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산책] 파도밭을 건넜다, 희망을 보았다
부산 해원 수필동인집?<파도밭을 건너며>
18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을 지낸 김형오는 들고 날 때를 잘 판단하는 것으로 정평 나있다.그가 작년 여름 일찌감치 19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지 않았다면, 나오지 않았을 수필 몇 편이 있다.
그가 지인들에게 수필집 <파도밭을 건너며>을 전하며 보낸 짤막한 편지에서 쓴 대로다. “수필은 아무래도 ‘쉼표의 시간’에 어울리는 문학장르입니다. 지난 한해 몸도 마음도 분주해 붓을 들 여유를 갖기 어려웠습니다. 동인지 마감일이 없었더라면 이 몇 편의 글도 세상에 나오기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수필집 <파도밭을 건너며>는 2000년 6월 부산 초원복집에서 발족한 해원(海原) 동인들이 매년 한차례 내는 동인지다. 부산일보 회장을 지낸 김상훈을 비롯해, 성병두 김동규 강남주 유흥수 김천혜 김형오 신옥진 등 8명이 회원.
창립취지가 재밌고도 웅혼하다. “오늘의 바다는 어제의 바다가 아니다. 오늘의 바다는 연결의 바다, 창조의 바다, 희망의 바다, 평화의 바다, 생존의 바다로 변했다. 푸른 물결이 수평선을 넘어 세계로 뻗어가듯 우리의 꿈, 우리의 의지, 우리의 신념도 끊임없이 뻗어나갈 것을 소망한다. 우리 동인은 세계를 무대로 인류를 형제로 생각, 가장 순수하고 진솔한 문학형식인 수필세계를 파도 밭을 건너듯이 개척하려 한다.”
필자는 김형오 전 의장과 10년 가까이 교유하면서도 그의 호가 林堂인 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대만의 문호 임어당(林語堂)이 떠오르는데. 임어당이 생활 속에서 수필을 엮어내는 고수라면 김형오는 자연 속에서 그걸 잘 빚어내는 것 같다. 뛰어난 글솜씨를 지닌 다른 동인분들께 양해를 구하고 임당의 수필 가운데 한 대목을 옮긴다.?
?<<정치와 시는 함수관계를 갖고 있다. 케네디도 “정치가 오만해질 때 시는 그것을 깨닫게 해준다”고 시의 정치적·도덕적 효용성을 인정했다. 그의 대통령 취임식에서는 미국의 국민시인 로버트 프로스트가 축시를 읽었다. (중략)
? 프랑스 대통령 조르주 퐁피두는 시를 정치에 접목시킨 시인이었다. 국무회의를 할 때 논쟁이 거칠어지면 그는 한 편의 시를 낭송함으로써 분위기를 부드럽게 바꾸곤 했다.(중략)
? 원자바오 총리는 2006년 영국을 방문했을 때 “무슨 일로 잠 못 이루는가?”란 기자의 질문에 옛 시인 굴원과 정섭의 시로 답변을 대신했다. ‘긴 한숨 쉬며 남몰래 우는 건 민초들의 고생이 애처로운 탓이요, 관저에 누워 듣는 대숲 소리는 백성들 신음소리처럼 들리는구나’라고.(중략)
? 노벨문학상 후보였던 세네갈 초대 대통령 레오폴드 상고르는 “나는 시인이었던 대통령보다는 대통령을 지낸 시인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예술가적 자부심을 드러냈다. ‘가야 할 때’가 오자 스스로 권좌에서 물러남으로써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인 것도 어쩌면 그가 시심을 지닌 정치인이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책을 앞뒤로 막무가내로 넘기다 발간사 마지막 부분에 시선이 꽂힌다.
강남주 동인이 쓴 것이다. “참으로 시끄러운 세상, 소음이 가득한 세상, 타협과 토론이 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또다시 춘궁기보다 혹독한 파국을 겪지 않을까 우려한다. 이런 때는 위기의 극복을 위하여 메멘토모리의 경구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백척간두에 섰을지라도 앞으로 나아갈 지혜는 있기 마련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