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차인연합회 창립 40돌, 현대 차문화 중흥조 효당 최범술 선생께

오른쪽부터 채원화 원장, 효당 최범술 선생, 연세대 황원구·고성환 교수.1969년 촬영 <출처: 현대불교신문>

[아시아엔=박권흠 (사)한국차인연합회장, (사)국가원로회의 상임의장]  한국차인연합회는 5월 18~19일 이틀 동안 국회의사당 잔디광장에서 연합회 창립 40 주년과 차의 날 제39회를 기념하는 ‘팔도차문화 큰잔치’를 개최한다.

연합회 창립 40주년에 즈음하여 특별히 생각나는 분이 있다. 2000년 가까운 이 나라 차문화 역사가 일제 36년과 6.25를 겪으면서 거의 소멸된 것을 중흥하자고 깃발을 높이 든 현대 차문화 중흥조(中興祖) 효당 최범술(曉堂 崔凡述) 선생이다.

효당 최범술 선생

1979년 한국차인연합회 창설 무렵 한국에 다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한국사람들도 잘 모르고 있을 때 효당 선생은 경남 사천 다솔사에서 수많은 제자를 불러 모아 차문화와 다도를 가르치고 <한국의 다도>라는 저서를 발간하였다. 그가 한국의 차문화를 중흥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던 차에, 미국의 국회의원들을 친한파로 만드는 일을 하다가 정치문제가 되어 일어났던 소위 ‘코리아게이트’ 사건의 중심에 있던 박동선(현 한국차인연합회 이사장)씨가 귀국하자 서로 만나 한국차인연합회를 만들기로 합의하고 마침내 1979년 (사)한국차인연합회를 창립하였다.

그 한국차인연합회가 올해로 40주년이 된 것이다. 한국차인연합회가 창립되던 그때와 오늘의 한국 차문화 발전상을 비교해보면 상전벽해에 가까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효당 선생이 그때 차문화 중흥의 깃발을 들지 않았으면 과연 오늘의 차문화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효당 선생 앞에 전국 차인들의 고마운 마음을 담아 향기로운 우리 차로 헌다례를 올리는 것이 마땅한 도리라고 본다.

그리하여 5월 18일 오후 2시 국회의사당 앞 잔디광장에서 열리는 한국차인연합회 창립 40주년 기념 및 제39회 차의 날 기념 축제 개막식에서 효당 선생에 대한 헌다례를 올릴 때 전국 수천명 차인들이 함께 예를 올릴 것이다.

효당 선생에게서 직접 차문화를 배운 인사는 채원화(효당가 회주), 윤병상 (연세대 교수), 고 김상현(동국대 교수), 고 목정배(동국대 교수), 전보삼(한용운 만해기념관장), 여연(전 일지암 주지) 등이 있다. 이분들도 오늘의 차문화 발전에 기여하였다. 특히 채원화 여사가 효당가 차문화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때 창립된 한국차인연합회는 그동안 일지암 복원, 김대렴 공 차시배지 추원비 건립, 차의 날(매년 5월 25일) 제정 선포, 한국다도대학원 설립, 육우묘(중국 호주시) 일주문 건립, 충담사 안민가비 건립(경주), 국제차문화연토대회 유치(1996년), 전국민차마시기운동 전개, 권차비 건립 등 수많은 사업을 하였다. 특히 다도대학원은 그동안 3000여명의 다도교수를 배출하였다. 회원 차회 1100개를 만들어 등록된 회원만도 2만명이 넘는 큰 조직으로 발전했다. 이같은 업적이 인정되어 마침내 한국차인연합회는 정부지정 차전문 인력양성기관으로 선정되었다.

효당 선생은 독립운동에 앞장서 여러 차례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다. 1919년 3월 1일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당시 해인사 지방학림에 수학중이던 효당 선생은 독립선언서 1만부를 복사하여 영남 일대에 배포하다가 일본 헌병대에 잡혀 혹독한 고문을 당하면서 옥고를 치렀다. 그 후 1922년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 고학하던 중 독립운동가 박열 선생을 만나 독립운동을 하다가 3년간 옥고를 치렀다.

효당 선생은 1933년 일본 다이쇼대학 본과를 졸업하고 조선불교청년총동맹 중앙집행위원장에 피선되어 국내로 들어와 독립운동을 계속했다. 그 후 사천 다솔사에 있을 때 만해 한용운 스님, 김범부, 김법린 등 저명한 독립운동 지도자들이 출입하면서 독립운동의 본거지로 만들었다.

건국 공로자이자 제헌의원 효당 선생은 해방 후 1947년 미소공동위원회 대한불교단체 대표로 선임되어 활동하였고 그 무렵 국민대학을 만들어 이사장이 되었다. 그 후 1948년 5.10선거 때 삼천포·사천 지역구에 출마하여 제헌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대한민국 건국에 공을 세웠다.

효당 선생이 대한민국 건국에 앞장섰던 그 대한민국 국회에서 그렇게 사랑했던 향기로운 우리 차를 받아마시는 감회는 남다를 것 같다.

효당 선생! 한국 국민들이 차를 모두 마시는 이 시대, 차문화 발전에 앞장서는 전국의 차인들을 아낌없이 성원해 주소서.

한국차인연합회 회장

*필자 박권흠

1932년 경북 청도군 각북면에서 태어났다. 대한민국의 전 언론인·정치인으로 호는 우사(又史). 경향신문 정치부 차장까지 역임하였다. 1970년 신민당의 제7대 대통령 선거 후보 선출 전당대회 때 김영삼의 연설문을 작성하면서 김영삼과 인연을 맺었다. 1974년 9월 신민당 김영삼 총재 체제가 출범하자 총재비서실장에 임명되어 1976년까지 역임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경주시-월성군-청도군 선거구에서 당선된 이후 3선 의원을 역임했다. 이후 한국도로공사 이사장, 대구일보 사장, 한국차인연합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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