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대로 알기] 주말엔 세계가 사랑하는 ‘라멘’···기억하라, 1958년 8월 25일!

[아시아엔=심형철, 이선우, 장은지, 김미정, 한윤경 교사] 우리나라에서 라면은 언제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간단한 인스턴트 식품이지. 야밤에 보글보글 끓여먹는 라면의 맛은 다음날 아침 얼굴이 붓는 것 따위의 고민은 저 멀리 날려버릴 만큼 매력적이잖아. 외식으로서는 가끔 분식집에서 김밥과 함께 먹는 정도의 지위를 가진 값싼 한끼일 거야. 그런데 혹시 인스턴트 라면의 원조가 일본이라는 거 알고 있니?

1958년 8월 25일은 세계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인 ‘닛신 치킨라멘’이 발매된 날이야. 이 라면은 봉지면인데 특이하게도 끓이지 않아도 되고, 스프가루도 따로 들어 있지 않아. 끓일 필요도 없고 스프가루도 안 들어 있다니 이게 무슨 소리냐고? 이 라면은 면을 그릇에 담고 정량의 뜨거운 물만 부어 뚜껑을 덮고 3분 정도만 기다리면 완성이야. 꼭 컵라면 같은데, 스프가루를 넣어 국물 맛을 내는 게 아니라 면에 이미 조미가 되어 있어서 면을 익히면서 국물맛을 내는 방식이지. 봉지에 달랑 면만 들었다니 뭔가 한참 부족한 느낌도 들지만 의외로 맛있어. 봉지 겉면을 보면 라면 위에 달걀과 파가 올라가 있는데 실제로 면 위에 달걀을 올리기 편하도록 가운데가 오목하게 움푹 들어가 있어. 센스 만점!

그런데 이런 인스턴트 라면은 왜 일본에서 가장 먼저 개발 되었을까? 일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음식 중 하나인 라멘(ラーメン)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일본 라멘은 중국식 면인 중화면 위에 돼지고기 국물(돈코츠)이나 된장 국물(미소), 간장 국물(쇼유) 등을 부은 다음 토핑으로 챠슈, 달걀, 김, 파 등을 얹은 요리야.

역사적으로는 1488년에 승려들이 지금의 라멘과 비슷한 형태인 게타이멘(径帯麺)을 먹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또 1697년에는 미토번(水戸藩)의 번주 도쿠가와 미츠쿠니(徳川光圀 : 미토코몬 水戸黄門이라고도 불림, 일본의 유학자로 대일본사를 편찬)가 명나라의 실학자였던 주순쉐이(朱瞬水)와 교류하면서 먹었다는 기록도 전해지지. 하지만 이 시대의 라멘은 일반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라기보다는 일부 사람들만이 접할 수 있는 귀한 음식에 가까웠어. 실제로 일본에 라멘이 유행하기 시작한 건 1859년 이후라고 생각하면 돼.

개항 후 많은 중국인이 일본에 들어오게 되면서 요코하마에는 차이나타운이 형성됐어. 1870년에는 일본 최초의 중화요리점이 이곳에 등장했고. 하지만 당시에는 라멘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불렸는데 그게 바로 ‘난킹소바’야. 1884년에 항구도시인 하코다테(函館)의 요와켄(養和軒)이라는 중국요리점에서 낸 신문 광고를 보면‘난킹소바 15전’(현재 물가가치로는 2천~3천 엔, 원화로는 2만~3만 원이니 엄청 비싸지?)이라는 문구가 등장해. 이 광고 이후 난킹소바라는 이름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지.

비슷한 시기인 1899년에는 규슈의 작은 항구도시인 나가사키(長崎)의 시카이로(四海楼)라는 중국음식점에서 처음으로 ‘짬뽕’이라는 이름을 가진 음식이 등장해. 라멘과 비슷한면 요리지만 육수를 면 위에 붓고 각종 고명을 올리는 라면과는 달리 해산물, 고기, 야채 같은 재료를 먼저 볶은 후 육수와 면을 넣고 함께 끓인다는 점이 다르지.

