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 ‘네이팜탄 소녀’ 드레스덴 평화상 받아

[아시아엔=편집국] 베트남 쟁의 참상을 세계에 알린 ‘네이팜탄 소녀 사진’의 주인공이 독일 드레스덴평화상을 받았다. 11일(현지시각) 독일 DPA통신 등에 따르면 ‘네이팜탄 소녀’라는 별칭을 가진 베트남계 캐나다인 판티 킴푹(Kim Phuc·55·작은 사진)씨가 독일 드레스덴에서 인권평화상을 받았다. 쟁 피해 아동을 위한 구호활동을 펼치는 등 세계평화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됐다.

킴푹은 아홉 살이던 1972년 6월 8일 고향인 사이공(현 호찌민) 서쪽 짬방 마을이 폭격당하자 가족과 함께 인근 카오다이 사원에서 가족과 함께 은신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현장을 벗어나라”는 주변 병사들의 다급한 목소리를 들은 지 불과 몇 초 만에 사원 주변에 네이팜탄이 날아들었으며, 마을 체가 순식간에 주황색 불길에 휩싸였다.

네이팜탄 불길은 당시 무명옷을 입은 킴푹의 왼쪽 팔에 옮겨붙었다. 공포의 순간이었지만 킴푹은 옷을 벗어던지고 울부짖으면서 필사적으로 거리로 뛰쳐나가다가 의식을 잃었다. 신 30%에 3도 화상을 입은 킴푹은 여러 차례 피부이식 수술을 받은 후 13개월 만에 퇴원했다.

당시 AP 통신의 사진기자였던 후잉 콩 우트는 이 장면들을 사진으로 담고 킴푹이 쓰러지자 차에 태워 인근 작은 병원으로 갔다. 그는 미국기자증을 보여주며 소녀를 잘 치료해 줄 것을 부탁했다. 사이공으로 돌아와 그 사진을 인화했으나 나체는 보도하지 못한다는 AP의 엄격한 규정 때문에 싣지 못했다. 그러나 며칠 뒤 한 경험 많은 사진에디터의 도움으로 그 사진은 본사로 송됐고, 세계 거의 모든 언론이 이를 대대적으로 실었다. 이 사진의 위력은 엄청나서 이듬해 퓰리처상 수상은 물론 대대적인 반여론을 조성해 베트남 종에도 한몫했다.

의사를 꿈꾸던 킴푹은 노력 끝에 의과대학에 입학했지만 그 사진에 대해 뒤늦게 알게 된 공산당 지도자는 킴푹으로 하여금 대학을 그만 두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그러나 1982년 외신기자들의 도움으로 독일에서 치료를 받은 얼마 후 그녀의 이야기에 감동 받은 베트남 총리는 킴푹이 쿠바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킴푹은 쿠바 유학 동안 같은 유학생인 부이 후이 또안을 만나 1992년 결혼했다. 1997년 유네스코 평화문화친선대사로 임명되었다. 1998년 캐나다 시민권 시험에 통과하여 시민권을 취득했다.

그는 “혼자 있을 때 나는 그 사진을 보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그 사진은 내가 평화를 위해 일하게 해준다. 그게 나의 비”이라고 말했다. 킴푹이 받은 1만유로(약 1270만원)의 상금은 쟁고아 등을 지원하는 그의 재단에 기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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