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모윤숙 “나의 조국, 나의 사랑이여!”

2013년 10월 1일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건군 제65주년 국군의날 행사 장면. 육해공, 해병대 및 각군 사관학교생들이 열병을 하고 있다.

-나는 광주 산곡을 헤매다가 문득 혼자 죽어 넘어진 국군을 만났다.

산 옆 외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워 있는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누른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지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였고나.

가슴에선 아직도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하며

나는 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나는 죽었노라, 스물 다섯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아들로 나는 숨을 마치었노라.

질식하는 구름과 바람이 미쳐 날뛰는 조국의

산맥을 지키다가

드디어 드디어 나는 숨지었노라.

 

내 손에는 범치 못할 총자루, 내 머리엔

깨지지 않을 철모가 씌워져

원수와 싸우기에 한 번도 비겁하지 않았노라.

그보다도 내 핏 속엔 더 강한 대한의 혼이 소리쳐

나는 달리었노라. 산과 골짜기, 무덤 위와 가시 숲을

이 순신같이, 나폴레옹같이, 시이저같이

조국의 위험을 막기 위해 밤낮으로

앞으로 앞으로 진격! 진격!

원수를 밀어 가며 싸웠노라.

 

나는 더 가고 싶었노라. 저 원수의 하늘까지

밀어서 밀어서 폭풍우같이 모스크바 크레믈린탑까지

밀어 가고 싶었노라.

내게는 어머니, 아버지 귀여운 동생들도 있노라.

어여삐 사랑하는 소녀도 있었노라.

내 청춘은 봉우리지어 가까운 내 사람들과 함께

이땅에 피어 살고 싶었었나니

아름다운 저 하늘에 무수히 나르는

내 나라의 새들과 함께

나는 자라고 노래하고 싶었노라.

나는 그래서 더 용감히 싸웠노라. 그러다가 죽었노라.

 

아무도 나의 주검을 아는 이는 없으리라.

그러나 나의 조국, 나의 사랑이여!

숨지어 넘어진 내 얼굴의 땀방울을

지나가는 미풍이 이처럼 다정하게 씻어주고

저 하늘의 푸른 별들이 밤새 내 외롬을 위안

해 주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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