맛은 우리가 중국음식점에서 흔히 먹는 얼큰하고 매콤한 짬뽕일까 싶겠지만 전혀 맵지 않은 흰 짬뽕이야. 게다가 면의 굵기도 한국의 짬뽕보다 얇고 구불구불해서 식감이 전혀 달라. 한국인 입장에서 보면 ‘이게 짬뽕이라고?’ 싶을 정도로 다른 모습이지. ‘ちゃんぽん(챰뽕)’이라고 쓰는 이 일본어는 ‘한데 섞여 있다’는 의미를 가지는데 다양한 식재료를 섞은 음식이라는 뜻으로 쓰였어.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중국 음식의 이름이 일본어에서 유래됐다니 이것도 참 재미있는 일이지?

1906년에는 일본 최초의 라멘전문점까지 생기는데 그게 도쿄 아사쿠사(浅草)에 있는 라이라이켄(来々軒)이라는 곳이야. 라이라이켄은 당시 고급음식점이었던 중국음식을 서민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해서 큰 인기를 끌었어. 라멘 한 그릇이 6전(현재 가치로 300엔 정도)으로 값이 저렴해 연일 긴 줄을 서서 먹을 정도였대.

이때는 라멘이 아니라 시나소바(시나=차이나)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점차 인기를 끌면서 다양한 음식점이 많이 생겨났어. 지금도 영업 중인 라멘 전문점 중에 도쿄에서 가장 오래된 곳은 1914년에 창업한 도쿄 니혼바시 카야바쵸의 타이쇼켄(新川大勝軒飯店)이라는 식당이야. 도쿄에 가면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라면가게에 한번 들러 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 되겠지?

그럼 라멘이라는 명칭은 언제 처음 쓰게 되었을까? 1923년에 삿포로에 다케이에쇼쿠도(竹家食堂)라는 중국요리점이 등장하는데 이곳의 주력 메뉴인 로스면(肉絲麺)이 바로 일본 3대 라면인 삿포로 라멘의 기원이라고 전해져. 하지만 맛은 지금과는 꽤나 달랐다고 해.

일본인들은 이 면요리를 챤코로소바 혹은 챤소바, 시나소바라고 불렀는데, 어감상 중국을 비하하는 느낌이 있었지. 주방장이었던 광동성 출신 중국인 왕원차이(王文彩)는 손님으로 오는 많은 중국인 유학생을 의식해 다른 이름을 고안해냈다고 해. 그 이름이 바로 ‘라멘’이야. 음식이 나왔을 때 중국인들은 ‘다 됐습니다’라는 의미에서 ‘하올라~’ 하고 마지막에 ‘라’를 길고 크게 말하는데 그 발음에서 착안해 라-멘이라고 불렀다는 설이 있어. 또 면을 길게 뽑는 걸 중국어로 라(拉)라고 하고 그런 면 요리를 라미엔(拉面)이라고 하는데, 그 발음을 그대로 가져와서 라멘이라고 불렀다는 설도 있어.

여러 지역에서 라멘 전문점이 생기면서 라멘의 인기도 높아졌는데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이후에는 많은 식당들이 문을 닫았다고 해.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에는 이런 라멘식당이 노점의 형태로 바뀌면서 오히려 엄청 많이 등장하게 된 거야. 값도 싸고, 간편하고, 빠르게 먹을 수 있는 맛있는 음식이니까 전쟁 이후의 팍팍한 삶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음식이었겠지? 이렇게 라멘의 인기는 계속되었고 결국집에서도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 라멘이 고안되기에 이르렀지. 이전까지는 주로 츄카(中華, 중화)소바라고 불렸던 것이 전국에 라멘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가 바로 인스턴트 라면인 ‘닛신 치킨라멘’이니 그 영향력이 상당하다고 할 수 있겠지?

