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혁명 두돌⑤] ‘적폐 청산’과 ‘자기 성찰’은 동시진행형

10월 29일은 2016년 ‘촛불혁명’이 타오르기 시작한 날이다. 촛불혁명은 최순실씨의 국정농단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권력사유화 및 무능 등에 대해 시민들이 매주 토요일 자발적으로 모여 2017년 4월 29일까지 23차례에 걸쳐 열려 마침내 불의의 세력을 내모는 데 성공했다. 전국적으로 연인원 1700만명이 참여했으며,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등 관련자 대부분 사법처리됐다. <아시아엔>은 촛불혁명 2주년을 맞아 비영리사회단체 나눔문화와 함께 ‘촛불혁명’의 의미와 주요장면을 되돌아본다. 지난해 1주년 즈음 나온 <촛불혁명>(김예슬 지음 김재현 외 사진 박노해 감수, 느린걸음 펴냄)을 바탕으로 이뤄졌음을 밝혀둔다.(편집자)

“적폐의 뿌리가 깊다”는 것

[아시아엔=박노해 시인] 그런데 “적폐의 뿌리가 깊다”는 것은 무얼 말하는가?

청산되지 않은 적폐의 역사가 오래 지속되면서,

그 무언가 우리 안에 뿌리 뻗고 자라온 것이다.

이 적폐 체제의 가치관과 생활 양식과 관계 방식이

개인의 일상과 내면까지 파고 들어 실핏줄처럼 되어

가는 것, 상호 운동하며 안과 밖에서 강력해지는 것,

그것이 “적폐의 뿌리가 깊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적폐도 진화한다. ‘악의 신비’가 작용한다.

적폐 세력이 독점한 것들이 선망과 질투가 될 때,

나의 가치관과 인간성이 탈바꿈되고 내면화되어

다수결 민주로 탈바꿈될 때, 그 적폐는 나를 잠식한다.

 

이명박 박근혜를 누가 세웠을까.

“남부럽지 않은” 부자의 꿈이, “남”에게 달린 나의 꿈이,

‘경제성장’과 ‘핵발전 가동’의 다수결 여론으로 살아나

압력을 가하고 다시 정치권력을 바꿔 치운다.

 

하여 ‘적폐 청산’과 ‘자기 성찰’은 동시 진행이 아닌가.

바깥의 나쁜 것들에 대해 이건 아니다! 저항하면서

동시에 나 개인의 삶 속에 들어와있는 그 물신성의

근간을 직시하고 성찰하고 단념하는 것이 아닌가.

 

다가오는 문명의 위기 앞에서

촛불혁명 이후 나라와 사회에 희망의 기운이 감돈다.

그런데, 나의 삶은 왜 여전히 힘든가.

가면 갈수록 왜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히는가.

지금 세계에는 거대한 격변이 몰려오고 있고

삶과 사람의 날들에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걸

우린 이미 일상에서 겪고 느끼고 있다.

 

미세먼지와 독이 든 음식물, 기후변화와 신종질병,

산업축산의 대학살, 오염되는 대지와 쇠락하는 농촌,

길어진 수명과 줄어든 출생과 늘어가는 실업.

강한 인공지능과 뇌와 유전자 조작으로

‘자연인간’의 역사가 머지않아 종말을 고하고

‘기계인간’의 시대가 도래하는 대단절의 변화.

그리고 야수가 되어가는 사내들과 잔혹소녀들과

묻지마 범죄와 테러 등 ‘인간의 광기’ 사태까지.

 

땅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고스란히 내 몸에서 벌어지고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그대로 인간 속에서 벌어진다.

 

이 근원적 삶의 위기에 사회적 불평등까지 겹치면서

우리는 경쟁과 피로 속에 ‘제정신’을 유지하기조차 힘들다.

이런 삶의 속도, 삶의 비용, 삶의 질은 지속될 수 없다.

 

이제껏 우리가 생각해온 좋은 세상은 “잘 살아보세”였다.

보수는 ‘각자 능력껏 잘 살아보자’,

진보는 ‘다함께 고루 잘 살아보자’.

실상 같은 뿌리의 두 나무 둥치가 아니었던가.

돈만 생기면 다른 문제는 해결되리라 믿어왔다.

현대의 유일신은 ‘물신物神’이 되고 말았다.

 

민주화 직후, 우리는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그 삶의 내용과 방식에 대한 깊은 물음을 던지지 못했다.

‘잘 살아보자’는 것 이상의 시대정신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부자 되세요’ 에서 ‘대박 나세요’ 심지어 “통일 대박”까지,

우리 가치관과 인간성은 쪽박처럼 금이 간 세월이었다.

 

정점에 달한 성장의 시대에,

성장에서 성숙으로의 도약!

21세기 우리 삶과 세상은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고도성장’과 ‘성장중독’의 관성 위에 세워진 가치관과

사회 정치 경제 구조의 혁명적 재설계가 필요하다.

 

우선 우리가 집중해야 할 촛불혁명의 5대 과제가 있다.

적폐 청산.

경제 민주.

남북 협력.

젊은 농촌.

생태 안전.

 

지구인류시대의 ‘안과 밖의 동시 혁명’

세계사에서 처음으로

‘촛불’로 ‘혁명’을 이루어내었다.

 

촛불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평정한 불이다.

촛불은 축제와 제의의 불이고 성찰과 기원의 불이다.

혁명은 지극히 집단적이고 정치적이고 격렬한 행사다.

혁명은 생사의 전율, 타파와 탄생의 피가 흐른다.

촛불과 혁명은 음과 양처럼 상극相剋한다.

그러나 상극이 상생相生이다. 낮과 밤처럼.

 

지구인류시대의 혁명은 ‘안과 밖의 동시 혁명’이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고

영성적인 것이 혁명적이고

내 삶의 변화가 세상을 바꾸어간다.

 

세상을 바꾼다는 것, 혁명革命은

안의 명命-인간이 새로와짐으로

밖의 혁革-거죽을 밀어나가는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언지 알지 못하면

무엇과 싸우고 어떻게 바꿀지 알 수가 없다.

 

단지 사회 구조와 소유 권력의 변화만이 아니다.

언제부턴가 잃어버린 내 안의 근원적 열망과

우리가 살아온 세월에 대한 깊은 성찰과

다가올 인류 문명의 위기에 대한 직감과

삶의 총체적 해방이라는 격렬한 몸부림이

촛불혁명에 나선 우리 안에 흐르고 있지 않은가.

 

혁명의 궁극의 목적은 나 자신의 좋은 삶이다.

이 우주에서 단 하나뿐이고 단 한번뿐인 존재로서

세상 한가운데서 진정한 나를 찾아 살아가는 것이다.

몸과 마음의 건강과 평정, 친구와 이웃과의 우애로움,

내 삶과 직결된 ‘공동의 유산’인 지구 생명의 푸르름,

그러한 사회체제와 생활양식을 이루어나감이다.

 

더 고귀한 삶을 창출하지 못하면 혁명이 아니다!

더 고유한 인격이 출현하지 못하면 혁명이 아니다!

 

그리하여 촛불혁명의 진정한 결실은 그 과정에서

잉태한 새로운 감성, 새로운 의식, 새로운 사람이다.

‘새로운 내가 되었어!’ 이것이 혁명의 눈부심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