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와 ‘탄소배출권’ 거래제

EU의 탄소배출권 거래제와 비(非)EU 항공사들의 대응

기후변화의 원인이 되고 있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전 세계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가운데, 유럽의 배출권거래제가 항공분야로 확대되면서 국제 문제가 되고 있다.

‘배출권거래제’란 온실가스 감축의무가 있는 국가나 기업에 탄소배출 허용량을 부여한 후, 국가나 기업 사이의 배출허용량 거래를 허용하는 제도로 1997년 체결된 교토의정서 제17조에 규정돼 있다.

배출권거래제는 1기인 2005~2007년에 유럽 전역 1만 2,000개 기업에?적용됐고, 2기인 2008~2012년에는?항공, 선박 등 운송 분야로 확대 시행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 캐나다, 러시아, 중국, 일본, 한국 등 유럽에 취항하는 비(非) EU국 항공사들도 배출권거래제를 적용받으면서 국제 분쟁으로 비화하고 있다.


유럽연합(EU) 유럽사법재판소의 판결

지난해 12월21일 유럽연합(EU) 최고법원인 유럽사법재판소는 외국항공사를 비롯해 EU역내를 드나드는 모든 항공사를 대상으로 탄소배출권을 구입하라는 EU의 조치가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유럽사법재판소는 이날 미국과 캐나다 항공사들이 제기한 탄소배출권 구입의무화 면제를 모두 기각하며 EU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 판결로 올해 1월1일부터 EU 27개 회원국 항공사와 외국 항공사 등 EU 영공을 드나드는 모든 항공사는 허용량을 초과하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할 경우 탄소배출권을 의무적으로 구입해야 하는 배출권거래시스템(Emission Trade System) 적용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항공분야 배출권거래제, 2007년부터 이미 예고된 일

이는 예고된 일이었다. 그 동안 EU 집행위원회 결정 내용을 보면, EU는 이미 2007년부터 역내 취항하는 항공사들에 대해 배출권거래제 시행을 관보를 통해 공지한 바 있고, 2009년 8월에는 ‘온실가스 배출 규제 대상 항공업체 목록’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삼성테크윈, 현대자동차, LG전자, SK텔레콤, 한화 등 국내 기업들이 배출권거래제에 적용된다고 통보한 바 있다.

대표적인 국내 항공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배출 허용치는 일차적으로 205만CO₂톤과 78만3000CO₂톤으로 정해졌는데 2013~2020년에는 각각 연 194만CO₂톤과 74만5000CO₂톤으로 줄어들게 된다.

향후 초과 배출한 탄소량은 1년 단위로 계산되며, 항공사는 상한선을 초과할 경우 내년 4월30일까지 배출권을 구매해야 한다. 현재 국내 항공업계는 매년 허용치를 5~6% 정도 초과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는데, 탄소배출권거래제로 국내 항공업계가 추가 부담하게 될 비용은 올해 60억원, 내년 12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말로만 우려하던 배출권거래제가 현실화한 것이다.

국제분쟁 소지 남아

이번 사례는 기후변화협약이 각 나라의 이해관계에 얽혀 국제적으로 합의가 되지 않아도 국지적으로 여러 가지 조치가 취해질 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반발도 있었다. 미국과 캐나다항공사들은 유럽연합의 조치가 ‘국제민간항공협약’을 위반한다며 유럽사법재판소에 제소했고,?패소 판결을 받았다. 유럽을 취항하는 외국항공사에 탄소배출권 구입을 의무화한 유럽연합의 조치가 적법하다는 것이었다. 국제적으로 합의된 기후변화협약과 교토의정서에 근거해서 보면, 당연한 결과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 제17차 당사국총회에서 보듯 새로운 국제적 합의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국제 분쟁의 가능성은 상존한다. 현재 중국이 중심이 돼 배출권거래제 도입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있는데, 향후 그 귀추가 주목된다.

유럽 에어버스사(社) 항공기 주문 보류한 중국

중국은 지난 2월 말 유럽연합(EU)의 탄소세 부과에 반대하는 28개국과 함께 단체 행동에 나섰다. 중국을 포함한 29개국은 모스크바에서 열린 항공업계 탄소배출권에 관한 회의에서 EU의 탄소세 부과에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중국은 유럽연합(EU)이 역내 취항하는 항공기에 대해 탄소배출권을 의무 구입하도록 한 조치에 항의하는 뜻으로 120억 달러에 상당하는 에어버스사(社) 항공기 구매 주문을 연기하거나 보류했다고 밝혔다. 에어차이나는 A330 35대 주문을 연기했고, 홍콩항공은 A380 10대 주문을 보류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이 EU 탄소세 부과를 저지하기 위해 본격적인 실력 행사에 들어간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유럽은 한 술 더 떠 항공기는 물론 역내 항구를 이용하는 선박에 대해서도 배출권거래제를 적용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어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둘러싼 국제 분쟁은 더욱 심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위기의 지구와 산업계의 역할

기후변화가?심각해지면서 각 나라들이?온실가스와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데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각자 본국에 유리한 계산만을 하고 있어 기후변화협약도 난관에 봉착해 있다. 이런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는 2020년까지 모든 국가가 온실가스 의무 감축에 참여하는 협약을 만들자는 데는 합의해 한 가닥 희망의 불씨는?있다.

기후변화에 근본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은 에너지를 절약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해 궁극적으로 온실가스 발생량을 줄이는 것이다. 국제 규제에 수동적으로만 대응하다 보면 더 많은 비용과 시행착오를 겪게 되고, 기업의 이미지와 경쟁력 제고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항상 위기 속에는 새로운 기회가 함께 온다. 이미 많은 기업들은 기후변화라는 위기 속에서 지구생태계도 지키고 새로운 사업도 되는?기회를 찾고 있다. 기후변화 대책 속에 새로운 녹색 비즈니스가 창출되고 있다.

그동안 품질경영과 환경경영을 선도해 온 국제표준화기구(ISO)는 최근 에너지경영시스템(ISO50001) 표준을 제정해 기업 등 모든 조직에서 온실가스를 저감하고, 에너지 절약과 효율성을 높여나가는 경영시스템을 도입하도록 권장하고 있는데 이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기후변화 위기에 대응하여 에너지를 절약하고, 효율을 높이고,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것은 모든 나라, 모든 기업들이 노력해야 할 과제임을 다시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번 국내 항공사를 포함하여 비(非)EU 국가들에 대한 EU 배출권거래제 편입 사례는 앞으로 다가올 탄소 무역 장벽의 서막에 불과하다. 기후변화로부터 지구생태계를 보전하기 위하여 다자간 협약이 되지 않는다면, 양자간 협약 등 다양한 방식으로 규제가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지구를 보호하고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서는?능동적인 접근 전략이 필요하다. 국가와 인류 미래의 지속가능한 발전의 관점에서 정부, 기업, 시민사회 차원의 지혜로운 대응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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