그럼 이제 옛날 얘기는 그만하고 우리가 꼭 먹어 봐야 할 현재의 일본라멘 이야기를 해 보자. 일본에 가면 꼭 먹어 봐야할 일본 3대 라멘! 만드는 방법은 어떻게 다르고, 맛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아볼까?

홋카이도 삿포로 라멘

1) 홋카이도 삿포로 라멘 (北海道札幌ラーメン)

삿포로 라멘이라고 하면 보통 미소라멘을 많이 떠올릴 정도로 미소라멘이 인기가 좋지만 사실 쇼유(醤油, 간장), 미소(味噌, 된장), 시오(塩, 소금)라멘 모두 각각의 매력이 있어. 삿포로 라멘은 추운 겨울 날씨에 국물이 빨리 식지 않도록 국물 표면에 기름막을 만드는 걸로 유명해.

돼지사골로 육수를 내고 고명으로 챠슈(チャシュウ, 얇게 썬 돼지고기), 파, 죽순을 올리는 것은 다른 지역의 라멘과 같지만, 볶은 야채를 올리고 미소라멘에 챠슈 대신 다진고기 고명을 올리는 특징이 있어. 삿포로에는 아지노 산페이(味の三平)라는 유명한 라멘 전문점이 있는데 이곳의 미소라멘이 바로 삿포로 라멘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어. 한번 맛보고 싶지?

2) 후쿠오카 하카타 라멘 (福岡博多ラーメン)

부산에서 배로 2시간, 인천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남짓이면 갈 수 있는,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일본 지역이 바로 후쿠오카야. 이런 가까운 곳이 라멘의 성지라니 ‘라멘 먹으러 일본갔다 온다’는 말이 꼭 허세만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한국에서 먹을 수 있는 일본 라멘은 후쿠오카의 라멘을 재현한 경우가 많아. 바로 걸쭉한 돼지사골 국물로 유명한 돈코츠(豚骨)라멘이 하카타 라멘의 대표 메뉴야. 다른 지역의 라멘과 다른 점 중 하나는 면이 매우 가늘고, 꼬불꼬불하지 않다는 거야.

면이 가늘어서 국물이 잘 배어들기는 하지만 금새 풀어지기도 해서 다른 지역에 비해 1인분이 조금 적은 편이니 먹다가 부족하면 ‘카에다마(替え玉, 면 추가)’라고 외쳐 봐. 참고로 후쿠오카에 가서 라멘을 주문할 때는 이것저것 선택해야 할 게 많아. 맛의 진한 정도나 매운 정도, 면의 익힘 정도는 물론, 마늘, 파, 챠슈, 김, 계란 등을 넣을지 말지까지 결정할 수 있으니 각자의 취향에 맞는 라멘을 먹을 수 있겠지?

후쿠시마 기타카타 라멘

3) 후쿠시마 기타카타 라멘 (福島喜多方ラーメン)

기타카타 라멘은 삿포로 라멘이나 하카타 라멘과 달리 맑은 국물과 깔끔한 맛으로 유명해. 돼지사골 육수와 멸치육수를 섞은 쇼유(간장) 국물이 기타카타 라멘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어. 일본 라멘의 특징은 지역에 따라 국물에 잘 어울리는 면을 쓴다는 점이야. 기타카타는 다른 지역에 비해 약간 두껍지만 부드럽고 수분 함량이 높은 쫄깃한 숙성면을 써.

앞서 이야기한 하카타 라멘의 면과는 전혀 다른 느낌인 셈이지. 이 지역에는 아침부터 라멘으로 식사를 하는 ‘아사라(朝らー)’ 문화가 있는데, 따끈하고 깔끔한 국물은 아침식사로 딱이야. 기타카타에 가면 아침으로 라멘 한 그릇 먹고 관광을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출처=지금은 일본을 읽을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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