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100주년 단상···여인의 향기 그리고 암살

영화 암살

[아시아엔=김현원 연세대 의대 교수] 알파치노가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을 받은 ‘여인의 향기’ 라는 영화에서 알파치노는 친구를 밀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오히려 학교에서 큰 벌칙을 받게 된 청년을 위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개 같은 인생을 살아왔다. 하지만 나는 옳고 그른 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단지 옳은 길이 험하고 힘든 길이기 때문에 그 길을 갈 용기가 없었을 뿐이다. 지금 이 청년은 세상에 없는 올바른 용기를 시행했다는 이유로 비겁하게 세상을 살아 온 우리들에게 따돌림과 벌칙을 받고 있다. 너희가 무슨 권리로 이 청년에게 돌을 던지는가? 그 돌은 차라리 나에게 던져라…”

우리의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 우리의 대부분은 힘든 이상을 실현하기를 포기하고, 쉬운 현실을 따라간다. 하지만 쉽고 편한 현실을 따르는 사람들이 다수이기 때문에 힘든 길을 선택한 용기 있는 자들이 오히려 다수에 의해서 무시당하고 불이익을 받는다. 그것은 과거의 모습이기도 하고 현재의 모습이기도 하다.

영화 ‘암살’에서 친일 간첩행위로 독립군을 와해시킨 이정재가 해방 후 법정에서 “내가 뭘 잘못했나, 우리가 해방될 줄 누가 알았나, 너희들은 그렇지 않았느냐…” 하면서 오히려 큰 소리를 친다. 영화 ‘말모이’에서도 “조선은 이미 없어진 나라야…” 죽은 사람이 살아나지 못하는 것 같이 누구에게나 조선은 죽은 나라였다. 그런 죽은 나라는 빨리 포기해야 하는 것이 현실적인 생각이다.

올바른 길을 간다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하다. 물질이라는 이 세상의 패러다임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올바른 길을 혼자라도 가는 사람은 한 없이 어리석은 사람에 불과할 뿐이다. 그 길이 모두가 갈 수 있는 길은 아니다. 영원히 소수만이 갈 수 있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모두가 갈 수 없는 좁고 험한 길이다. 하지만 세상을 보지 않고 하늘을 보고 그 험한 길을 걸어간 분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있다.

올해가 삼일운동 100주년이다. 못난 정치인들이 잃어버린 귀한 나라를 다시 찾고자 100년 전 백성들이 일어섰다. 언제나와 같이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숨어있는 영웅들이 나타났다. 숨어있던 필부범부들이 영웅으로 변모했다. 비록 삼일운동으로 우리가 독립을 그 자리에서 쟁취하지는 못했지만 삼일운동의 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 민족이 독립을 쟁취했고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을 것이다.

세상에 명예와 부를 지닌 사람들에게 그것보다 더 큰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쉬운 선택이 아니다. 영화 ‘암살’ 에서도 이정재는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이었는데 변절한 모습으로 나온다. 삼일운동의 민족대표 33인 중에서도 대부분이 친일로 방향을 바꾸었다. 끝이 없는 터널을 가기에 지쳤던 것이다.

일생에 아름다운 모습도 부끄러운 모습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면서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강요하고 우리말과 글을 쓰지 못하게 하던 시점부터 해방까지 친일적 행위를 한 사람을 친일파라고 정의한다. 그 전에 어떤 애국행위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때 친일행위를 했다면 친일파로 분류된다. 일본에서 2·8 독립선언서를 작성한 이광수, 3.1운동의 독립선언서를 작성했던 최남선 모두 친일파일 뿐이다.

이광수와 최남선뿐이 아니다. 적어도 일제말기에 글을 발표한 문인 중에서 친일파가 아니었던 사람을 발견하기 어렵다. 붓을 꺾든지 종군을 찬양하는 친일 글을 쓰든지의 선택이 있었을 뿐이다. 그런 면에서 그들이 차라리 평범한 필부범부였으면 친일행위를 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높았을 것이다.

부끄럽게도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는 친일행위뿐 아니라 독일까지 가서 나치에도 협력한 전범이었다. 애국가의 작사자 윤치호도 능동적 친일파였다. 한때 나라 잃은 슬픔을 노래했던 홍난파도 친일파일 뿐이다. 우리 군인들이 부르는 많은 군가들도 친일파들의 곡이다.

일제로부터 벗어난 이후에도 대한민국은 친일파 청산이라는 과거와의 단절을 ‘현실’ 이라는 이유로 시행하지 못했다. 프랑스에서 나치부역자 35만 명을 조사해서 12만 명을 재판에 회부했고, 10만 명이 유죄를 받았고, 4만 명이 수감되었다. 공식 사형선고를 받았던 1500명 외에 비공식적으로 처형된 사람만 9000명에 이른다. 지나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아마 미래에 어떤 일이 있더라도 프랑스에서는 후환이 두려워서 나라를 배반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은 개화초기에 일본에게 점령되었기 때문에 프랑스와 달리 역량을 키울 시간이 없었다. 더구나 40년간의 끝이 안 보이던 노예생활 끝에 대한민국을 이끌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능력 있는 사람들은 친일 세력밖에 없었다. 아픈 과거를 단절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다고 믿었던 ‘현실’과 타협했던 대한민국은 21세기에도 끊임없이 ‘정의’ 라는 단어를 해석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헤매는 난파선 같은 대한민국에 희망이 있는가? 100년 전 삼일운동 때 온 백성들이 영웅으로 변신해서 우리가 위대한 민족임을 확인하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임진왜란 때 누가 나라를 지켰는가?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 마다 힘을 발휘하는 위대한 우리 국민이 이제 다시 주인이 되어 삼일운동의 정신을 되살려 21세기의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이라는 배에 희망의 불빛을 밝게 밝힐 때가 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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