

체아는 전범 재판에서 다수의 양민이 목숨을 잃은 것에 관해 “(포트 정권 이전의) 미국에 의한 폭격이나 베트남의 소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2004년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는 “실수가 있었던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나의 사상이 있었다. 나는 자유로운 국가를 원했다. 나는 사람들의 행복을 원했다”며 “그것은 전쟁 범죄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소팔 차이 <아시아엔> 기자는 킬링필드 주역과 피해자들을 일일히 만나 진상규명에 앞장섰다. 그 역시 부모를 잃은 피해자다

크메르루주 정권은 1975년 친미 성향의 론놀 정권을 무너뜨리고 공산주의 사회 건설에 나섰다. 그 과정에서 수도 프놈펜 주민들과 지식인들을 강제 이주시켰고 반대 세력에 대한 숙청, 고문, 학살 등을 자행했다.

크메르 루주 정권하에서 기아, 고문, 처형, 강제노동 등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당시 인구의 약 4분의 1인 170만∼220만명으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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