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불패 신화’ 깨진 터키 에르도안 정권, 이스탄불·앙카라 시장 야당에 내줘

터키 2019년 지방 선거

[아시아엔=알파고 시나씨 기자] 터키에서 지난 3월 31일 전국 지방선거가 실시됐다. 전체 5700만 유권자 가운데 4700만명이 투표해 83.7%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그만큼 뜨거운 쟁점이 많았단 얘기다.

이번 선거는 여러 면에서 ‘유의미한 선거’로 평가되고 있다. 단지 시장·군수 등 지자체장을 선출하는 것을 넘어 2016년 7월 쿠데타 시도 이후로 정권 장악의 길을 달리고 있는 에르도안 정권에 대한 심판의 의미가 컸다.

올해 터키 지방선거에선 정당들이 역대 최초로 부분적이나마 단일화를 비롯한 ‘선거연대’를 통해 참여했다. 에르도안 대통령 소속의 정의개발당(AKP)은 이미 연립정부를 구성한 민족운동당(MHP)과 ‘민중연대’(Cumhur Ittifaki)를 하여 지방선거에 나섰다. 이와 같이 AKP과 MHP은 여러 지역에서 단일후보를 출마시켰으나, 일부에선 이해관계가 얽혀 단일화에 실패했다.

제1야당인 공화인민당(CHP)과 MHP에서 탈퇴한 의원들은 2년 전 창당한 ‘좋은당’(IYI Parti)과 ‘국민연대’(Millet Ittifaki)란 이름의 동맹을 하여 지방선거에 에르도안 정권과 맞섰다. 이처럼 여·야는 동맹을 맺어 합의된 지역에서 단일후보를 내세워 수많은 당선자를 냈다.

이번 선거 결과는 2014년 지방선거 결과와 비교해 볼 때 에르도안 집권당인 AKP의 패배로 나타났다. 집권당은 제1 도시 이스탄불과 수도 앙카라를 잃었기 때문이다. 물론 AKP와 여권 연대를 한 MHP의 경우는 AKP출신 단일후보들보다 여러 곳에서 당선의 깃발을 들었다.

2014년 터키 지방 선거 결과와 2019년 터키 지방 선거 결과의 비교

이번 선거결과의 또 다른 특징은 신생 ‘좋은당’이 예상보다 많은 득표를 얻은 점이다. 우파 출신인 좋은당은 좌파인 공화인민당(CHP)와의 연대, 즉 좌우동맹을 했으면서도 이들이 본래 속해 있던 MHP보다 빛나는 결과를 이끌어 냈다. 즉 앙카라 광역시 당선자는 공화인민당 간판을 걸고 나왔지만 실제로는 ‘좋은당’ 배경을 갖고 나왔던 것이다.

이번 터키 지방선거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이 3개 있다.

첫째 터키 역사상 터키공산당(TKP) 후보가 시 단위에서 당선된 것이다. 2014년 같은 당 후보로 오바즉(Ovacik) 군(郡)에서 군수로 당선됐던 메흐메트 파티 마치오울루(Mehmet Fatih Macoglu) 후보가 이번에는 툰젤리(Tunceli) 시(市)에서 시장으로 당당히 선출된 것이다.

터키공산당의 메흐메트 파티 마치오울루(Mehmet Fatih Macoglu) 후보

이는 공산당이 시골 지역을 뛰어넘어 도시에서도 당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으로 터키 정치평론가들인 이번 선거의 매우 중요한 변화라고 말하고 있다. 마치오울루는 지난 5년간 군수 재직 중 교육활성화와 무료 운임 등 주민 복지에 크게 기여해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두번째 특징은 에르도안이 지방행정 장악을 위해 쿠르드지역에 파견했던 관선 관료들이 대거 선거에 출마했으나 대부분 낙선의 고배를 마신 것이다. 쿠르드 지역 주민들은 에르도안의 꼭두각시 역할을 하던 이들 관선 관료들을 낙선시킴으로써 현 정부에 대한 반감을 확실히 드러냈다.

세번째 특징은 이스탄불 선거결과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스탄불 광역시장 자리를 매우 중시해 과거 총리를 지냈으며 이후 국회의장으로 임명해 현재 재직 중인 비날리 일드름(Binali Yildirim) 후보가 이곳에서 낙선한 것이다. 특히 선거 막바지, 야당 후보의 승리가 확실시되자 에르도안이 관리하는 국영매체들은 개표상황 보도를 중단했다. 특히 친정부 언론들은 “이스탄불 시장 선거에서 여당후보가 당선되었다”고 보도하기까지 했다. 특히 이날 밤 11시께부터는 이스탄불 광역시 곳곳에 비날리 일드름의 당선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걸리기도 했다.

CHP 소속 에크렘 이마목루(Ekrem Imamoglu) 후보

이에 야당인 CHP 당원들은 부정선거에 대비해 밤 새워 투표함을 지켰다. 최고선거위원회는 마침내 이스탄불 광역시 선거 결과 CHP 소속 에크렘 이마목루(Ekrem Imamoglu) 후보가 승리했다고 인정했다. 최대 도시 이스탄불과 수도 앙카라를 비롯해 많은 대도시를 잃은 에르도안 대통령은 선거 후 10일이 지나도록 여전히 침묵 속에 있다. 이에 정치평론가들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패배를 인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에르도안 대통령 입장에선 역대의 ‘불패 신화’가 무너지고 야당 측에서는 미래에 대한 밝은 희망을 발견했다고 보는 것이다.

최대 도시 이스탄불과 수도 앙카라를 비롯해 많은 대도시를 잃은 에르도안 대통령은 선거 후 10일이 지나도록 여전히 침묵 속에 있다. 이에 정치평론가들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패배를 인정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에르도안 대통령 입장에선 역대의 ‘불패 신화’가 무너지고 야당 측에서는 미래에 대한 밝은 희망을 발견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화제를 남긴 이번 지방선거는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다. 최고선거위원회가 이스탄불에서 야당의 승리를 발표하자, 이번에는 여당측에서 “부정선거가 있었다”고 신고하면서 재개표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선거 후 10일 가까이 지났지만 이스탄불 시장에 당선된 야당 후보는 당선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를 두고 에르도안 정권과 야당 후보를 지지한 이스탄불 시민들 사이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이스탄불 광역시장 당선자인 에크렘 이마목루 후보는 터키 국부 케말 파샤의 묘소를 참배해 방명록에 ‘이스탄불 시장 에크렘 이마목루’라고 서명했다. 집권 AKP당의 요구에 따라 최고선거위원회는 재검표에 들어갔으나 결과는 바뀌지 않고 있다.

AKP 정권이 이처럼 이스탄불 시장 자리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터키 제1의 도시라는 이스탄불의 상징성 외에도 이스탄불 시장 권한이 휘두를 수 있는 막대한 예산 때문이다.

현재 이스탄불 시청 직원 대다수는 AKP 당원으로 전국적인 선전 활동을 실질적으로 펼치고 있다. 이스탄불 시는 대형 프로젝트를 자주 벌이면서 예산을 빼돌려 음성적인 정치자금 모금처로 알려져 있다. 이스탄불을 잃는다는 것은 에르도안 정권에게 여간 뼈아픈 일이 아닐 수 없는 이유다.

평론가들은 “야당 후보가 시장 선출 당선증을 받지 못하고, 여당이 최고선거위원회에 재개표 압박을 가하면서 터키 전국을 긴장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같은 사태가 언제 진정될지 아무도 대답할 수 없다는 게 터키 정치의 안타까운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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